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백산성의 기념식
2. 걷기 대회
3. 만석보 유지비
4. 전봉준 장군의 고택지
5. 황토재 전적지
6. 고부향교
7. 동학혁명 모의탑, 사발통문
8. 위령탑에서의 단체사진
사진자료
1. 백산성 기념식
2. 만석보 유지비
3. 전봉준 고택지
4. 전봉준 동상
5. 황토재 기념탑
6. 동학혁명 모의탑
7. 사발통문
2. 걷기 대회
3. 만석보 유지비
4. 전봉준 장군의 고택지
5. 황토재 전적지
6. 고부향교
7. 동학혁명 모의탑, 사발통문
8. 위령탑에서의 단체사진
사진자료
1. 백산성 기념식
2. 만석보 유지비
3. 전봉준 고택지
4. 전봉준 동상
5. 황토재 기념탑
6. 동학혁명 모의탑
7. 사발통문
본문내용
학농민의 개혁운동이 크게 확대된 계기라고 한다. 또 이 기념탑은 박정희의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즉,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이렇게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계단으로 내려가 버스를 타고 다음 유적지로 이동하였다.
6. 고부향교
버스에서 내린 곳은 연못에 오리가 떠다니고 집 한 채가 있는 곳이었다. 이것이 동학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의문을 가지면서도 다른 학생들이 사진 찍는 것을 보고 나도 함께 찍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동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어느 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당연히 고부향교로 갈 줄 알았는데 도착한 곳은 한 초등학교였다. 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제시대에 살면서 동학농민혁명을 직접 본 분들의 말을 듣고 자란 어떤 분께서 그 당시의 정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확실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바로 앞에 한 건물이 있는데 그곳은 일제가 어떤 사무실로 쓴 곳이라고 한다. 학교 앞에는 일본군들이 항상 배치되어있고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부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주셨는데 필기를 하지 않은 탓에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제는 향교를 보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냥 내려와서 버스를 탔다. 팜플렛에 보면 고부향교가 있었는데 이 곳을 못보고 간 것이 너무 아쉬웠다.
7. 동학혁명 모의탑, 사발통문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린 곳은 동학혁명 모의탑이었다. 차가 지나가는 지점에 탑이 세워있는 것이 훼손이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옆의 팻말에 의하면 이 탑에서 탐관오리의 횡포로 인해 주민의 생계까지 어려워지는 상황에 이르러서 고부면 주산마을에 전봉준 선생 등 20여 명이 모여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국정개혁을 모의하여 많은 군중이 죽산에 집결하여 고부성을 점령하게 되었다고 쓰여있다. 이 기념탑은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을 널리 기념하기 위하여 1969년에 세우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의탑 바로 옆면에 사발통문이 그려져 있다. 사발통문은 여러 사람의 이름을 사발을 중간에 두고 씀으로써 주동자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다. 사발통문이 발견된 이곳에서 모의탑이 세워졌다. 사진에 글자가 잘 찍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바로 앞에서 찍었던 기억이 난다.
8. 위령탑에서의 단체사진
그리고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가 위령탑으로 갔다. 이 탑은 동학농민혁명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XX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둥글게 앉아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였다. 솔직히 그 때 당시에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았던 터라 마땅히 질문할 것이 없는 게 아쉬웠다. 지금은 저번에 본 천명을 시작으로 질문거리가 많이 있다. 그래도 학생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위령탑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문화행사가 있었는데 우리 XX대학교 학생들은 대구까지 거리가 먼 관계로 그 곳에서 XX대학교 학생들과 해산하였다. 서로 다른 말씨를 쓰는 XX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단지 그 학생들과 직접 말을 하지 못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서 교수님의 설명을 들은 것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버스에 탔고 학생들 모두 지친 탓에 잠이 들었다. 전라도에 올 때보다 대구까지 가는 길이 더욱 오래 걸렸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깐 들러 저녁을 해결하고 거의 5시간 동안 버스 안에 있었는데 밖이 어두워서 보이는 거라고는 고속도로와 차들 그리고 산과 하늘의 경계선이 전부였다. 그 곳에서 유적지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조금 힘이 들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만 보고 듣던 동학농민혁명의 유적지를 직접 가서 봄으로써 더 많은 기억에 남고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너무 보람이 있었다. 어떤 역사적인 사건 때문에 이렇게 답사를 가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이후로는 처음이다. 다음에도 비슷한 과목이 있으면 수강하고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가만히 앉아 어떤 역적인 사건을 외우는 것보다 한 번 가서 체험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번 답사는 나에게는 동학농민혁명의 의의를 다시금 일깨우게 하였고 아주 보람되었다.
