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쇠망원인 탐구와 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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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마제국의 쇠망원인 탐구와 그 평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전제군주제의 폐단 ( dominatus 체제의 페단 )
2. 게르만 족의 침입
3. 노예제의 폐단
4. 인구의 감소
5. 동로마가 살아남은 이유
6. 로마몰락사관의 발전

Ⅲ. 결론

본문내용

에 선 F.페트라르카는 로마의 전성기를 공화정기의 스키피오 시대로 보고, 카이사르의 독재와 자유의 상실을 몰락의 전조로 보았다. E.비온도는 《로마제국의 몰락에 대해서》라는 저서에서 몰락의 시기를 고트인의 로마시 침입에서 구하였으며, 그것은 412년 9월이라고 연대적 규정을 내려 몰락의 내적 ·외적 원인을 구명하였다. N.마키아벨리는 폴리비우스의 ‘정체순환설’을 계승하여 로마몰락의 원인을 자유의 찬탈자 카이사르에게서 찾는 한편, 카이사르 이전의 옛 질서에의 복귀와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쇠망으로부터의 구출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결합하였다. 종교개혁기에 C.켈러는 고대사의 끝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사망시점으로 보았고, 중세사의 끝을 1453년까지로 보는 시대구분을 정함으로써 로마몰락의 구체적 데이터를 제시하였다. 르네상스에 수반되어 발생하였던 퇴폐적 감상주의나 폐허숭배는 바로크 시대에 근대적 이국취미(exoticism)와 데카당스에의 관심이 되어 전개되었다. J.B.보쉬에는 그의 《만국사론(萬國史論)》에서 아우구스티누스적 섭리사관에 입각하여 로마 공화정이 조국애와 엄격한 법질서의 시기에서 폭력과 사리사욕에 의한 내부투쟁의 시기로 타락한 점을 몰락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계몽주의 시대의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 《로마인 성쇠원인론》에서 로마 몰락의 2대 원인으로서 군대세력의 팽창 및 민회의 세력전위를 들고, 그리스도교 특히 수도원에도 그 책임을 돌렸는데, 볼테르는 이 점을 더욱 강조하여 콘스탄티누스의 그리스도교 공인이 몰락에의 길을 열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사상적 영향으로 E.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근대적 합리주의와 반 그리스도교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와 대결하여 오현제 시대의 ‘야만과 종교’의 지배가 몰락의 근본원인이라고 단정하였다.
3) 현대
현대에서의 로마몰락에 대한 문제의 초점은 우선 '로마몰락'을 게르만인의 침입 이전에 로마사회에 내재한 문제로서 그 궁극적 원인을 탐구하려는 방안이 시도되어, 정치적 요소를 중시하는 입장의 사람들, 경제적 요인을 강조하는 입장의 사람들, 생물학 또는 인구론적 고찰에 주력하는 입장의 사람들 등 다양한 논쟁이 전개되었고, 그와 함께 새로운 관점에서 로마몰락의 결정적 요인을 이민족의 침입과 파괴에서 찾으려는 학설도 제기되었다. 또 문화형태학적 견지에 선 슈펭글러와 토인비 등의 독특한 로마몰락관도 표명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계에서는 '로마몰락'이라는 급격한 변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476년의 서로마제국멸망 사건에 역사적 의의를 크게 두지 않으며,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은 수세기에 걸친 과도기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동로마(비잔틴)제국 존속의 의의를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Ⅲ. 결론
이상에서 알아본 몇 가지의 요인들로 로마 제국의 쇠망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 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어느 것 하나의 요인 때문만도 아니고 하나하나가 다른 어느 것에 비해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든 위대한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도 외부의 적에 의해서 붕괴된 것이라기보다는 내부의 문제들로 인해서 스스로 붕괴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게르만 족의 침입 또한 그들이 로마의 파괴를 목적으로 침입을 시작한 것이 아니듯이 로마자체의 허약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로마의 파괴와 몰락을 가져오게 했을 따름이다. 모든 사회적인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서 쇠퇴의 조짐을 보이다가 게르만 족의 침입이라는 외부적인 충격이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제국이라는 이름을 칭하면서 오랜 시간 번영을 누리던 로마 제국이 멸망하기는 했지만 로마 말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부활시키고 싶어 했던 “영원한 로마”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로마인들에게서 전승되어온 가장 중요한 사상의 하나는 문명화된 세계의 통일이었다. 로마 몰락 후 수세기가 지나면서 유럽 국가의 왕들은 빈번히 로마를 동경했는데 이는 바로 그 세계국가적인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신성로마제국은 결코 “신성하지도 않았고, 로마도 아니었고, 제국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국호는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었다. 로마는 그리스 문명, 동방 문명, 이집트 문명, 카르타고 문명 등과 같은 이전 시대의 여러 문명들을 수집하고 이를 전 유럽과 지중해 주변 지역에 확산시켰다. 로마는 철학과 예술 그리고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발명의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여러 문화들의 상호 작용을 촉진하는 통로요, 이를 지켜주는 군대로서, 질서 있는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대한 조직의 법률체계로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언어의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군주제와 공화제, 귀족정치와 민주정치, 자유주의와 독재 등과 같은 정치체계를 발명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을 위한 최적의 실험실을 제공하였으며 이들을 모델로 정착시키고 각각의 정치 형태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과 조직력을 부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사회나 국가도, 어느 문명이나 문화도 쇠퇴하고 멸망하지 않는 것은 없다. 문화나 문명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이 다른 것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영원한 것도 없다. 과학기술을 들어서 뛰어난 문화와 문명을 지닌 나라들을 내세우고 영원히 발전하는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비행기나 자동차는 없어도 오존층의 구멍이 없는 깨끗한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이 지구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에게 있어 과학이라는 것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시키는 불필요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이 그 나름대로의 가능성과 한계성을 가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하나의 목표가 아닌 가 싶다.
참고 문헌
서양 고대의 역사와 문화 HENRY C. BOREN, 이석우 역 탐구당
서양 문명의 역사Ⅰ E.M번즈 등 , 박상익 역 소나무
로마 문명사 도널드 R.더들리, 김덕수 역 현대지성사
로마 제국사 몬타넬리, 김정한 역 까치
서양 중세사 연구 B.타이어니, 박은구 외 역 탐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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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4.05
  • 저작시기2003.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2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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