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서론; 신앙대상과 선도교 형성과정
2)본론
1. 교도들의 숭앙대상이며 교단을 주재한 고판례
2. 선도교의 교리와 의례
3)결론; 종교적 결혼을 통한 종통계승의 연원
2)본론
1. 교도들의 숭앙대상이며 교단을 주재한 고판례
2. 선도교의 교리와 의례
3)결론; 종교적 결혼을 통한 종통계승의 연원
본문내용
법은 증산께서 내셨으되, 용사(用事)는 내가 하노라"고 말하고, 조종골 교단과 동화교를 합하여 합동교단을 조직하고 간부를 임명하였다.
이후 그녀는 1932년 3월 용화동에 와서 교단 일을 주재하였다. 1933년 11월 법륜당은 전북 임피군 성산면에 있는 오성산(五聖山) 수양소로 은거해 휴양했다. 1935년 10월 6일 새벽 법륜당은 "증산이 오시면 나도 올 것이요, 내가 오면 증산도 오시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이 모여 치상하고 28일 오성산 봉웃재에 장사하였다. 이후 1961년에 김제군 금산리 백오동에 있는 제비산(帝妃山) 중턱에 이장했다.
결론적으로 선도교의 주재자였던 법륜당은 진리의 보증인, 천지여성의 두목, 생명의 어머니, 교운(敎運)의 주창자인 수부(首婦)로 믿어진다. 그녀는 증산의 법통을 이어받고, 그와 종교적 결혼을 한 인물이며, 증산의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대행하는 인물로 추앙된다. 나아가 그녀는 증산이 주장한 후천개벽의 가르침을 교단을 조직하여 실제적으로 폈던 인물이자, 여성 해원시대를 이끄는 천지의 주인공으로 존경받는다. 또한 그녀는 여성주체 선언의 상징적 인물이며 우리나라 종교사에서 첫 여성 종교지도자이기도 하다.
이후 그녀는 1932년 3월 용화동에 와서 교단 일을 주재하였다. 1933년 11월 법륜당은 전북 임피군 성산면에 있는 오성산(五聖山) 수양소로 은거해 휴양했다. 1935년 10월 6일 새벽 법륜당은 "증산이 오시면 나도 올 것이요, 내가 오면 증산도 오시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이 모여 치상하고 28일 오성산 봉웃재에 장사하였다. 이후 1961년에 김제군 금산리 백오동에 있는 제비산(帝妃山) 중턱에 이장했다.
결론적으로 선도교의 주재자였던 법륜당은 진리의 보증인, 천지여성의 두목, 생명의 어머니, 교운(敎運)의 주창자인 수부(首婦)로 믿어진다. 그녀는 증산의 법통을 이어받고, 그와 종교적 결혼을 한 인물이며, 증산의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대행하는 인물로 추앙된다. 나아가 그녀는 증산이 주장한 후천개벽의 가르침을 교단을 조직하여 실제적으로 폈던 인물이자, 여성 해원시대를 이끄는 천지의 주인공으로 존경받는다. 또한 그녀는 여성주체 선언의 상징적 인물이며 우리나라 종교사에서 첫 여성 종교지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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