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벤션 산업(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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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컨벤션 산업(메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MESSE

2. 독일의 주요 박람회장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
-베를린 국제 관광 박람회
-독일 국제 아이디어 발명 신제품 전시회
-하노버 산업 박람회, 그리고 독일 통일의 현장, 베를린을 가다

본문내용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여행사가 조급하게 예약하는 관계로 하노버 근처의 호텔은 이미 예약이 매진되어 프랑크푸르트 근교에 있는 코블렌츠(Koblenz)의 한 호텔에 묵기로 했다. 이 날은 여행의 첫 날이었지만 일행 모두가 오랜 비행시간에 시달려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3월23일~24일 새벽 6시 기상.
간단한 조찬과 함께 아침미팅을 마친 우리 일행은 약 4시간동안 관광버스를 타고 박람회장인 하노버(Hannover)시로 향했다.
하노버는 니더작센주의 주도로 견본시장 Messe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2차세계대전 때 많은 타격을 받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독일 굴지의 산업경제 도시로 성장한 곳이다.
하노버 산업 박람회의 공식 명칭은 하노버 박람회 2000으로 우리 참관단이 찾을 곳은 에너지 산업을 위해 국제적인 기업들이 참가하여 마련해 놓은 견본시장이었다. 부제가 다음 밀레니엄을 살기 위한 힘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됐다.
코블렌츠에서 출발했을 때는 맑게 개었던 하늘이 어느새 먹구름으로 가려졌고, 금새 가는 빗방울을 뿌렸다.
일행의 버스가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에 진입했을 때 고속도로는 상당히 많은 차량으로 붐볐다. 목적지인 하노버까지는 5시간 30분만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의 말로는 막히지 않을 때는 약 4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고 했다.
점심도 거른 채 산업박람회 에너지부문 전시관을 찾아 나섰다. 전시관은 1동에서 26동까지 있었는데 전시장 규모가 얼마나 큰지 셔틀버스가 각 동별로 운행하고 있을 정도였다. 6, 7, 8, 11동이 에너지 관련 전시동이었다.
우리 일행은 오후 5시30분 퇴장시간에 맞추어 북문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2개조로 나누어 전시회 참관에 들어갔다.
전시 프로그램은 에너지의 생산과 관리, 거래, 에너지 산업, 재활(再活) 에너지, 에너지 저장 및 배분, 측정 및 분석 장비, 컨트롤 장비, 파워스테이션(발전소), 발동기, 주파수 변환기, 보호시스템, 산업 전자공학 및 서비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에너지 관리와 기술을 선도하는 무역 박람회를 슬로건으로 하는 에너지관의 주제는 단연코 새로운 변화, 새로운 기회였다. 에너지 산업부문에 있어서 혁신적인 기술을 자랑하는 기업들이 500여개 이상 참여했고 그들은 다양한 적용가능한 기술들을 전시했다. 프로세스 컨트롤 엔지니어링 및 네트워킹, 빌딩 컨트롤 기술 등도 선보였다. 전시장의 분위기는 테크노 위주로 전시되었으며 질서정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1일차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한 후 숙소를 향하여 약 2시간 가량 이동하였다. 이번에는 하노버 북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함부르크에 있는 Meridien 호텔이었다. 긴 여행의 여독이 풀리기도 전 전시회 관람으로 인해 지친 우리 일행 대부분은 버스 안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인 24일에는 전시장으로 가는 2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전날 전시회 일정을 상호 토의하며 정보 교류의 시간을 가졌으며 효과적인 관람계획도 수립했다.
독일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나서인지 우리 일행은 어느덧 여유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티타임 시간을 갖고 서로 전시회에 대해서 토론을 가지는 등 한결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3월 25일
전시회 관람일정을 모두 마친 우리 일행은 7시에 기상하여(독일은 이날부터 썸머타임을 실시했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베를린으로 이동하였다. 이동시간은 약 3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며 창밖을 보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독일은 면적이 우리나라의 약 3배정도 되고, 그중 평지가 70%, 산야가 30%라는 가이드의 말처럼 달려도 달려도 들판밖에 보이지 않았다. 넓은 들판을 보며 부러운 마음 가히 없었다.
베를린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전승기념관, 쿠담거리, 제국의회빌딩, 올림픽스타디움 등을 견학했다.
특히, 올림픽스타디움은 1936년 나치 정권 아래에서 열렸던 올림픽의 메인스타디움으로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이름을 비롯 각 종목의 선수권자 이름이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올림픽 당시 우리나라의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땄으나 당시 (일제치하) 사정상 일본대표로 출전했기 때문에 국적이 일본으로 되어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무척 안타깝게 했다.
통일된 지 10년이 지났건만 베를린의 거리는 아직도 스산한 분위기였다. 아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사현장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제 다시 통일 독일의 수도로 태어난 베를린은 그 옛날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각종 건물의 복원 및 개축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또 전승기념관에는 전쟁의 잔해를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전쟁의 무서움을 실감케 했다. 이 또한 후세에 교훈으로 삼으려는 독일인들의 철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졌다.
3월 26일
계속되는 흐린 날씨 속에 오늘의 첫 견학코스는 알렉산더 광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통일 독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동서분열 시대에는 문 바로 옆에 벽을 쌓았기 때문에 이 문을 지날 수가 없었다)을 지나 보리수 나무들이 가로수로 늘어서 있는 보리수 거리를 통과했다. 이곳부터 슈로스 다리에 이르는 구간에는 훔볼트 대학, 독일 역사박물관 등이 모여있으며, 슈프레 강 가운데 있는 섬에 장대한 4개의 박물관이 모여있는 박물관의 섬이 있었다.
마리아 교회를 지나 마르크스 엥겔스 광장에 이르러 사회주의 이론을 전파한 마르크스 동상을 보니 왠지 굶주리며 떨었을 사회주의 국민들과 오늘 날 개방된 사회를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전반적으로 독일이라는 나라는 전쟁의 상처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역사와 유물들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쉽게 모든 것을 파헤치고 바꿔버리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 전체가 유적과 유물과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점이며, 후세에 교훈으로 삼으려는 독일인들의 태도 등은 충분히 본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베를린을 출발,동구의 파리라고 불리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향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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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1.21
  • 저작시기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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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74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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