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없다면 그것은 배우자 잘못이 아니다. 배우자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예외일 수 없다.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내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3. 수 용
1) 배우자를 수용하는 것과 배우자에게 유쾌감을 느끼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책임이고 후자는 축복이다.
2) 배우자를 수용하는 것은 용서에 달려 있고, 용서는 배우자의 못마땅한 행동을 성경적 컨텍스트에서 보려는 마음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의 안전감의 필요를 깊이 채워 주는 관계 속에서 아내와 하나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아내도 남편의 중요감을 채워 주는 관계를 통해 남편과 하나 되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친밀한 관계를 위해 결혼을 계획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의 안전감과 중요감의 필요는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채워 질 수 있다는 진리를 그 안에서 경험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하와를 남편 아담에게 데려오시자 그들이 한 몸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완전한 연합의 관계를 경험했다는 말이다. 그런 관계를 이루는 것이 결혼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연합을 통해 기대하시는 것은 부부가 결혼을 통해 단지 서로 필요의 충족을 경험하는 것 이상이다.
우리는 서로의 깊은 필요에 대해 그리고 상대를 상처 아닌 치유로 대함에 있어 어떻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영적 연합이란 내면의 필요의 차원에서 만날 때 누릴 수 있는 깊은 친밀함의 세계다.
모든 일에는 목표가 있다. 인간은 생각 없이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자동 반응 동물이 아니다. 쉴새없이 멋대로 몰아가는 내면 심리 세력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다.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 모든 일은 의식, 무의식으로 나 자신에게 중요한 목표에 도달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모든 일이 나 자신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나 자신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따르고 ‘섬리’라는 것에 따라 올 수 있도록 유도하시는 것 같다. 조작된 원리가 정신적 연합을 파괴시킨다는 것은 잘못된 나의 사고방식과 인격 고정관념으로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남편, 가족에게도 그것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하나의 바른 인격체로서의 성장이 필요함을 느꼈다.
비극은 단지 친밀함을 원하는 남녀가 길을 잘못 든 정도가 아니다. 인간은 조작의 원리가 몸에 밴 이기적 존재인지라 이 벽은 이혼하거나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꿈쩍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일에 자신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없을 때 진정한 만남을 가로막는 두터운 벽에 숨어 가망 없는 덫에 사로 잡혀 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인격적 필요를 채우신다는 사실을 믿고, 아무리 두려워도 옳은 일이라면 기꺼이 행함으로 그 믿음을 드러내야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결혼 생활만 본다면 기독교는 분명 형편없는 것으로 비춰질 것이다. 세속적 가치와 인간의 힘으로 행해지고 유지되는 세상의 결혼과 별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결혼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제대로 드러내려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기독교가 세상에 보여 줄 것은 꾸준히 전인적 연합, 영혼의 연합, 정신의 연합, 육체의 연합을 행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부부에게는 불신가의 성공적 결혼을 훨씬 능가는 깊은 친말함을 이룰 수 있는 자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이 상호 묵인과 현상유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해 건축가의 청사진을 보고, 결혼의 건물이 완성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다.
결혼 건축의 필수 블록은 무엇인가? 쉽게 구할 수 있는가?
성경을 정확히 읽어보면 건축용 블록은 우선 수적으로 몇 가지 안 되고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 있다. 공급은 무궁무진이다. 값은 무료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면서 성숙한 신자에게는 끊임없이 도전을 준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라고 하여도 그 재료가 부실하면 건축물은 부실할 수밖에 없으며, 건축의 재료가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뛰어난 건축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소용없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명을 갖고 이 땅을 살아간다.
그 삶의 기초인 가정을 아름답게 꾸미고 이끌어나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또 하나의 사명이며, 소망일 것이다.
가정의 리더가 올바른 생각과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 사명을 행해야함을 알았다.
3. 수 용
1) 배우자를 수용하는 것과 배우자에게 유쾌감을 느끼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책임이고 후자는 축복이다.
2) 배우자를 수용하는 것은 용서에 달려 있고, 용서는 배우자의 못마땅한 행동을 성경적 컨텍스트에서 보려는 마음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의 안전감의 필요를 깊이 채워 주는 관계 속에서 아내와 하나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아내도 남편의 중요감을 채워 주는 관계를 통해 남편과 하나 되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친밀한 관계를 위해 결혼을 계획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의 안전감과 중요감의 필요는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채워 질 수 있다는 진리를 그 안에서 경험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하와를 남편 아담에게 데려오시자 그들이 한 몸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완전한 연합의 관계를 경험했다는 말이다. 그런 관계를 이루는 것이 결혼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연합을 통해 기대하시는 것은 부부가 결혼을 통해 단지 서로 필요의 충족을 경험하는 것 이상이다.
우리는 서로의 깊은 필요에 대해 그리고 상대를 상처 아닌 치유로 대함에 있어 어떻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영적 연합이란 내면의 필요의 차원에서 만날 때 누릴 수 있는 깊은 친밀함의 세계다.
모든 일에는 목표가 있다. 인간은 생각 없이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자동 반응 동물이 아니다. 쉴새없이 멋대로 몰아가는 내면 심리 세력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다.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 모든 일은 의식, 무의식으로 나 자신에게 중요한 목표에 도달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모든 일이 나 자신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나 자신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따르고 ‘섬리’라는 것에 따라 올 수 있도록 유도하시는 것 같다. 조작된 원리가 정신적 연합을 파괴시킨다는 것은 잘못된 나의 사고방식과 인격 고정관념으로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남편, 가족에게도 그것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하나의 바른 인격체로서의 성장이 필요함을 느꼈다.
비극은 단지 친밀함을 원하는 남녀가 길을 잘못 든 정도가 아니다. 인간은 조작의 원리가 몸에 밴 이기적 존재인지라 이 벽은 이혼하거나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꿈쩍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일에 자신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없을 때 진정한 만남을 가로막는 두터운 벽에 숨어 가망 없는 덫에 사로 잡혀 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인격적 필요를 채우신다는 사실을 믿고, 아무리 두려워도 옳은 일이라면 기꺼이 행함으로 그 믿음을 드러내야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결혼 생활만 본다면 기독교는 분명 형편없는 것으로 비춰질 것이다. 세속적 가치와 인간의 힘으로 행해지고 유지되는 세상의 결혼과 별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결혼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제대로 드러내려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기독교가 세상에 보여 줄 것은 꾸준히 전인적 연합, 영혼의 연합, 정신의 연합, 육체의 연합을 행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부부에게는 불신가의 성공적 결혼을 훨씬 능가는 깊은 친말함을 이룰 수 있는 자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이 상호 묵인과 현상유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해 건축가의 청사진을 보고, 결혼의 건물이 완성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다.
결혼 건축의 필수 블록은 무엇인가? 쉽게 구할 수 있는가?
성경을 정확히 읽어보면 건축용 블록은 우선 수적으로 몇 가지 안 되고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 있다. 공급은 무궁무진이다. 값은 무료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면서 성숙한 신자에게는 끊임없이 도전을 준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라고 하여도 그 재료가 부실하면 건축물은 부실할 수밖에 없으며, 건축의 재료가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뛰어난 건축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소용없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명을 갖고 이 땅을 살아간다.
그 삶의 기초인 가정을 아름답게 꾸미고 이끌어나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또 하나의 사명이며, 소망일 것이다.
가정의 리더가 올바른 생각과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 사명을 행해야함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