백산성 기념식
만석보 유지비
전봉준 고택지
전봉준 동상
황토재 기념탑
동학혁명 모의탑
사발통문
6. 고부향교
버스에서 내린 곳은 연못에 오리가 떠다니고 집 한 채가 있는 곳이었다. 이것이 동학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의문을 가지면서도 다른 학생들이 사진 찍는 것을 보고 나도 함께 찍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동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어느 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당연히 고부향교로 갈 줄 알았는데 도착한 곳은 한 초등학교였다. 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제시대에 살면서 동학농민혁명을 직접 본 분들의 말을 듣고 자란 어떤 분께서 그 당시의 정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확실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바로 앞에 한 건물이 있는데 그곳은 일제가 어떤 사무실로 쓴 곳이라고 한다. 학교 앞에는 일본군들이 항상 배치되어있고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부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주셨는데 필기를 하지 않은 탓에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제는 향교를 보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냥 내려와서 버스를 탔다. 팜플렛에 보면 고부향교가 있었는데 이 곳을 못보고 간 것이 너무 아쉬웠다.
7. 동학혁명 모의탑, 사발통문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린 곳은 동학혁명 모의탑이었다. 차가 지나가는 지점에 탑이 세워있는 것이 훼손이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옆의 팻말에 의하면 이 탑에서 탐관오리의 횡포로 인해 주민의 생계까지 어려워지는 상황에 이르러서 고부면 주산마을에 전봉준 선생 등 20여 명이 모여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국정개혁을 모의하여 많은 군중이 죽산에 집결하여 고부성을 점령하게 되었다고 쓰여있다. 이 기념탑은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을 널리 기념하기 위하여 1969년에 세우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의탑 바로 옆면에 사발통문이 그려져 있다. 사발통문은 여러 사람의 이름을 사발을 중간에 두고 씀으로써 주동자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다. 사발통문이 발견된 이곳에서 모의탑이 세워졌다. 사진에 글자가 잘 찍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바로 앞에서 찍었던 기억이 난다.
8. 위령탑에서의 단체사진
그리고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가 위령탑으로 갔다. 이 탑은 동학농민혁명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XX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둥글게 앉아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였다. 솔직히 그 때 당시에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았던 터라 마땅히 질문할 것이 없는 게 아쉬웠다. 지금은 저번에 본 천명을 시작으로 질문거리가 많이 있다. 그래도 학생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위령탑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문화행사가 있었는데 우리 XX대학교 학생들은 대구까지 거리가 먼 관계로 그 곳에서 XX대학교 학생들과 해산하였다. 서로 다른 말씨를 쓰는 XX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단지 그 학생들과 직접 말을 하지 못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서 교수님의 설명을 들은 것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버스에 탔고 학생들 모두 지친 탓에 잠이 들었다. 전라도에 올 때보다 대구까지 가는 길이 더욱 오래 걸렸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깐 들러 저녁을 해결하고 거의 5시간 동안 버스 안에 있었는데 밖이 어두워서 보이는 거라고는 고속도로와 차들 그리고 산과 하늘의 경계선이 전부였다. 그 곳에서 유적지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조금 힘이 들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만 보고 듣던 동학농민혁명의 유적지를 직접 가서 봄으로써 더 많은 기억에 남고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너무 보람이 있었다. 어떤 역사적인 사건 때문에 이렇게 답사를 가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이후로는 처음이다. 다음에도 비슷한 과목이 있으면 수강하고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가만히 앉아 어떤 역적인 사건을 외우는 것보다 한 번 가서 체험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번 답사는 나에게는 동학농민혁명의 의의를 다시금 일깨우게 하였고 아주 보람되었다.
백산성 기념식
만석보 유지비
전봉준 고택지
전봉준 동상
황토재 기념탑
동학혁명 모의탑
사발통문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