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내용요약
1.서론
2.제1계명
3.제2계명(상)
4.제2계명(하)
5.제3계명
6.제4계명(상)
7.제4계명(하)
8.제 5계명
9.제 6계명
10.제 7계명
11.제 8계명
12.제 9계명
13.제 10계명
Ⅱ. 소감문
1.서론
2.제1계명
3.제2계명(상)
4.제2계명(하)
5.제3계명
6.제4계명(상)
7.제4계명(하)
8.제 5계명
9.제 6계명
10.제 7계명
11.제 8계명
12.제 9계명
13.제 10계명
Ⅱ. 소감문
본문내용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며 믿음에 견고함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옛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이 60세때 자녀를 낳았으니 아브라함의 나이 160세 되던 해입니다. 아브라함이 187세에 돌아가셨으니 무려 27년이란 시간 동안 안 울타리 안에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예(禮)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사역에 치어서 가정에게도 부담이 되어지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고 했습니다.부모님께 마땅히 드릴 것은 부모님께 돌려드려야 하며.(이런 의미는 아니지만) 가정의 아내와 자녀에게 돌려야 할 것은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바울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딤전3:4~5)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12절)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찌라”(딛1:6)
가정이 바로 세워져야 교회에서 아름다운 직분을 얻을 수 있고 다스릴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종으로 사역하는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것은 당연하며 마땅히 해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또한 주님께서 주인인 가정을 위하여 충성하는 것 역시 옳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제 6.9계명에 관하여
우리는 실로 많은 물질에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T.V이나 대중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우리들의 눈 속에 들어와 기억 속에 저장되어지고 있습니다. 그 기억은 우리의 마음과 눈을 다시 자극시켜서 강력한 소유욕을 나타내고 탐심을 가지게 합니다. 문제는 탐심이 우리의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가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하여도 간접적인 도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는 우리의 삶 중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얻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세상 끝날까지 있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게 함의 의미가 강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하다”하셨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하시여 세상에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 광야와 산에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가난한 자들에게 따뜻이 대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바울 역시도 디모데에게 쓴 서신에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4:13) 할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주신 물질로 우리의 배를 위하고 있지 않습니까? 좋은 승용차에 남아도는 평수의 아파트와 집에 산적히 쌓여 있는 옷가지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부요하게 만들었습니까? 부요하신 예수님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탐욕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우리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마25:41~44)
옛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이 60세때 자녀를 낳았으니 아브라함의 나이 160세 되던 해입니다. 아브라함이 187세에 돌아가셨으니 무려 27년이란 시간 동안 안 울타리 안에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예(禮)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사역에 치어서 가정에게도 부담이 되어지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고 했습니다.부모님께 마땅히 드릴 것은 부모님께 돌려드려야 하며.(이런 의미는 아니지만) 가정의 아내와 자녀에게 돌려야 할 것은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바울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딤전3:4~5)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12절)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찌라”(딛1:6)
가정이 바로 세워져야 교회에서 아름다운 직분을 얻을 수 있고 다스릴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종으로 사역하는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것은 당연하며 마땅히 해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또한 주님께서 주인인 가정을 위하여 충성하는 것 역시 옳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제 6.9계명에 관하여
우리는 실로 많은 물질에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T.V이나 대중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우리들의 눈 속에 들어와 기억 속에 저장되어지고 있습니다. 그 기억은 우리의 마음과 눈을 다시 자극시켜서 강력한 소유욕을 나타내고 탐심을 가지게 합니다. 문제는 탐심이 우리의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가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하여도 간접적인 도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는 우리의 삶 중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얻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세상 끝날까지 있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게 함의 의미가 강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하다”하셨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하시여 세상에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 광야와 산에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가난한 자들에게 따뜻이 대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바울 역시도 디모데에게 쓴 서신에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4:13) 할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주신 물질로 우리의 배를 위하고 있지 않습니까? 좋은 승용차에 남아도는 평수의 아파트와 집에 산적히 쌓여 있는 옷가지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부요하게 만들었습니까? 부요하신 예수님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탐욕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우리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마25:4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