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세쯔코의 몸에 이상이 생긴 이유는 영양실조가 아닌 동물성 전염병이나 수인성 전염병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남매가 토나리구미라는 사회통제망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염병 예방조치가 실시되더라도 이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시골에서는 토나리구미로 인하여 유리 걸식은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굶어도 함께 굶고 먹어도 함께 먹는다는 ‘사회통제망’은 이렇게 때에 따라서는 순기능도 할 수 있었던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전쟁에 거의 져서 상층부는 파탄 직전이라 하더라도, 하층부의 주민통제조직인 토나리구미와 코반(交番, 1인 파출소)은 여전히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렇기 때문에 도시지역보다는 오히려 시골지역이 혼란이 적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비 오는 날, 남매가 함께 마을에 들어왔다가 자전거를 끌고 가는 군복차림의 중년 아저씨와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잘 들어보면 배경에서 군악대 연주와 “반자이(만세)~”하는 함성이 들려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무엇일까? 전쟁에 다 져가지만, 또 청년들을 군에 입대시키는 총알받이 환영회의 소리일까?
하지만 뒤에까지 보지 않으면 이 ‘만세’의 의미를 알 수 없다. 그것은 입대환영식이 아니라, 황군 소집해제에 즈음하여 열린 ‘최후의 만찬’격인 퍼레이드였던 것이다.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는 아직도 B-29가 왠지 모를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주인공 남매는 아직도 전쟁이 끝난 것을 모르고 있다. 미군은 일본에 진주한 후 일본인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이런 위력시위를 자주 행하였다. 맥아더가 일본 천황을 불러 ‘나는 신이 아니다.’라는 선언을 방송하게 하고, 키 큰 맥아더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작은 키의 히로히토 천황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일반에 공개하고, 황궁이나 기타 번화가에서 주기적으로 군사퍼레이드를 벌였던 것은 전부 일본인들의 기를 확실히 꺾어놓기 위해서였다. 패전하기 전의 군국주의 시대에는 고개를 들어 천황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도 불경죄로 처벌받았던 일본인들로선 정말로 세상이 뒤집힌 것이다.
세쯔코의 병세는 말기증세를 보인다.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장난감을 사탕인 양 빨아댄다. 오빠는 세쯔코에게 먹을 것을 사주기 위하여 다시 은행으로 향한다. 하지만 은행에서 그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는다. 그들 남매는 지금까지 완전히 <메멘토>와 같은 ‘사고조작의 세계’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무심하게 내뱉는 어른들의 말: “곧 미군이 들어온다는데, 잔치는 무슨 잔치야?” 마치 남의나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 이유는 앞에 설명된 바 있다.: “그러면 전쟁에 졌단 말입니까?” “일본이...대일본제국이 항복을 했단 말입니까?” “그럼 우리 아버지가 타고 있는 순양함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거 가라앉은지 오래야!”
죽어가는 세쯔코를 위하여 오빠가 사온 것은 다름아닌 수박이었다. 왜 수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세쯔코는 수박을 사온 그 날, 다시는 눈을 뜰 수 없게 되었다. 오빠는 동생을 화장시키면서, 동생을 드롭카미(drops神, 사탕신)에게 바친다고 말한다. 이후 오빠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동네 꼬마들이 일전에 나매가 살던 동굴을 발견하고는 “여기는 죽은 것들 밖에 없어”라고 말한다. 곧이어 어디로 도망갔던 족속들일지 모를, 부티나는 옷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아, 다시 집에 돌아왔어~” “아, 아름다운 경치~”
전축에서는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벌써 미제의 문화침략이 시작되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전쟁 전에 사람들이 좋아하던 이런 서구문물은 전시에는 모두 금지되고 터부시되었던 것일 것이다.
“쇼와28년(1945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 어디인지 모를,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 어른들은 “곧 미군이 도착한다는데...”라고 말하며 지나간다. 축 늘어져 있는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제 사탕신을 숭배하던 헌 지배층은 구겨서 땅바닥에 처박아놓고 ‘합중국이라는 새 지배자’를 맞을 일이 걱정인 것이다. 저녁, 역무원 미슷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고아들을 점검한다. “여기도 죽었군.” “여기는 눈을 부릅뜨고 죽었어.” 마치 쓰레기를 점검하듯이 무심하게 말을 내뱉는다.
일견 이 작품은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한 반전 애니메이션이라고 평가받을 구석도 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반전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왜 꼭 ‘피해자’로서의 일본만을 부각시켜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에게 두들겨 맞고 결국 핵폭탄까지 맞아버린 불쌍한 일본인, 미국은 과연 이런 만행을 저질러야만 했던가 하는 식의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평화의 원점으로 부상되었고, ‘No More Hiroshima'라는 문구는 평화운동의 슬로건이 되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사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노동운동, 시민운동 단체가 주도하는 평화운동의 경우에도 피폭일을 평화운동의 원점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지방 교원노조에서는 여름방학 중인 이날 학생들을 등교토록 하여 기념식을 하는 곳도 있다. 이것은 전후 냉전체제하에서 일본의 평화운동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전개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본인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인식이 무엇을 원점으로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에 관련된 어두운 기억들은 일본인들이 평화와 경제발전을 통한 일상생활의 아정 확보를 중요한 가치로서 추구하는 심리적 기초가 되었다. 피해체험으로서의 전쟁체험은 전후 계속 반추되면서 현대 일본의 사회심리 형성에 중대한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피해의 기억을 중심으로만 반추되어온 전쟁체험은, 이 전쟁이 지닌 가해와 피해의 이중구조로는 거의 자각되지 못하였다.” -일본사회 개설, 한영혜
똑같은 평화와 반전은 강조하면서도 국가는 국민교화와 대외용으로, 시민사회는 국민각성과 대내용으로 달리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남매가 토나리구미라는 사회통제망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염병 예방조치가 실시되더라도 이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시골에서는 토나리구미로 인하여 유리 걸식은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굶어도 함께 굶고 먹어도 함께 먹는다는 ‘사회통제망’은 이렇게 때에 따라서는 순기능도 할 수 있었던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전쟁에 거의 져서 상층부는 파탄 직전이라 하더라도, 하층부의 주민통제조직인 토나리구미와 코반(交番, 1인 파출소)은 여전히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렇기 때문에 도시지역보다는 오히려 시골지역이 혼란이 적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비 오는 날, 남매가 함께 마을에 들어왔다가 자전거를 끌고 가는 군복차림의 중년 아저씨와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잘 들어보면 배경에서 군악대 연주와 “반자이(만세)~”하는 함성이 들려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무엇일까? 전쟁에 다 져가지만, 또 청년들을 군에 입대시키는 총알받이 환영회의 소리일까?
