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마르틴 부버의 만남의 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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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철학]마르틴 부버의 만남의 교육철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현대교육의 당면과제와 「만남」

Ⅱ. 부버의 생애

Ⅲ. 하시디즘
1. 하시디즘의 발생
2. 하시디즘의 성속관(聖俗觀)
3. 하시디즘의 종교적 삶
4. 하시디즘의 가르침
5. 하시디즘의 영향과 평가

Ⅳ. 「만남」의 철학
1. 인간의 이중적 태도
2. 대화적 관계

Ⅴ. 부버의 교육철학
1. 실존적 교육관과 「만남」의 교육
3. 가치/윤리교육론
2. 인간교육론

Ⅵ. 마르틴 부버의 「만남」의 교육철학에 관한 고찰

본문내용

물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동을 가르치는 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키울 수 있다는 교육관을 말한다. 반면 유기론적 교육관은 정원사가 식물을 가꾸듯이, 아동의 내면에 이미 그의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가르치는 이는 환경만 조성하여 주면된다는 교육관을 말하고 있다. 이 둘은 상반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전통적 교육관으로서 공통점 또한 내포하고 있다. 바로 방법론적 입장에서 교육이 점진적, 계속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아동들에게 교육이라는 입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학습이라는 결과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타당한 이야기이다. 나도 부버의 「만남」의 교육철학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과연 교육이란 전통적 교육관처럼 입력에 따라 결과가 선형적으로 나타나는 점진적 계속적 현상일 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부버의 교육관이다. 부버는 교육이란 비계속적단속적 과정을 통해서도 이뤄진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운명적 만남을 통해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이 그러했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이 그러했다. 이러한 비연속적, 단속적 계기를 통한 교육을 부버는 「만남」을 통한 교육이라 칭하였다. 하지만 그 만남은 은혜가 될 수도 있고 인연이 될 수도 있으며 각성(깨우침)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불교라는 종교가 떠올랐다. 부버는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의 하시디즘을 토대로 자기의 철학을 세워나갔다. 불교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지만 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불교를 떠올렸을까? 왜 원효의 유심론(唯心論)이 생각이나며, 왜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불교 용어가 문득 떠올랐을까? 과연 이것들 사이에는 그 중심을 꿰뚫는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합리주의로 대표되는 이성중심의 서구근대주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부버의 사상과 관련이 있다. 그는 인간이 기계화되고 도구화되며 오직 냉철한 이성만이 떠받들여지는 당시 사회상에 대한 비판으로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출발한 것이다. 결국 그러한 서구근대주의의 극단적인 병폐로 나타난 것이 2차 세계대전 때 나찌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 대학살이었다. 이는 지식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과연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다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동안 이성을 가진 유일무이한 존재로 여겨지던 인간이 어떻게 그러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분출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비인간화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실존주의와 타자 윤리학 그리고 배려 윤리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사회는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다시 인간의 감성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상을 오래전부터 견지해오고 있었다. 바로 불교와 민간신앙을 통해서 인 것이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만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불교의 사상을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부버 이야기를 읽으며 자꾸 불교가 중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부버는 지금까지의 세계관이 ‘나와 그것’으로 대변되는 도구적, 조작적 세계관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근대 이성중심의 사회에서는 나와 타인을 나누고 나와 자연을 나누며 육체와 정신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왔다. 여기에서는 오직 나 자신에 관해 사고할 뿐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 자연 등은 주요 관심사에서 밀리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결국 인간이 속해 살아가는 세계와 단절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인간은 오직 인간 혼자만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고결한 이성을 가지고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도 관계를 맺으며 또한 자연 속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버는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나와 그것’으로 대변되는 세계관에서 ‘나와 너’로 대변되는 세계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와 너’의 세계관이란 참된 관계를 맺기 위해 진실한 모습으로 대면하는 주체와 객체이다.‘나와 그것’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며, 나만이 살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와 너’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주인공이며,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버는 참된 만남을 통한 관계 형성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버의 생각을 우리의 불교에서는 연기설을 통해 이미 일찍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서로 관계 맺지 아니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나는 나로서 너는 너로서 이분법적으로 끊어지는 세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어떠한 끈으로든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물며 하찮은 미물이라도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버의 사상과 불교는 어떤 면에서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부버의 교육관은 냉철한 이성으로 대변되던 근대서구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냉철한 이성만을 가진 인간은 결국 비인간화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예전부터 해왔었고, 타인과 자연과 영적 존재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체득하고 있었다. 즉 「나-너」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떠한가? 뒤늦게 서구근대문명을 받아들인 우리는 그동안 우리 조상들이 구축해온「나-너」의 세계관을 과감히 폐기하고 「나-그것」의 세계관으로 급격히 전환시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즈음 우리 사회가 각박해지고 점점 위험해지고 있는 것은 인간이 타인을 존재 대 존재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도구적, 조작적으로 대하려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부버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서구사회에 이렇게 외쳤다. “「나-그것」의 세계관에서 「나-너」의 세계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몇 천 년 전부터 실천해왔었다. 지금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지만 말이다. 이제는 이러한 우리 조상의 가르침을 다시 찾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키워드

교육,   사범,   교직,   철학
  • 가격2,000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6.03.06
  • 저작시기2006.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8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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