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 율법에 매어 헤어나지를 못한 것이다(갈3:23-25).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면서(막2:28, 눅6:5, 마12:8)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셨다(막2:27).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주일) 에 부활 하셨고 또 그날에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 있어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교인들은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변화 시키지 않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주의 날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고전16:2, 행20:7),
“ 행20:7의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 모였더니, 란 말은 초대교회는 예배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했음을 보여 준다.”
이들은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 종교회의에서 조차 거론되지 않았고 이방인들에게 안식일은 지키도록 강요하지도 않았다(행15:6-9). 바울은 이문제와 관련해서 골2:16에서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고 했고 골2:17 에서는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다.
그리고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며 각각 그 마음에 확정하라” 고 강조 했다(롬14:5-6)
그리고 갈4:10-11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하노라” 고 했다. 더욱이 히브리서 기자는 히10:1에서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라고 했다.
히4:4-9 에서는 안식일의 영적의미를 강조해서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요 무궁한 안식일의 표상으로 보았다. 호2:11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징계가 나타나는데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안식일과 관련해서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사도들의 권위에 근거해 아무이의 없이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킨다.
*구약의 모든 율법은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언약이 체결되었고 이 언약은 예수그리스도가(약속의 자손)오심으로 모든 율법이 완성된 것이다(갈3:19) 이제는 율법의 멍에를 메고 있는 자가 아님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갈5:1)
맺는 말(결론)
안식교가 한국에 전래된 이래 교육, 의료, 사회사업, 구호사업, 금주, 금연 운동등 실로 괄목할만한 활동을 해왔다. 또한 안식교의 원리 도덕적인 정직성과 성실성은 감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거의 완벽했다.
항상 범죄하지 않으려는 안간힘 속에서 양심의 가책마저 되는 일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배타성, 독선우월감, 선민의식은 배제하고라도 성경해석에 있어서 결정적인 오류와 빗나간 연대계산법, 화이트 부인의 신격화와 여선지성 화이트 부인의 예언, 환상 등 신비체험과 성경적 권위 등 동등성 주장 등은 우리 개신교회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질적이고 이단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완전한 계시이다. 이 기존의 성경을 벗어난 모든 계시는 이미 하나님의 계시에서 벗어난 이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안식교의 이단을 연구하며 필자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기독교가 가장 부흥한 한국이 또한 이단이 가장 많은 발흥을 하는 땅이라는 사실이었다.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 온지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독교에 대한 이단들 또한 눈부신 성장을 이루며 지금 한국 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지 않는 어두운 그늘에서 혹은 양의 탈을 쓰고 사회의 양지에서 이단들은 눈부신 성장과 활약을 해 온 것이다.
이렇게 성장하는 이단의 모습을 보며 가장 안타깝게 느낀 것은 바로 진리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반응이었다. 수많은 이단들이 성장을 하며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노리고 있는데 참 생명과 진리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에서는 아무런 대응을 아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몇몇의 선교단체나 교회에서 이단에 대해 연구하며 이단의 발흥에 응전을 하고 있지만 우리 한국 기독교 전체의 모습으로 볼 때, 너무나 미비하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사를 배우며 수많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이단의 발흥에 대항하며 그들의 삶을 바쳐 진리를 수호하고 참되신 생명을 말씀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이단들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진정한 진리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발견하는 모습 또한 보았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선조들처럼 이단들에 대해 엄중한 경고와 진리의 선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 싸움은 초대교회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하고 미혹에 빠질 한 영혼을 위해 싸워야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럴 때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부어주셨음을 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진리가 참 진리임을 온 만방에 선포해야한다. 더 이상 이 땅에 이단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이단들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가 아닌 초대교회 당시 믿음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적극적인 응전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온전히 선포되도록 그리고 미혹의 영이 이 땅에서 활동치 못하도록, 우리의 눈물과 행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 땅 어디에서도 참 진리 되신 그리스도가 선포되기를 기대하고 기도하자.
“수많은 선조들이 이단의 발흥에 분노하며 진리를 선포하게 하시고 그 선조들의 삶 가운데 그들이 진리를 올바로 선포하고 수호하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신 진리의 하나님. 하나님의 행하신 모든 일들을 찬양 드립니다. 하나님 저희에게도 이러한 마음을 주소서. 이단의 대해 분노하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주소서. 이단의 발흥에 마음을 찢으며 미혹의 영에 대해 분노케 하시고 그들을 향해 엄중한 전쟁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진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학기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면서(막2:28, 눅6:5, 마12:8)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셨다(막2:27).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주일) 에 부활 하셨고 또 그날에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 있어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교인들은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변화 시키지 않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주의 날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고전16:2, 행20:7),
“ 행20:7의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 모였더니, 란 말은 초대교회는 예배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했음을 보여 준다.”
