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며
세계화 발생 배경
표준화가 중요하게 된 배경
본론
<개인, 기업, 국가 차원에서 살펴본 글로벌 스탠다드>
-개인적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예-
-기업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예-
-국가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예-
<글로벌 스탠다드의 부정적인 효과>
★맺으면서
세계화 발생 배경
표준화가 중요하게 된 배경
본론
<개인, 기업, 국가 차원에서 살펴본 글로벌 스탠다드>
-개인적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예-
-기업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예-
-국가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예-
<글로벌 스탠다드의 부정적인 효과>
★맺으면서
본문내용
같은 문제와 서구의 지배하에 놓일 우려에 선택되었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도 이와 관련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은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예상되는 혼란과 서양의 약탈을 두려워하였으며 우리나라와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고수하기 위해 쇄국정책을 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범지구적으로 지구촌시대가 되었다. 다시 말해 민족과 국가 간의 장벽은 무너지고 모든 것의 가치는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만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세계화의 부작용이 그 긍정적인 면을 상쇄해버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선진국들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환상과는 달리 새로운 지배논리로 전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스탠다드는 결국 강자인 미국의 이익만을 대변, 약소국가들을 더욱 빈곤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는 반세계화 시위로 표출됐으며 신흥 시 장들에서 세계화 브랜드의 배척으로 나타났다. 즉, 신자유주의 경제가 퍼지면서 세계 각 나라의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시장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에서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세계화를 입이 닳도록 예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이른바 1세계에 속하는 나라들과 경쟁력을 갖춘 사람 들 이라는 점이다. 이와는 상반적으로 23세계에 속한 나라들과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 들 에게 세계화란 부익부 빈익빈으로 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고 공동체의 몰락과 환경파괴의 가속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세계화는 기업가들이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다 자유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 모든 장벽들을 제거하자는 의미에서만 진보적인 의미를 가질 뿐 일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선 오히려 모든 장벽이 제거된 하나의 지구촌 이라는 개념 안에서 세계적인 무한 경쟁 시대의 생존 투쟁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기업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괴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즉, 무한 경쟁 시대 속에서 각종 규제의 완화 및 철폐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자 하는 기업가들에게 있어서 ‘삶의 질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 관계는 소위 잘사는 나라들 보다 ‘세계화’를 통해 잘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개발도상국 등에서 더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무한대의 경쟁 속에서는 모두가 이기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패배하고, 이긴 사람들조차 또 다른 다음의 경쟁을 대비해 더욱 이를 악물며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하게 되는 것이다. 소수를 위해 다수의 배고픔이 희생되어야 하고 다시 그 소수가 생산해내는 부를 얻기 위해 다수의 패배자들이 삶의 질을 포기한 채, 대중 매체와 그것이 제공하는 ‘세계화’의 물결에 속박되어 살아야만 하는 것이 세계화가 가져오는 진짜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진보의 개념으로만 여겨져 오던 ‘세계화’가 갖는 무서운 덫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세계화는 매우 상반되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다.
★맺으면서
<글로벌 스탠다드와 우리>
지난 세기의 개인 간 경쟁, 지방 내 경쟁, 국가 내 경쟁은 더 이상의 목표가 되지 못하고, 이제 그 범위는 전 세계로 넓어졌다. 흔히 글로벌 스탠다드는 이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혹은 앞서가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고, 신자유주의, 세계시장, 무한경쟁과 같은 단어들과 함께 쓰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글로벌 스탠다드는 경제적 개념이 아닌 개인의 행동, 집단의 특성, 국가적 정책, 더 나아가 전세계적 차원으로 널리 퍼져있는 현상이다. 어떤 가치보다 경제적 논리가 우선이라고 하는 지금의 분위기 속에서 글로벌 스탠다드가 경제, 정치, 문화 모든 방면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 경제 논리에 적응하지 못해 맞이하게 된 IMF사태 이후, 글로벌 스탠다드가 우리나라 전반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처음, 글로벌 스탠다드가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고유의 것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우선적으로 적응하려는 이중적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 혼란기를 겪으며 글로벌 스탠다드가 점점 한국 사회를 장악해 가면서 그 긍정적 측면인 투명성·공정성 등이 사회 각 부문에 침투하게 되며, 능력 위주 사회 분위기로 변해간다. 그 후, 글로벌 스탠다드가 강요되는 데 대한 반작용으로 처음에는 국산품 애용 등의 일시적인 애국심 증대 현상이 있었으나, 글로벌 마인드가 확산되면서 애국심 증대 현상도 약화되어 간다. 삼성경제연구소 ‘IMF 충격, 그 이후’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가 깊이 침투해 있고 이미 위에서 언급한 과정을 겪어왔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당연시 되면서도, 이제 표준을 벗어난 주체성이나 다양성에 대한 논의도 많아지고 있다. 과연 글로벌 스탠다드가 정의 그대로 세계표준인가 하는 물음도 제기되고 있다. 단지 미국을 비롯하여 선진국들의 경제 수준을 목표로 삼아,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어 나가는 아메리카 스탠다드가 아닌가 하는 비판이 그 중 하나이다.
