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점이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글에서는 518 광주 민주 항쟁의 바탕이 되었다는 식의 표현을 쓰고 있다. 70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그때까지 누적되어 온 사회적 모순이 기층민중, 특히 노동자층의 격렬한 투쟁으로 폭발하게 되는데 원풍모방, 동일방직사건, 부마항쟁, 사북항쟁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민중들은 폭압적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는 광범위한 생존권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는 곧바로 정치적 위기로 직결되었다. (http://user.chollian.net/~ggl2/518/background.htm)
또한 위의 글에도 과장된 바가 없지 않다. 우선 위의 글들을 읽어보면 노동자들이 “굉장히 무서운 기세”로 경찰들을 막았다고 하고, “부녀자들은 치마폭에 돌을 날라다 주며 응원했”다고 하는데 실제 상황은 그렇게 급박하고 치열하지도 않았으며 부녀자들의 행동은 없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초기에는 많은 노동자가 참여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열기가 식어 일부 강경파 이외에는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도 하셨다. “연행된 부녀자, 노동자들도 이루 말못할 고통”을 겪었다고 했지만 일부 강경 노동자의 구속으로 일이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사태의 중점이었던 “화약고 폭발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노동자들은 화약고를 점령하여 그들의 요구를 주장했고 경찰의 진압이 늦었던 까닭고 그때문인데도 말이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사건 하나로는 단순한 노동자의 “사태”라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일부 글에서는 항쟁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항쟁의 의미보다는 당시 이십여 년 간 누적되어온 생활고와 억압에 대한 투쟁의 성격이 짙은 것 같다. 그래서 사북 항쟁이라는 말보다는 사북 사태란 명칭을 붙여주고 싶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다른 일련의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을 하면서 당시 민주화 열기와 사회모순을 해결하려는 어떠한 움직임에 초석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종합적으로 광범위하게 봤을 때이고 이 사건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그저 소박한 탄광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몸부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5.나오며
처음에는 “구술사”라는 용어에도 난감했고 더군다가 내가 구술사를 써야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가졌다. 하지만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별로 잘 쓴 것 같지 않지만 한편의 구술사 리포트를 완성했다. 아직도 구술사는 막연하기만 하고 내가 쓴 글이 구술사인지 확신이 서지도 않는다.
하지만 위에서도 밝혔듯이 역사서에서 읽은 것과는 다른 생생하고 더 밀접한 감동을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느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아버지께 직접 들으니 내가 그 중심에서 아버지와 함께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E. H. Carr 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말은 아마도 구술사를 통해서만 체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우리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생겼다.
또한 위의 글에도 과장된 바가 없지 않다. 우선 위의 글들을 읽어보면 노동자들이 “굉장히 무서운 기세”로 경찰들을 막았다고 하고, “부녀자들은 치마폭에 돌을 날라다 주며 응원했”다고 하는데 실제 상황은 그렇게 급박하고 치열하지도 않았으며 부녀자들의 행동은 없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초기에는 많은 노동자가 참여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열기가 식어 일부 강경파 이외에는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도 하셨다. “연행된 부녀자, 노동자들도 이루 말못할 고통”을 겪었다고 했지만 일부 강경 노동자의 구속으로 일이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사태의 중점이었던 “화약고 폭발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노동자들은 화약고를 점령하여 그들의 요구를 주장했고 경찰의 진압이 늦었던 까닭고 그때문인데도 말이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사건 하나로는 단순한 노동자의 “사태”라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일부 글에서는 항쟁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항쟁의 의미보다는 당시 이십여 년 간 누적되어온 생활고와 억압에 대한 투쟁의 성격이 짙은 것 같다. 그래서 사북 항쟁이라는 말보다는 사북 사태란 명칭을 붙여주고 싶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다른 일련의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을 하면서 당시 민주화 열기와 사회모순을 해결하려는 어떠한 움직임에 초석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종합적으로 광범위하게 봤을 때이고 이 사건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그저 소박한 탄광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몸부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5.나오며
처음에는 “구술사”라는 용어에도 난감했고 더군다가 내가 구술사를 써야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가졌다. 하지만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별로 잘 쓴 것 같지 않지만 한편의 구술사 리포트를 완성했다. 아직도 구술사는 막연하기만 하고 내가 쓴 글이 구술사인지 확신이 서지도 않는다.
하지만 위에서도 밝혔듯이 역사서에서 읽은 것과는 다른 생생하고 더 밀접한 감동을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느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아버지께 직접 들으니 내가 그 중심에서 아버지와 함께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E. H. Carr 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말은 아마도 구술사를 통해서만 체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우리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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