목차
1. 들어가며
2. 한국 영화사 (개화기~1950년대)
1) 한국 영화 도입기 (1920년대)
2) 한국 영화 태동기 (1921~1945)
3) 한국 영화 부활시대 (1945~1955)
3. 한국영화 70년대 이후의 경향
1) 1970년대 (1970~1979)
2) 1980년대 (1980~1989)
4. 1990년대의 한국영화
5. 나 오 며 - 한국영화 붐의 경향과 과제
2. 한국 영화사 (개화기~1950년대)
1) 한국 영화 도입기 (1920년대)
2) 한국 영화 태동기 (1921~1945)
3) 한국 영화 부활시대 (1945~1955)
3. 한국영화 70년대 이후의 경향
1) 1970년대 (1970~1979)
2) 1980년대 (1980~1989)
4. 1990년대의 한국영화
5. 나 오 며 - 한국영화 붐의 경향과 과제
본문내용
된 기획도 빼놓을 없다. 독특한 소재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생산성 높은 경쟁력을 만들어 냄으로써 영화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특수효과, 컴퓨터그래픽, 오픈세트도 이제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프로페셔널한 도전의식과 열정이 새로운 기획의 두려움을 희석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보편적 정서도 한몫을 했다. 같은 날 성공적으로 개봉된 외화와 방화의 최종 흥행 기록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흥행에 성공한 외화라 할 지라도 그 생명력은 비슷한 경우의 방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퍼져나가는 입소문이 외화와 한국영화가 현저히 다른 것은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이고 공감대인 것이다. 이런 보편적인 정서는 한껏 세련되고 편안해진 대형 멀티플렉스에 힘입어 점차적으로 두꺼운 관객층을 만들어 내고 있다.이밖에도 우수인력의 충무로 입성 과감한 양질의 금융자본 유입,전국 배급력 강화,투명화 된 회계 등의 여러 요인이 한국영화의 풍성한 발전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도 한국영화산업이 어느정도 발전했는지는 이미 검증된 바라 할 수 있다.
영화'공동경비구역 JSA'가 4일까지 244만8700명의 관객(서울기준)을 동원,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영화 '쉬리'의 기록(244만8000명)을 돌파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이 기록은 쉬리뿐만 아니라 외국영화를 포함한 그동안의 영화 중 최대관객 동원 기록이다. 영화계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문화와 정보의 세기라는 21세기와 더불어 한국영화가 중흥기에 들어섰다는 것을 말해준다. 99년 쉬리가 몰고 온 한국영화바람을 공동경비구역JSA가 뒤를 이으면서 그 동안 헐리우드영화에 밀려 숨을 죽이고 있던 한국영화가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이 덕택에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99년의 35.9%에 이어 2000년 33% 등 2년 연속 30% 대를 넘어섰다. 영화제작 편수도 99년의 43편에서 지난해엔 60여편에 이르렀고 수출도 303만5360달러에서 700만달러로 급신장했다. 한국영화의 이 같은 성장세는 영화 '춘향뎐'이 지난해 칸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것을 비롯해 국제영화제에 자그마치 370여회나 출품돼 한국영화 수출단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동안 잘 받아야 10만달러 선에서 맴돌던 한국영화는 공동경비구역JSA가 일본에 200만달러에 수출될 만큼 가치를 높였고 수출대상국도 99년 11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되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한국영화가 중흥기에 들어선 것은 영화산업이 고부가가치산업이란 인식의 확산과 함께 소재의 다양화, 젊은 감독들의 대거 등장, 탄탄한 배급망의 구축 등이 밑받침이 됐다. 쉬리나 공동경비구역JSA가 하나같이 남북화해 무드 속에서 그 동안 터부시돼왔던 남북관계를 다뤘다는 점과 재벌 등이 참여한 배급회사가 이를 뒷받침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앞으로 이 같은 가능성을 영화산업의 발전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영화인들의 치밀한 계획과 노력이 요구된다.
몇 년 사이 한국영화가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할리우드영화에다 새로 등장한 일본영화공세를 물리쳐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일본영화는 초창기 공세에서 주춤거려 현재 7%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나 그 잠재력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한국영화의 독특한 '맛'을 살려야 한다. 헐리우드영화를 흉내내 대작주의나 불록버스터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그러한 경향이 보이고 있다. 국제화시대에 걸맞게 제작 배급 출연진 등의 국경을 없애는 것도 한국영화바람을 일과성이 아닌 영화산업의 발전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이다.
보편적 정서도 한몫을 했다. 같은 날 성공적으로 개봉된 외화와 방화의 최종 흥행 기록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흥행에 성공한 외화라 할 지라도 그 생명력은 비슷한 경우의 방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퍼져나가는 입소문이 외화와 한국영화가 현저히 다른 것은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이고 공감대인 것이다. 이런 보편적인 정서는 한껏 세련되고 편안해진 대형 멀티플렉스에 힘입어 점차적으로 두꺼운 관객층을 만들어 내고 있다.이밖에도 우수인력의 충무로 입성 과감한 양질의 금융자본 유입,전국 배급력 강화,투명화 된 회계 등의 여러 요인이 한국영화의 풍성한 발전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도 한국영화산업이 어느정도 발전했는지는 이미 검증된 바라 할 수 있다.
영화'공동경비구역 JSA'가 4일까지 244만8700명의 관객(서울기준)을 동원,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영화 '쉬리'의 기록(244만8000명)을 돌파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이 기록은 쉬리뿐만 아니라 외국영화를 포함한 그동안의 영화 중 최대관객 동원 기록이다. 영화계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문화와 정보의 세기라는 21세기와 더불어 한국영화가 중흥기에 들어섰다는 것을 말해준다. 99년 쉬리가 몰고 온 한국영화바람을 공동경비구역JSA가 뒤를 이으면서 그 동안 헐리우드영화에 밀려 숨을 죽이고 있던 한국영화가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이 덕택에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99년의 35.9%에 이어 2000년 33% 등 2년 연속 30% 대를 넘어섰다. 영화제작 편수도 99년의 43편에서 지난해엔 60여편에 이르렀고 수출도 303만5360달러에서 700만달러로 급신장했다. 한국영화의 이 같은 성장세는 영화 '춘향뎐'이 지난해 칸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것을 비롯해 국제영화제에 자그마치 370여회나 출품돼 한국영화 수출단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동안 잘 받아야 10만달러 선에서 맴돌던 한국영화는 공동경비구역JSA가 일본에 200만달러에 수출될 만큼 가치를 높였고 수출대상국도 99년 11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되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한국영화가 중흥기에 들어선 것은 영화산업이 고부가가치산업이란 인식의 확산과 함께 소재의 다양화, 젊은 감독들의 대거 등장, 탄탄한 배급망의 구축 등이 밑받침이 됐다. 쉬리나 공동경비구역JSA가 하나같이 남북화해 무드 속에서 그 동안 터부시돼왔던 남북관계를 다뤘다는 점과 재벌 등이 참여한 배급회사가 이를 뒷받침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앞으로 이 같은 가능성을 영화산업의 발전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영화인들의 치밀한 계획과 노력이 요구된다.
몇 년 사이 한국영화가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할리우드영화에다 새로 등장한 일본영화공세를 물리쳐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일본영화는 초창기 공세에서 주춤거려 현재 7%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나 그 잠재력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한국영화의 독특한 '맛'을 살려야 한다. 헐리우드영화를 흉내내 대작주의나 불록버스터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그러한 경향이 보이고 있다. 국제화시대에 걸맞게 제작 배급 출연진 등의 국경을 없애는 것도 한국영화바람을 일과성이 아닌 영화산업의 발전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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