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국사-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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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위(子弟衛)라는 기구를 만들어 미소년들을 궁중에 출입하게 했다. 임금은 날마다 미소년들과 남색(동성애)을 즐겼으며, 임금의 침실에서 집단 간음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공민왕은 폭음하고 때때로 미소년들을 두들겨팼다. 또 마음 내키는 대로 상과 벌을 내렸다. 규정에 정해진 휴가도 보내주지 않았다. 미소년들은 서로 사랑싸움을 벌이면서 질투했으며 폭행을 당하고 휴가를 얻지 못해 불만도 쌓였다.
공민왕은 어느날 술에 취해 침실에 누워 있었다. 자제위 소속 청년 예닐곱 명이 들어와 공민왕을 칼로 난자했다. 공민왕은 개혁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허무하게도 45세의 장년으로 죽었다. 남색에 빠진 것도 마음의 공허를 메우려는 이상심리일지도 모른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그의 사후는 더욱 비참했다.
그의 아들 모니노는 열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우왕(禑王)이 되었다. 이성계 일파는 최영정몽주 등을 몰아내고 공민왕의 사업을 모조리 뒤집는 역사왜곡 작업을 벌였다. 우왕이 신돈의 자식이라는 조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신돈이 반야를 간통하여 자식을 낳고 공민왕의 아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왕을 왕씨가 아닌 신우(辛禑)라고 부르면서 마침내 쫓아냈다. 이어 우왕의 아들 창왕(昌王)이 새 임금으로 추대되었다. 이때에도 신씨 혈통이라는 논란이 있었으나 명망 있는 이색조민수 등의 강력한 주장으로 추대되었다. 창왕도 재위 9년 만에 쫓겨났다. 그러면 궁중 사정을 환하게 알고 있는 이색과 조민수는 창왕이 신씨라는 사실을 모르고 새 임금으로 추대했을까? 이처럼 공민왕은 철저하게 이미지 조작의 이용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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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6.05.05
  • 저작시기2006.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7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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