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남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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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 남 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내용 소개
① 인물 및 논문 선정 이유
②「그의 친일시비와 선구자로서의 비애」 요약 및 정리
③ 저자 소개

3. 내용 비평
① 최남선의 활동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그에 대한 비평
② 최남선의 활동에 대한 평가

4. 나오며

# 참고문헌

본문내용

노선이 비타협 폭력 노선보다 덜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일제는 신망 있는 민족파 인사를 이용해서 점진적 합법운동을 크게 부추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조선인이 민족개량과 물산장려에 골몰하고 있는 동안은 저들의 관청이 폭파의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임종국, 『실록 친일파』, 돌베게 1991, p133~134
이리하여 1922년9월에 창간한 최남선의 주간 잡지 『동명』이 당국에 의해 허가된 것이다. 최남선의 본의가 어디에 있었든 『동명』은 이렇게 해서 당국의 식민통치를 위한 안전판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최남선은 필경 대일타협노선으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물론 이 당시의 최남선이 일제의 편으로 변질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최남선은 알게 모르게 일제의 손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앞서 살핀 것처럼 결국 최남선은 일제의 역사편찬을 돕고, 학병을 권유하고, 일제내의 교수로서 부임했다.
그가 만주에서 교수직을 역임하고 있을 때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 그의 집 대문 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 말았다”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정운현,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개마고원, 1999, p169
이것이 위당 정인보의 문외곡이다. 31운동 후 사이또총독이 문화정치를 내세워 은근히 민족주의자, 지식인에 대해 회유정책을 폄에 따라 지조를 꺾는 자가 속출하는 현실 속에 위기의식이 팽배하게 감돌고 있었던 때였던 만큼 최남선의 변절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할 정도로 그는 점점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만약 그가 정말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이 모든 행위를 행했다할지라도 학문을 중시 여기는 학자였다면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무엇이 진정 민족을 위한 일인지를 판단했어야 했다. 그 판단력을 잃은 최남선은 학자로서 위치를 주장할 수 없으며 그가 행한 행동이 친일적 행동이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그것이 일제를 위한 것이었는지 몰랐다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을 일제를 돕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4. 나오며
지금까지 1920년대에 일제로 변절한 최남선을 옹호하는 글을 분석하면서 그가 변절했던 이유에 대해 간접적으로 살펴보고, 또 그 옹호에 대해 비판하면서 글을 비평해보았다.
‘독립선언서’를 저술할 만큼 민족에 대해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최남선은 옥중에서 나오면서 일제하에 물들기 시작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제로 변절하게 된다. 최남선 자신은 끝까지 민족을 위한 일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민족을 해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정말로 최남선은 그것이 민족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위의 친구가 알고 있었고, 모든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자신만이 그것이 누구를 위한 길이었는지를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어쨌든 최남선은 독립운동가였으며 동시에 친일파였다. 이런 최남선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그의 친일 행각을 부각시켜 그를 비판하는데 주력하고 있었고 내가 분석한 글처럼 그를 옹호하는 글도 있었다.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글들을 통해 하나의 글을 분석하면서 사료의 객관성, 저자의 객관성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나 최남선처럼 양면성을 가진 인물, 양극을 달리는 삶을 산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사료를 바탕으로 객관적 판단하에 그를 평가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일일 것이다. 역사가의 판단이나 역사가에 의해 서술된 책들은 때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역사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최남선에 대한 많은 의견이 뒤따랐지만, 그가 신문화운동가독립운동가학자로서 뛰어난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중년이후에 저지른 엄청난 반민족친일행위는 역사에 대한 배덕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과를 범하고 만 것이었다.
# 참고문헌
김삼웅, 『친일파 100인 100문』, 돌베게, 1995
역사문제 연구소,『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 역사비평사, 1993
임종국, 『실록 친일파』, 돌베게 1991, p133~134
정운현,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개마고원, 1999
한철희, 『친일파 99인(2)』,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
김성준,「최남선-친일반역자의 길」, 『근대사강좌 제 3호』1933
홍일식,「최남선-그의 친일시비와 선구자로서의 비애」,『근대사강좌 제 3호』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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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6.10.06
  • 저작시기2006.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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