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 가린 인물 이승만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책요약 내용

이승만의 삶 속 몇가지
-이승만과 김구의 정치노선 갈등
-이승만이 감옥에 가기까지

결론

본문내용

서 몰락한 선비였던 부친 이경선과 모친 김해김씨 사이에 6대독자로 태어난 이승만은 3살 때부터 서울로 이사와 서울역 근처 우수현에서 20살까지 살았다. 18세까지 한학을 공부하며 일찍이 문재를 보였지만 과거에는 번번이 낙방해(일설에는 단 한번 응시했다고도 한다) 관으로 진출하지는 못했다. 동학혁명, 청-일 전쟁, 갑오경장 등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했던 1894년. 청년 이승만은 자신의 인생에서 일대 전기를 맞게 된다. 배재학당에 입학해 신학문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머리가 좋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이승만은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입학한지 1년도 안된 1895년 8월에는 초급영어반의 교사로 발탁되었다. 당시 배재학당에는 주시경도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 함께 다녔던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시경은 한글을 연구하러, 이승만은 정치를 하러 배재를 다닌다"는 말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이승만의 정치의식이 매우 일찍부터 싹튼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신학문과 서구문물에 눈을 뜬 이승만은 1897년 7월 배재학당을 졸업한 직후부터 개화파의 본거지였던 독립협회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1898년 3월10일 제1차 만민공동회에서 이승만은 배재학당 시절 협성회에서 익힌 웅변술을 바탕으로 열변을 토해 일반 민중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게 된다. 독립협회의 청년지도자 이승만. 당시 민중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애국심으로 충만한 이 청년에게 더할 수 없는 신뢰를 보내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이승만의 투옥은 이런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수구파에서는 일찍부터 개화파의 떠오르는 지도자 이승만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데다가 고종폐위 음모와 관련 역적으로 몰려 일본으로 피신해있던 박영효의 귀국추진움직임에 이승만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적절한 모함의 소재가 되었다.
그가 갇혔던 감옥은 서소문 근처에 있었는데 이승만이 알고 지내던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힘을 써 최정식, 서상대와 한 감방을 썼다. 최정식은 매일신문 에서 함께 논설을 맡고 독립협회 활동도 같이 한 적이 있는 개화의 동지이며 서상대도 박영효의 측근으로 그와는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탈옥을 도모한 것이다. 탈옥의 과정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1899년 7월11일 평리원(고등재판소)에서의 판결선고문을 보면 탈옥의 주범은 최정식이고 이승만은 종범으로 돼있다. 이에 따르면 최정식이 "그대와 나는 모두 민회에서 저명한 사람인데 어찌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겠소"라며 탈옥을 권유하자 이승만은 "내가 죄가 없는데 죽기야 하겠소"라고 소극적 답변을 한 것으로 돼있다.반면 이승만의 전기들에서는 그가 주동을 하고 최정식과 서상대가 따른 것으로 돼 있다. 이승만이 두 사람을 설득하고 주시경을 통해 미리 만민공동회의 응원대를 조직시켜 종로의 집회에 참여한다는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볼 때 중형을 면한 이승만이 탈옥을 도모했을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몇 달째 감옥생활을 해온 최정식이 제안하고 알렌의 요구가 묵살된데 불안감을 느낀 이승만이 동조하는 형태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여하튼 이들은 1월30일 오전 주시경이 구해 최정식 집안의 식객인 최학주를 통해 반입시켜준 권총을 갖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옥을 결행한다. 이승만은 곧바로 체포되고 최정식과 서상대는 탈옥에 성공하지만 그 후 최정식은 4월24일 평안남도 증남포에서 체포됐고 서상대는 중국으로 망명했다. 3월18일 첫 공판에서 이승만은 황성신문에 "이승만은 사형을 면키 어렵다"는 기사가 날만큼 사형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였지만 결국에는 사형은 면제받게 되었다.
3. 결론
처음에는 이승만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로 없었던 터라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줏대를 가진 훌륭한 인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 장씩 책장을 넘기면서 뭔가 조금은 과장되지 않았나 싶을 정로로 그의 행동에 있어 나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니까 미국인으로, 이승만과는 꽤 친분이 두터운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승만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으로 글을 쓴 것으로 단정하고 내 나름대로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이승만은 대체로 부정선거를 도모하고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중한, 다른 애국지사들이 무장하여 일제에 대항하고 있을 때는 하와이로 피신하여 있던 겁쟁이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전혀 그러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았으며 외부에 잘못 알려진 이승만의 평가에 대해 맹신적으로 변명만을 늘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필자가 미국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소련은 무조건적으로 한반도 분열을 조장시킨 나라이며 미국은 정의의 사도로서 이를 중재해 나가는 국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진정 현실은 그러했던가 생각하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승만은 이 책에서도 야망과 포부가 큰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한 그의 성향을 바탕으로 이성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그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아예 작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물론 그 진실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의 사상이 어떻든 간에 남과 북의 분단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던 것이 사실이었고 극단적으로 반공산주의적 성향을 내비치며 활동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그의 과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렇다고 또 이승만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일제에 대항하여 그 나름대로의 사상을 가지고 해외에서 노력한 것도 일부 높게 평가 받을 만하며 당시의 현실 인식에 대해 꽤 안목이 깊었던 초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즉, 결과만 따지고 본다고 해도 그의 선택이 옳지 않았음을 판가름하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남한단독 정부수립이 아닌 다른 선택을 강행했었더라면 과연 한국이 세계최고의 선진국으로 우뚝 서 있을 수 있을까? 아마도 현재 대한민국은 더욱 악화된 상황 속에서 북한처럼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이승만은 현실인식 능력이 뛰어난 재략가이자 야망이 강한 정치가로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가격1,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6.12.18
  • 저작시기2006.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354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