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고대의 역사학
2. 중세의 역사학
3. 근세(근대초기)의 역사학
4. 근대의 역사학
5. 현대의 역사학
2. 중세의 역사학
3. 근세(근대초기)의 역사학
4. 근대의 역사학
5. 현대의 역사학
본문내용
同時代性)을 발견하고 역사의 기초를문명에 두었다. 문명 그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포착하고 그 생멸(生滅)이 역사이며 그 생멸에 일정한 규칙성, 즉 발생성장해체의 과정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 26개의 문명권을 병행적동시대적으로 나열하고 이들 모두가 규칙적인 주기(週期)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구명하였다.
한편, 문명의 추진력을 고차문명(高次文明)의 저차문명(低次文明)에 대한도전과대응의 상호작용에 있다고 보았다. 이 밖에내적외적 프롤레타리아트,세계교회등 특수한 용어에 의한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데 19세기 이후의 전통사학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학의 길을 개척한 점에서 크게 주목되었다. 그 밖의 저서로 《Nationality and War》(1915) 《Greek Historical Thought》(1924) 《A Survey of International Affairs》(1924~1938) 《Civilization on Trial》(1948) 등이 있다.
(4) 아날학파
1929년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L.페브르와 M.블로크에 의해 창간된 《사회경제사 연보》(1946년에는 '아날경제사회문명'으로 1994년에는 다시 '아날역사와 사회과학'으로 제명 변경)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로써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학파의 정신이다.
이렇게 출범한 이 학파가 역사학 안팎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한 것은 제2세대인 F.브로델에 의해서이다. 그가 1949년에 발표한 《지중해》는 지중해세계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시간이 잘 마모시키지 못하는,장기지속(la longue duree)적인 지리적인 삶, 그리고 그 위에서 완만하게 주기적으로 변하는 사회 경제적인 삶, 그리고 표면의 거품과 같은 정치적인 삶을 구조적이며 총체적으로 그린 아날학파의 교과서였다. 이후 G.뒤비, E.르 루아 라뒤리, J.르 고프 등의 제3세대는 이러한 브로델의 역사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집단심성(集團心性)에 대한 연구를 아날학파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R.샤르티에는 문화현상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제4세대를 이끌고 있다.
이 학파는 역사에서의 개인의 역할, 변동에 대한 설명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을 역사의 무대에 소생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 학파는 1970년대에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 말에는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국내의 관심도 더욱 높아져 브로델의 대작인 《지중해》(한길사, 1995)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까치, 1995)를 위시한 이 학파의 주요 연구업적들이 활발히 번역 소개되었다.
(5) 페브르 [Febvre, Lucien, 1878 ~ 1956]
낭시 출생. 디종대학스트라스부르대학콜레주드프랑스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948년 이후로는 에콜 데 오토제튀드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1929년 M.블로크와 창간한 《사회경제사연보(社會經濟史年報)》를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시대를 종합적으로 관찰, 그 배후에서 항상 인간을 발견하려고 한 그의 역사관의 영향은 컸고 경제사에서 사상사에 이르기까지 활동범위도 넓었다. 저서로는 《필립 2세와 프랑슈 콩테》(1911) 《대지(大地)와 인류의 진화》(1922) 《어떤 운명―마르틴 루터》(1928) 《16세기에 있어서의 불신앙의 문제―라블레의 종교》(1942) 《역사를 위한 투쟁》(1953) 《16세기의 마음》(1957) 등이 있다.
(6) 블로크 [Bloch, Marc, 1886.7.6 ~ 1944.6.16]
리옹 출생. 고대사학자 귀스타브의 아들.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을 공부하였으며 1908년 역사학지리학의 교수자격을 얻은 후 독일로 가서 종교사의 대가 A.von 하르나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1912년까지 티에르협회의 장학금으로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 후 몽펠리에와 아미앵의 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1919년 스트라스부르대학의 중세사 교수가 되었다. 1920년 카페왕조 왕령지의 농민해방을 다룬 《왕과 농노》로 소르본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29년 역사학자 L.페브르와 공동으로 《사회경제사연보》를 창간하여 아날학파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1931년에 대표작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을 발표함으로써 사회경제사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으며 1937년에 소르본대학 경제사 교수가 되었다. 1939~1940년에는 《봉건사회》를 출간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53세의 나이로 육군대위로 출정하였다. 패전 뒤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리옹에서 활약하다가 나치스 비밀경찰에 잡혀 총살되었다. 그의 저서 중 《역사를 위한 변명》은 1979년에 《봉건사회》는 1986년에 한길사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7) 브로델 [Braudel, Fernad, 1902.8.24 ~ 1985.11.28]
프랑스 로렌 출생.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1923년 학위를 받은 후 알제리(1924~1932), 파리의 중등학교(1932~1935), 브라질의 상파울루대학(1935~1937)에서 강의하였다. 1937년 에콜 프라티크 데 오트 제튀드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육군 중위로 독일과 싸우다 포로가 되어 5년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이때 16세기 지중해 지역의 지리역사종교농업기술지적 풍토에 대한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세계》를 구상, 1949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마르크 블로크와 뤼시앙 페브르가 창립한 《아날(年報) Annales》지의 편집위원이 되고 1956년에는 그 편집인이 되었다. 이어 중세에서 산업혁명기까지의 사회경제사를 다룬 《15~18세기 물질문명경제자본주의 Civilisation matrielle, conomie, et capitalisme 15e~18e side》(3권, 1979)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6권, 1995)로 번역 간행되었다. 1949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였으며, 198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한편, 문명의 추진력을 고차문명(高次文明)의 저차문명(低次文明)에 대한도전과대응의 상호작용에 있다고 보았다. 이 밖에내적외적 프롤레타리아트,세계교회등 특수한 용어에 의한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데 19세기 이후의 전통사학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학의 길을 개척한 점에서 크게 주목되었다. 그 밖의 저서로 《Nationality and War》(1915) 《Greek Historical Thought》(1924) 《A Survey of International Affairs》(1924~1938) 《Civilization on Trial》(1948) 등이 있다.
