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강도자기미술관을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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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강도자기미술관을다녀와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Ⅰ들어가는 말

Ⅱ박물관 소개 및 조사 내용

⑴개요
⑵제 1전시실: 도자 문화실
⑶제 2전시실: 유물전시실
①고려시대이전의 도기
②고려시대의 도자기
③조선시대전기의 분청사기
④조선시대의 백자
⑷제 3전시실: 해강기념실

Ⅲ소감문

본문내용

양으로 장식하여 일체감을 주는 경우는 드물게 전해짐. 간략하게 초문을 장식한 이 철화분청사기는 충남 공주시 학봉리 가마터에서 제작.
4.분청사기 덤벙분장문 항이리형 주자
-시대:조선시대 16세기
-백자의 제작이 본격화되는 15세기 후반부터는 백토를 많이 발라 백자의 유사하게 보이는 분청사기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작은 단지에 짧은 주구와 손잡이가 붙은 이 앙증맞은 주자는 백토물에 '덤벙'담궈내는 기법으로 분장하였다. 이러한 기법의 분청사기는 전라남도 고흥,무안 등지에서 주로 생산하였다.
조선시대의 백자
조선은 검소,검약을 숭상하는 성리학적 예의의 사회였다. 백자에서 느끼는 정돈된 단아의 요구가 증가하고 널리 보편화되면서 일반 백성의 힘차고 건강한 삶의 구현으로 만들어진 백자에서는 한국인만이 가질수 있는 대범한 조형미가 나타나고 있다.
1.백자 태항아리
-시대:조선시대 15세기
-왕실에서 갓 태어난 왕손의 태를 담아 봉안하던 항아리이다.
태항아리는 보통 대,소의 2대가 짝을 이루는데 작은 내호에 태를 담고 이를 다시 큰 외호에 담아 태묘에 안장한다. 몸체와 뚜껑에는 끈으로 묶을수 있도록 고리가 장치되어 있다.
2.백자 철화 운룡문 항아리
-시대:조선시대 17세기 후반
-구형의 큰 항아리는 조선후기 백자의 특징적인 형태.
그중에서 이처럼 다소 납작한 항아리는 18세기에 완전한 구형을 이루는 소위 달항아리의 선행형식이며, 특히 자유분방한 철화 문양의 시문은 17세기 후반 백자의 특징이다. 가는 빙열이 있는 유면 아래에 용문양이 거침없는 필치로 대담하게 표현되어있다.
3.백자 달항아리
-시대:조선시대 18세기 전반
-공처럼 둥근 순백색의 항아리로 조선 백자항아리 가운데 가장 특 징적인 형태.달덩이처럼 둥글어서 부자집 맏며느리같은 후덕한 아 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하여 달항아리라 부른다. 이러한 대형항아 리는 위,아래 부분을 반구형으로 따로 성형한 다음 서로 붙여서 만 드는데 구울때 무게에 의해 많이 찌그러지기 때문에 완전한 구형을 얻기 어렵다.
4.백자 청화 운룡문 항아리
-시대:조선시대 18세기 후반
-조선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이 용문항아리의 단아하고 안정된 형태와 풍부한 양감은 이루말할수없이 빼어난데 조선초부터 형성된 조선 백자항아리 특유의 풍만한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게다가 표현된 용문양은 농담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섬세한 세필로 묘사되어 깊고 화려한 색감을 느낄수 있다. 문화적 부강을 누린 정조년문에 제작된 이 항아리는 형식의 완결성을 통해 조선 왕실의 자신감을 당당히 드러낸 작품이다.
5.흑유병
-시대:조선시대 15세기
-청자와 유사한 태토로 만들고 전면에 흑유를 두텁게 사용하였는데, 목이 길고 하체가 풍만하여 중량감을 느낄수 있다. 이와 같은 흑유는 고려시대부터 일상생활용기로 널리 애용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제 3전시실: 해강기념실
해강 유근형옹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189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국권이 상실되었던 기간에 보성학교를 졸업하였고 곧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청자재현에 뜻을 둔 이후 백수인 1992년 말까지 현역도공으로서의 역할을 거르지 않았다.
해강옹이 암울했던 일제침략기에 반천년동안 맥이 끊기어 잊혀졌던 고려청자의 영광에 신명을 바쳤던 일은, 현대한국의 도자 발전에 초석을 쌓는 일이 되었으며 아울러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이 되었다.
이제 1993년 1월 20일 고인이 되신 해강옹의 업적을 널리 기리는 뜻에서 기념실을 마련하였다.
1.청자 투각진사 모란 당초문 호
-시대:1980년대
-크고 작은 두개의 항아리를 따로 만들어 포개 넣은 후 입언저리를 함께 붙인 다음 바깥의 항아리에 투각기법으로 문양을 새긴 항아리
2.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시대:1980년대
-소장:간송미술관. 국보 제 68호 -매병을 소재로 제작한 전성시기 고려의 청자 매병
3.청자 상감 포도동자문 표주박형 주자 -1950년대 후반
4.분청사기 박지 모란문호 -1950년경
5.분청사기 음각 학문 소병
-시대:1940년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고급도자기의 주 구매층은 일본인이었다. 이병은 당시에 유행했던 일본 취향적인 소병의 형태에 분청사기의 문양소재와 기법을 응용한 것이다.
6.고려청자 제작법 설명서
-1953년 10월 해강 유근형 필사본
-답자지, 재료, 재료구입처, 재료비,제작 기법등 해강 선생이 스스로 경험한 내용을 일기처럼 기록한 책. 한국 근현대도자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Ⅲ 소감문
해강 도자기 미술관을 다녀 와서...
이번 해강 도자기 미술관을 다녀 온 것은 다른 어느 곳의 방문보다도 뜻 깊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익힐 수 있던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옛 도자기들을 직접 앞에서 보니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그 솜씨에 놀라기도 했다. 우리가 도자기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 일본 관람객들이 들어 왔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의 도자기에 감탄하는 듯 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우리의 도자기들이 외국사람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놀라움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찍기 위해서 사진기도 준비하여 갔는데 안타깝게도 도중에 사진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미술관 내를 살펴보고 나서 바깥쪽에 위치한 가마터를 둘러 봤는데 좋은 구경거리가 많이 있었다. 땔감이나 도자기를 굽는 곳등등,, 사진으로 남겨 갔음 했는데 무척이나 안타까운 마음이였다.
우리가 본 해강 도자기 미술관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시대별로 도자기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 주어 이해하기도 쉬웠다. 아쉬운 점이라면 전시관 내 안내표에 지나치게 한문이 많아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린이 손님은 생각을 하지 못 한 듯 했다. 하지만 이것만을 제외한다면 옛 도자기들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곳이라 생각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한번쯤은 이 곳을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가족이 함께 방문해 자녀들에게도 가르쳐 주면 책으로 보는 것보다 더욱 유익하고 알찬 기회가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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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13
  • 저작시기2006.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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