경제 논리가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현재 상황에서, 경제적 풍요나 성장을 무시하고서는 기본적인 삶의 영위도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또, 상호소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나라만이 전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세계의 흐름인 글로벌 스탠다드에 적응해 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역사 속에 많은 변화의 시기가 있었듯이 지금의 가치가 이다음 세상의 가치에 100%부합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원한다면, 아메리카 스탠다드라는 말처럼 주어진 글로벌 스탠다드의 일방적인 추진이 아니라, 우리만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포용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생각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개인, 기업, 국가라는 단위(unit)들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한 상호 이해증대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는 선진국들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환상과는 달리 새로운 지배논리로 전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스탠다드는 결국 강자인 미국의 이익만을 대변, 약소국가들을 더욱 빈곤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는 반세계화 시위로 표출됐으며 신흥 시 장들에서 세계화 브랜드의 배척으로 나타났다. 즉, 신자유주의 경제가 퍼지면서 세계 각 나라의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시장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에서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세계화를 입이 닳도록 예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이른바 1세계에 속하는 나라들과 경쟁력을 갖춘 사람 들 이라는 점이다. 이와는 상반적으로 23세계에 속한 나라들과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 들 에게 세계화란 부익부 빈익빈으로 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고 공동체의 몰락과 환경파괴의 가속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세계화는 기업가들이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다 자유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 모든 장벽들을 제거하자는 의미에서만 진보적인 의미를 가질 뿐 일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선 오히려 모든 장벽이 제거된 하나의 지구촌 이라는 개념 안에서 세계적인 무한 경쟁 시대의 생존 투쟁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기업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괴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즉, 무한 경쟁 시대 속에서 각종 규제의 완화 및 철폐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자 하는 기업가들에게 있어서 ‘삶의 질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 관계는 소위 잘사는 나라들 보다 ‘세계화’를 통해 잘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개발도상국 등에서 더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무한대의 경쟁 속에서는 모두가 이기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패배하고, 이긴 사람들조차 또 다른 다음의 경쟁을 대비해 더욱 이를 악물며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하게 되는 것이다. 소수를 위해 다수의 배고픔이 희생되어야 하고 다시 그 소수가 생산해내는 부를 얻기 위해 다수의 패배자들이 삶의 질을 포기한 채, 대중 매체와 그것이 제공하는 ‘세계화’의 물결에 속박되어 살아야만 하는 것이 세계화가 가져오는 진짜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진보의 개념으로만 여겨져 오던 ‘세계화’가 갖는 무서운 덫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세계화는 매우 상반되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다.
★맺으면서
<글로벌 스탠다드와 우리>
지난 세기의 개인 간 경쟁, 지방 내 경쟁, 국가 내 경쟁은 더 이상의 목표가 되지 못하고, 이제 그 범위는 전 세계로 넓어졌다. 흔히 글로벌 스탠다드는 이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혹은 앞서가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고, 신자유주의, 세계시장, 무한경쟁과 같은 단어들과 함께 쓰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글로벌 스탠다드는 경제적 개념이 아닌 개인의 행동, 집단의 특성, 국가적 정책, 더 나아가 전세계적 차원으로 널리 퍼져있는 현상이다. 어떤 가치보다 경제적 논리가 우선이라고 하는 지금의 분위기 속에서 글로벌 스탠다드가 경제, 정치, 문화 모든 방면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 경제 논리에 적응하지 못해 맞이하게 된 IMF사태 이후, 글로벌 스탠다드가 우리나라 전반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처음, 글로벌 스탠다드가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고유의 것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우선적으로 적응하려는 이중적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 혼란기를 겪으며 글로벌 스탠다드가 점점 한국 사회를 장악해 가면서 그 긍정적 측면인 투명성·공정성 등이 사회 각 부문에 침투하게 되며, 능력 위주 사회 분위기로 변해간다. 그 후, 글로벌 스탠다드가 강요되는 데 대한 반작용으로 처음에는 국산품 애용 등의 일시적인 애국심 증대 현상이 있었으나, 글로벌 마인드가 확산되면서 애국심 증대 현상도 약화되어 간다. 삼성경제연구소 ‘IMF 충격, 그 이후’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가 깊이 침투해 있고 이미 위에서 언급한 과정을 겪어왔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당연시 되면서도, 이제 표준을 벗어난 주체성이나 다양성에 대한 논의도 많아지고 있다. 과연 글로벌 스탠다드가 정의 그대로 세계표준인가 하는 물음도 제기되고 있다. 단지 미국을 비롯하여 선진국들의 경제 수준을 목표로 삼아,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어 나가는 아메리카 스탠다드가 아닌가 하는 비판이 그 중 하나이다.
경제 논리가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현재 상황에서, 경제적 풍요나 성장을 무시하고서는 기본적인 삶의 영위도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또, 상호소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나라만이 전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세계의 흐름인 글로벌 스탠다드에 적응해 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역사 속에 많은 변화의 시기가 있었듯이 지금의 가치가 이다음 세상의 가치에 100%부합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원한다면, 아메리카 스탠다드라는 말처럼 주어진 글로벌 스탠다드의 일방적인 추진이 아니라, 우리만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포용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생각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개인, 기업, 국가라는 단위(unit)들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한 상호 이해증대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