(4) 아날학파
1929년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L.페브르와 M.블로크에 의해 창간된 《사회경제사 연보》(1946년에는 '아날경제사회문명'으로 1994년에는 다시 '아날역사와 사회과학'으로 제명 변경)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로써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학파의 정신이다.
이렇게 출범한 이 학파가 역사학 안팎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한 것은 제2세대인 F.브로델에 의해서이다. 그가 1949년에 발표한 《지중해》는 지중해세계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시간이 잘 마모시키지 못하는,장기지속(la longue duree)적인 지리적인 삶, 그리고 그 위에서 완만하게 주기적으로 변하는 사회 경제적인 삶, 그리고 표면의 거품과 같은 정치적인 삶을 구조적이며 총체적으로 그린 아날학파의 교과서였다. 이후 G.뒤비, E.르 루아 라뒤리, J.르 고프 등의 제3세대는 이러한 브로델의 역사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집단심성(集團心性)에 대한 연구를 아날학파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R.샤르티에는 문화현상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제4세대를 이끌고 있다.
이 학파는 역사에서의 개인의 역할, 변동에 대한 설명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을 역사의 무대에 소생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 학파는 1970년대에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 말에는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국내의 관심도 더욱 높아져 브로델의 대작인 《지중해》(한길사, 1995)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까치, 1995)를 위시한 이 학파의 주요 연구업적들이 활발히 번역 소개되었다.
(5) 페브르 [Febvre, Lucien, 1878 ~ 1956]
낭시 출생. 디종대학스트라스부르대학콜레주드프랑스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948년 이후로는 에콜 데 오토제튀드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1929년 M.블로크와 창간한 《사회경제사연보(社會經濟史年報)》를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시대를 종합적으로 관찰, 그 배후에서 항상 인간을 발견하려고 한 그의 역사관의 영향은 컸고 경제사에서 사상사에 이르기까지 활동범위도 넓었다. 저서로는 《필립 2세와 프랑슈 콩테》(1911) 《대지(大地)와 인류의 진화》(1922) 《어떤 운명―마르틴 루터》(1928) 《16세기에 있어서의 불신앙의 문제―라블레의 종교》(1942) 《역사를 위한 투쟁》(1953) 《16세기의 마음》(1957) 등이 있다.
(6) 블로크 [Bloch, Marc, 1886.7.6 ~ 1944.6.16]
리옹 출생. 고대사학자 귀스타브의 아들.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을 공부하였으며 1908년 역사학지리학의 교수자격을 얻은 후 독일로 가서 종교사의 대가 A.von 하르나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1912년까지 티에르협회의 장학금으로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 후 몽펠리에와 아미앵의 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1919년 스트라스부르대학의 중세사 교수가 되었다. 1920년 카페왕조 왕령지의 농민해방을 다룬 《왕과 농노》로 소르본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29년 역사학자 L.페브르와 공동으로 《사회경제사연보》를 창간하여 아날학파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1931년에 대표작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을 발표함으로써 사회경제사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으며 1937년에 소르본대학 경제사 교수가 되었다. 1939~1940년에는 《봉건사회》를 출간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53세의 나이로 육군대위로 출정하였다. 패전 뒤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리옹에서 활약하다가 나치스 비밀경찰에 잡혀 총살되었다. 그의 저서 중 《역사를 위한 변명》은 1979년에 《봉건사회》는 1986년에 한길사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7) 브로델 [Braudel, Fernad, 1902.8.24 ~ 1985.11.28]
프랑스 로렌 출생.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1923년 학위를 받은 후 알제리(1924~1932), 파리의 중등학교(1932~1935), 브라질의 상파울루대학(1935~1937)에서 강의하였다. 1937년 에콜 프라티크 데 오트 제튀드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육군 중위로 독일과 싸우다 포로가 되어 5년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이때 16세기 지중해 지역의 지리역사종교농업기술지적 풍토에 대한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세계》를 구상, 1949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마르크 블로크와 뤼시앙 페브르가 창립한 《아날(年報) Annales》지의 편집위원이 되고 1956년에는 그 편집인이 되었다. 이어 중세에서 산업혁명기까지의 사회경제사를 다룬 《15~18세기 물질문명경제자본주의 Civilisation matrielle, conomie, et capitalisme 15e~18e side》(3권, 1979)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6권, 1995)로 번역 간행되었다. 1949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였으며, 198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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