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론] 나카에 도쥬(中江藤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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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일본의 옛날 교육

2. 소년시절과 자각

3. 모친숭배

4. 오미(近江)의 성인

5. 내면의 사랑

본문내용

겸덕(謙德)을 구하지 않으면, 아무리 학문적 재능이 있다고 해도, 아직까지 속세의 때를 벗은 지위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자만심은 손해를 끼치고, 겸양은 하늘의 법이다. 겸양은 무욕(虛)이다. 마음이 겸허하면, 선악의 판단은 자연히 생긴다.
허(虛)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고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이 말에 한번쯤 부딪친다. 정신적인 것은 겸허이고, 겸허한 것이 정신적인 것이다. 이것을 잘 판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덕의 높이에 도달하기 위한 도쥬의 방법은, 상당히 간단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덕을 갖기를 희망한다면, 매일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가지 선을 행하면 한가지 악이 없어진다. 날마다 선을 행하면, 날마다 악은 없어진다. 낮이 길어지면 밤이 짧아지듯이, 선을 실천하면 모든 악은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마음의 겸허로, 도쥬는 최고의 만족을 깨닫고, 아직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감옥 바깥에 감옥이 있어,
세계를 넣을 정도로 넓다.
그 사방의 벽은, 명예, 이익, 교만, 욕망으로의 집착이다.
슬픈 일에는, 실로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연결되어, 언제까지나 한탄하고 있다.
「원하는 일」과 같은 욕망은, 어떤 것이라도 피했습니다. 불교는 이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도쥬의 신앙의 대상으로는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비록 선한 일도 보상목적으로 행한다면, 비록 내세의 보상일지라도, 도쥬는 반대했습니다. 정의는, 그것 이상의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상을 받아 내세에서 산다고 하는 기대 없이, 만일 있다고 해도, 도쥬의 정의애(正義愛)와「천도(天道)」를 실행하는 기쁨을, 조금도 방해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불교의 신앙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유교로 바꾼 아들의 일을 슬퍼하고 있는 한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내세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내세가 중요하다면, 현세는 더욱 중요합니다. 현세에서 방황하면, 내세에서도 계속 헤매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내일도 알 수 없는 덧없는 인생에 있어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부처를 늘 숭배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럼 이만 도쥬는 무신론자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신들에 대해서 깊은 경의를 표하고 있던 일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단지, 도쥬의 신앙은, 바르게 살고 싶다라는 소원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원하는 일」에 대해서는, 드물 정도로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해도 도쥬는, 인생을 상당히 즐겁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도쥬의 저술을 통해서, 의기소침한 기색은 한 점도 엿볼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섬기는 신과 우주의 사상에서 보면, 양명학파인 도쥬가, 어째서 이 정도로 행복했는지,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겨울날에」라고 제목 붙여진 노래에는, 변함없는 기쁨으로 넘친 심정이 읊어지고 있습니다.
세상 속의 벚꽃을 전혀 꺾지 않으면
봄의 마음은 평온해진다
다음도 같은 장단의 노래입니다.
생각컨데 아주 괴로운 세상이구나 속세를
배우고 편안히 즐기지 않으면
그러나, 도쥬는 장수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2년 전에 먼저 죽은 후, 도쥬는 40살이 된 1648년 가을, 그의 인생에 어울리는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죽음이 찾아온 것을 알자, 제자들을 불러모아, 보통 때처럼 정좌하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가 왔는데, 아무쪼록 우리의 길이, 나라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다오」
그리고 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모여서 상복을 입었습니다. 선생에게 경의를 표하고, 모든 다이묘로 부터는 대리인이 보내졌습니다. 장례식은 거국적인 행사가 되어, 덕과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나라에 있어서 커다란 손실인 도쥬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몇 년인가 후에, 도쥬가 거주하고 있던 가옥은,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수리를 받고,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도쥬의 이름을 딴 신사도 세워져, 연 2회의 기념제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묘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간소한 예복을 걸치고 안내를 하는 것입니다. 3백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어째서 이 정도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라고 질문 받으면 마을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이 마을 근처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상냥하고, 아들은 아버지께 효를 다하며, 형제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노성(怒聲)이 들리지 않고, 모두가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도쥬 선생의 가르침과 후세에 남겨진 감화 덕택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선생의 이름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숭배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감화」를 끼치게 하려고, 큰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신문광고를 이용하는 등 아주 놀랄 정도이지만, 진정한 감화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인물을 닮는 것이 좋겠지요. 장미꽃이, 자신의 향기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도쥬도 자신의 영향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도쥬와 같이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평생, 글을 쓰거나, 설교를 하거나 , 몸짓 손짓을 사용한다거나 하는 점에서, 각자「다다미 한 장 정도의 묘」외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찍이 도쥬가 말한 것이 있습니다.
「계곡의 웅덩이에도 산 틈새에도, 이 나라의 도처에 성현은 있다. 단지, 그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그것이 진정한 성현이고, 세상에 이름을 떨친 사람들은 섬기기에 부족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도쥬의 이름은「세상에 널리」(알고 있듯이 본인의 바램과는 반대로)알려졌습니다. 이것은 소망을 높이해서 인생을 보낸다면, 조용한 인생을 보냈다고 해도, 힘을 미치게 하는 일은, 도쥬로 부터 배우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옛날의 일본을,「계곡의 웅덩이」인 학교에서 머물고 온갖 속악(俗惡)으로부터 지킨 사람, 그것은, 이와 같은 성인들이었던 것입니다. 덕과 감화에 관해서는, 가볍게 배우고 있는 현대의 교육제도에 의한 한, 우리들 속에 만연된 속악을, 과연 좋게 맞이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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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12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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