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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원 총리에서 해임되었고 나아가 12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공작회의에서 화궈펑의 오류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게 되는데 특히 ‘凡是’가 문제가 되었다.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제11기 6중전회에서 건국 이후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가 심의채택되었는데 그 요점은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였다.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문화대혁명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보면 공적이 첫째이고, 오류가 두 번째다”라고 평가했다. 화궈펑은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 주석과의 관계 때문에 비판받아 정식으로 당 주석과 당 중안군사위원회 주석의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당 주석에는 후야오방이, 군사위원회 주석에는 덩샤오핑 자신이 취임했다.
참고자료
아마코 사토시. 중화인민공화국 50년사 서울: 일조각. 2003.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제11기 6중전회에서 건국 이후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가 심의채택되었는데 그 요점은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였다.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문화대혁명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보면 공적이 첫째이고, 오류가 두 번째다”라고 평가했다. 화궈펑은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 주석과의 관계 때문에 비판받아 정식으로 당 주석과 당 중안군사위원회 주석의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당 주석에는 후야오방이, 군사위원회 주석에는 덩샤오핑 자신이 취임했다.
참고자료
아마코 사토시. 중화인민공화국 50년사 서울: 일조각.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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