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혁명이론의 형성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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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레닌의 혁명이론의 형성과 전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레닌의 등장 이전
1) 러시아의 근대화(자본주의 발전의 특질)
2) 혁명적 나로드니키주의의 성립과 해체
3) 플레하노프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출발
4) 합법적 나로드니키주의의 등장

2. 레닌이론의 형성
1)몰락론 비판
2) 플레하노프와 레닌의 러시아자본주의 발전론
3) 발전론의 구성과 혁명이론의 특질

3. 1905년 이전의 강령.
1) 1903년의 당강령의 내용
2) 제당파의 혁명론 개관
3) 민주주의혁명론 제기의 기초와 절취지 강령

4. 1905년 혁명의 이론

5. 1917년 혁명론
1) 제국주의론의 도입
2) 사회주의로의 강행 전환론
3) 사회주의적 노농동맹론

6. 10월 혁명으로의 도상에서

7. 10월 혁명

본문내용

집중된다. 이것에 대해 레닌은 사회주의를 도약으로서가 아니라 붕괴로부터의 실천적 활로로서 내세우고 있다.
3) 사회주의적 노농동맹론
마지막으로 노농동맹의 문제가 남겨져 있다. 물론 농민은 지주 소유지의 몰수를 요구하고 레닌도 이를 지지하였다. 그리고 토지 국유화를 내건 것도 1905년 혁명 당시와 변함이 없다. 그러나 〈4월테제〉의 농업 강령 부분에서 레닌은 중심을 고농대표 소비에트로 옮기고 별도로 빈농대표 소비에트를 만들 것을 제시하였다. 이는 제1차 혁명에서의 전농민과의 동맹이 아닌, 빈농고농과의 동맹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또한 ‘모범 농장’의 설치도 새로운 강령적 요구이다.
토지국유화는 농민경영을 민주주의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제 곧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주의로 전진해 가는 데도 필요하며, 국민경제 전체를 사회주의적으로 편성해가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한 토지 국유를 요구하는 농민은 사회주의로 향해 나아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불가결한 동맹군이라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농민 자신 또한 토지 국유에 의한 사유지에 대한 몰수는 이 토지가 대부분 은행에 저당되기 때문에 은행자본의 몰수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면에서 자본가의 반항을 격퇴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농민도 자신의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와의 긴밀한 동맹을 필요로 한다. 토지국유는 단지 부르조아 혁명의 최후의 과제일 뿐만이 아니고, 사회주의로 향한 일보이기도 하다고 레닌은 말하고 있다. 토지국유는 민주주의인 것에서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다시 의미 규정이 이루어지고, 그와 함께 민주주의적 노농동맹론은 사회주의적 노농동맹론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 전환이 제국주의론의 도입을 통한 레닌 혁명이론의 전환을 완성시키고, 이를 통해 10월 혁명을 향한 이론적 준비도 또한 갖추어지게 되었다.
6. 10월 혁명으로의 도상에서
<4월 테제>가 당의 방침이 된 이후부터 7월 사건까지 당의 활동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 하에서 전개되었다. 레닌이 4월까지 미지수로 보았던 농민운동은 6월이 되면서 비약적으로 증대하여 농민의 혁명적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소비에트에서 여전히 볼세비키는 소수파였고, 대중은 아직 사회혁명당을 선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시정부는 볼세비키당의 활동분자를 체포하고 기관지를 발매금지시키고 레닌의 체포를 명령하였다.
이 같은 사태 속에서 레닌은 <정치정세>, <슬로건에 대해서>를 써서 슬로건과 방침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17년 7월의 경험이후에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자체가 권력을 국가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볼세비키당 제 6차 대회에서 선택되었다. 레닌은 임시정부에 대해서 입으로는 인민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혁명적인 정부지만, 실제로는 반인민적이고 반민주주적이며, 반혁명적 부르조아 정부라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레닌과 볼세비키당에는 또 한번의 혁명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10월 혁명인 것이다. 단 레닌이 다가올 혁명을 사회주의혁명이라고 주장한 것은 없다는 사실은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7. 10월 혁명
10월 24일 볼세비키당과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군사혁명위원회가 준비하고, 지도한 무장봉기가 개시되어 다음날 25일 아침에 임시정부가 타도되었다. 그리고 이 날밤 열린 제2차 전러시아 노동자병사대표소비에트 대회가 개최되어 레닌이 기초한 호소문 <노동자, 병사, 농민 여러분에게!>를 채택하였다. 이 안에는 ‘대회는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 병사, 농민의 의지에 입각해서, 또한 페트로그라드에서 수행된 노동자와 수비대의 봉기의 승리에 입각해서 권력을 그 손에 장악한다’고 되어있다.
이어서 ‘소비에트권력’의 행동 강령이 쓰여 있는 데 그것을 열거하면 민주주의적 강화와 즉각적인 휴전제의, 토지의 국유화, 군대의 완전한 민주화,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 헌법제정의회 소집, 도시에 빵을, 농촌에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일, 모든 민족의 자결권 보장 등이다. 이 호소문에서는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열거된 임무는 반제국주의, 반독점, 반지주의 민주주의 적인 방책이었다.
이 대회에서 이들 임무 중 특별히 다루어진 것은 강화와 토지의 문제로 각각 <평화에 관한 포고>, <토지에 관한 포고>가 채택되었다.
<평화에 관한 포고>는 무병합, 무배상의 즉시 강화로서의 휴전협정을 모든 교전 제국민과 그 정부에 제의하는 것이다. <토지에 관한 포고>는 지방농민 소비에트의 242통의 요망서를 정리한 모범 요망서를 기초로 해서 ‘위대한 토지개혁’을 당장 추진할 것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 결정한 또 한가지 사항은 ‘임시노농정부’, ‘인민위원회의’의 창설과 그 멤버의 승인이었다. 이 노동정부는 레닌을 수반으로 하고 다수당으로서의 볼세비키당만으로 구성되었다. 이리하여 새로운 혁명권력, 혁명정부가 태어나고 그 행동강령도 만들어졌다.
레닌이 10월 혁명을 명확하게 ‘사회주의 혁명’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 농민소비에트 임시대회 석상에서였다. 11월 18일 레닌은 좌익 사회혁명당이 그 결의 속에서 신정부를 ‘인민사회주의 정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목차 및 참고문헌
1. 레닌의 등장 이전
1) 러시아의 근대화(자본주의 발전의 특질)
2) 혁명적 나로드니키주의의 성립과 해체
3) 플레하노프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출발
4) 합법적 나로드니키주의의 등장
2. 레닌이론의 형성
1)몰락론 비판
2) 플레하노프와 레닌의 러시아자본주의 발전론
3) 발전론의 구성과 혁명이론의 특질
3. 1905년 이전의 강령.
1) 1903년의 당강령의 내용
2) 제당파의 혁명론 개관
3) 민주주의혁명론 제기의 기초와 절취지 강령
4. 1905년 혁명의 이론
5. 1917년 혁명론
1) 제국주의론의 도입
2) 사회주의로의 강행 전환론
3) 사회주의적 노농동맹론
6. 10월 혁명으로의 도상에서
7. 10월 혁명
※ 참고 논문 및 서적
ㆍ 레닌 혁명이론의 형성과 전개-스즈베 고오류
ㆍ 레닌의 〈4월테제〉-나가오 하사시
ㆍ 레닌의 혁명사상 - 와다 하루게
ㆍ 러시아혁명의 사회사 - 마르크 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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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6.05.06
  • 저작시기200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8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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