하지만 뒤에까지 보지 않으면 이 ‘만세’의 의미를 알 수 없다. 그것은 입대환영식이 아니라, 황군 소집해제에 즈음하여 열린 ‘최후의 만찬’격인 퍼레이드였던 것이다.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는 아직도 B-29가 왠지 모를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주인공 남매는 아직도 전쟁이 끝난 것을 모르고 있다. 미군은 일본에 진주한 후 일본인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이런 위력시위를 자주 행하였다. 맥아더가 일본 천황을 불러 ‘나는 신이 아니다.’라는 선언을 방송하게 하고, 키 큰 맥아더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작은 키의 히로히토 천황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일반에 공개하고, 황궁이나 기타 번화가에서 주기적으로 군사퍼레이드를 벌였던 것은 전부 일본인들의 기를 확실히 꺾어놓기 위해서였다. 패전하기 전의 군국주의 시대에는 고개를 들어 천황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도 불경죄로 처벌받았던 일본인들로선 정말로 세상이 뒤집힌 것이다.
세쯔코의 병세는 말기증세를 보인다.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장난감을 사탕인 양 빨아댄다. 오빠는 세쯔코에게 먹을 것을 사주기 위하여 다시 은행으로 향한다. 하지만 은행에서 그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는다. 그들 남매는 지금까지 완전히 <메멘토>와 같은 ‘사고조작의 세계’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무심하게 내뱉는 어른들의 말: “곧 미군이 들어온다는데, 잔치는 무슨 잔치야?” 마치 남의나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 이유는 앞에 설명된 바 있다.: “그러면 전쟁에 졌단 말입니까?” “일본이...대일본제국이 항복을 했단 말입니까?” “그럼 우리 아버지가 타고 있는 순양함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거 가라앉은지 오래야!”
죽어가는 세쯔코를 위하여 오빠가 사온 것은 다름아닌 수박이었다. 왜 수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세쯔코는 수박을 사온 그 날, 다시는 눈을 뜰 수 없게 되었다. 오빠는 동생을 화장시키면서, 동생을 드롭카미(drops神, 사탕신)에게 바친다고 말한다. 이후 오빠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동네 꼬마들이 일전에 나매가 살던 동굴을 발견하고는 “여기는 죽은 것들 밖에 없어”라고 말한다. 곧이어 어디로 도망갔던 족속들일지 모를, 부티나는 옷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아, 다시 집에 돌아왔어~” “아, 아름다운 경치~”
전축에서는
“쇼와28년(1945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 어디인지 모를,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 어른들은 “곧 미군이 도착한다는데...”라고 말하며 지나간다. 축 늘어져 있는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제 사탕신을 숭배하던 헌 지배층은 구겨서 땅바닥에 처박아놓고 ‘합중국이라는 새 지배자’를 맞을 일이 걱정인 것이다. 저녁, 역무원 미슷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고아들을 점검한다. “여기도 죽었군.” “여기는 눈을 부릅뜨고 죽었어.” 마치 쓰레기를 점검하듯이 무심하게 말을 내뱉는다.
일견 이 작품은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한 반전 애니메이션이라고 평가받을 구석도 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반전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왜 꼭 ‘피해자’로서의 일본만을 부각시켜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에게 두들겨 맞고 결국 핵폭탄까지 맞아버린 불쌍한 일본인, 미국은 과연 이런 만행을 저질러야만 했던가 하는 식의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평화의 원점으로 부상되었고, ‘No More Hiroshima'라는 문구는 평화운동의 슬로건이 되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사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노동운동, 시민운동 단체가 주도하는 평화운동의 경우에도 피폭일을 평화운동의 원점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지방 교원노조에서는 여름방학 중인 이날 학생들을 등교토록 하여 기념식을 하는 곳도 있다. 이것은 전후 냉전체제하에서 일본의 평화운동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전개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본인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인식이 무엇을 원점으로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에 관련된 어두운 기억들은 일본인들이 평화와 경제발전을 통한 일상생활의 아정 확보를 중요한 가치로서 추구하는 심리적 기초가 되었다. 피해체험으로서의 전쟁체험은 전후 계속 반추되면서 현대 일본의 사회심리 형성에 중대한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피해의 기억을 중심으로만 반추되어온 전쟁체험은, 이 전쟁이 지닌 가해와 피해의 이중구조로는 거의 자각되지 못하였다.” -일본사회 개설, 한영혜
똑같은 평화와 반전은 강조하면서도 국가는 국민교화와 대외용으로, 시민사회는 국민각성과 대내용으로 달리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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