이들은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 종교회의에서 조차 거론되지 않았고 이방인들에게 안식일은 지키도록 강요하지도 않았다(행15:6-9). 바울은 이문제와 관련해서 골2:16에서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고 했고 골2:17 에서는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다.
그리고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며 각각 그 마음에 확정하라” 고 강조 했다(롬14:5-6)
그리고 갈4:10-11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하노라” 고 했다. 더욱이 히브리서 기자는 히10:1에서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라고 했다.
히4:4-9 에서는 안식일의 영적의미를 강조해서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요 무궁한 안식일의 표상으로 보았다. 호2:11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징계가 나타나는데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안식일과 관련해서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사도들의 권위에 근거해 아무이의 없이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킨다.
*구약의 모든 율법은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언약이 체결되었고 이 언약은 예수그리스도가(약속의 자손)오심으로 모든 율법이 완성된 것이다(갈3:19) 이제는 율법의 멍에를 메고 있는 자가 아님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갈5:1)
맺는 말(결론)
안식교가 한국에 전래된 이래 교육, 의료, 사회사업, 구호사업, 금주, 금연 운동등 실로 괄목할만한 활동을 해왔다. 또한 안식교의 원리 도덕적인 정직성과 성실성은 감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거의 완벽했다.
항상 범죄하지 않으려는 안간힘 속에서 양심의 가책마저 되는 일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배타성, 독선우월감, 선민의식은 배제하고라도 성경해석에 있어서 결정적인 오류와 빗나간 연대계산법, 화이트 부인의 신격화와 여선지성 화이트 부인의 예언, 환상 등 신비체험과 성경적 권위 등 동등성 주장 등은 우리 개신교회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질적이고 이단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완전한 계시이다. 이 기존의 성경을 벗어난 모든 계시는 이미 하나님의 계시에서 벗어난 이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안식교의 이단을 연구하며 필자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기독교가 가장 부흥한 한국이 또한 이단이 가장 많은 발흥을 하는 땅이라는 사실이었다.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 온지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독교에 대한 이단들 또한 눈부신 성장을 이루며 지금 한국 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지 않는 어두운 그늘에서 혹은 양의 탈을 쓰고 사회의 양지에서 이단들은 눈부신 성장과 활약을 해 온 것이다.
이렇게 성장하는 이단의 모습을 보며 가장 안타깝게 느낀 것은 바로 진리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반응이었다. 수많은 이단들이 성장을 하며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노리고 있는데 참 생명과 진리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에서는 아무런 대응을 아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몇몇의 선교단체나 교회에서 이단에 대해 연구하며 이단의 발흥에 응전을 하고 있지만 우리 한국 기독교 전체의 모습으로 볼 때, 너무나 미비하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사를 배우며 수많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이단의 발흥에 대항하며 그들의 삶을 바쳐 진리를 수호하고 참되신 생명을 말씀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이단들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진정한 진리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발견하는 모습 또한 보았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선조들처럼 이단들에 대해 엄중한 경고와 진리의 선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 싸움은 초대교회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하고 미혹에 빠질 한 영혼을 위해 싸워야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럴 때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부어주셨음을 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진리가 참 진리임을 온 만방에 선포해야한다. 더 이상 이 땅에 이단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이단들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가 아닌 초대교회 당시 믿음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적극적인 응전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온전히 선포되도록 그리고 미혹의 영이 이 땅에서 활동치 못하도록, 우리의 눈물과 행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 땅 어디에서도 참 진리 되신 그리스도가 선포되기를 기대하고 기도하자.
“수많은 선조들이 이단의 발흥에 분노하며 진리를 선포하게 하시고 그 선조들의 삶 가운데 그들이 진리를 올바로 선포하고 수호하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신 진리의 하나님. 하나님의 행하신 모든 일들을 찬양 드립니다. 하나님 저희에게도 이러한 마음을 주소서. 이단의 대해 분노하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주소서. 이단의 발흥에 마음을 찢으며 미혹의 영에 대해 분노케 하시고 그들을 향해 엄중한 전쟁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진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학기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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