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고관상대에서의 천문 관련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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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베이징 고관상대에서의 천문 관련 탐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탐구안내

2. 개념확인

3. 탐구과제

4. 탐구활동

5. 참고자료

본문내용

est, 1623∼1688)이 제작하였다. 남경 자금산 천문대에는 '남회인 혼상'(1905년 제작) 보다 조금 작은 규모의 것이 전시되어 있다.
⑵ 간의
① 시대 : 중국
② 재료 : 청동
③ 그림설명 : 중국 간의 1/2축소형 복원품.
⑶ 혼천의
① 시대 : 중국 명대
② 그림설명 : 중국 명대 혼천의. (그림출전:「중국고대천문가성취」북경천문관 편).
③ 장치 설명
▶ 1. 사유권(四遊圈)
▶ 2. 천축(天軸)
▶ 3. 북천극(北天極)
▶ 4. 천원자오권(天元子午圈)
▶ 5. 천상적도권(天常赤道圈)
▶ 6. 규관(窺管)
▶ 7. 지평권(地平圈)
⑷ 혼천설 [渾天說]
고대중국의 우주관 또는 우주구조설. 개천설(蓋天說)·선야설(宣夜說)과 함께 중국 고대 3대 우주론의 하나이다. 우주를 새알모양에 비유하여 껍데기가 노른자위를 싸고 있는 것처럼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일주운동(日周運動)을 하며 껍데기의 표면은 끝이 없고 그 모양이 혼혼연(渾渾然)하다 하여 혼천이라 하였다. 천체를 구형으로 보고 있는 이 설은 천체를 원판(圓板)으로 보고 있는 개천설보다는 진보된 우주관이며, 그 기원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후한(後漢)시대 장형(張衡)의 저서 《혼천의주(渾天儀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진(晉)나라 갈홍(葛洪)에 의하면 하늘의 둘레는 365˚ 145/589이며, 그 반은 땅 위를 덮고 반은 땅 아래 있다고 하였으며 그 둘의 끝을 남극과 북극이라고 하였다. 북극은 땅에서 36˚ 나와 있고 남극은 땅속으로 36˚ 들어갔다. 또한 이 구형의 천체에 적도(赤道)와 황도(黃道)를 세우고, 그 경사를 24˚로 하며 황도와 적도 위에 2지(二至)와 2분(二分)을 정하였다. 중국은 후한시대 이래 모든 학자들이 혼천설을 지지하였으며,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혼천설이 도입되었다. 고구려 고분의 구조적인 특성이나 벽화에 그려진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 석굴암의 원형 천장 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조선 초기 권근(權近)의 논천(論天) 기사에서도 언급되고 있어, 혼천설은 조선 초기까지 정통적인 우주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Ⅱ. 홍대용의 중국여행 (글 : 남문현, 건국대 박물관장)
6개월 동안 이어졌던 중국 여행은 홍대용에게 자신의 과학 사상을 검증할 수 있는 생애의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광대한 천하를 오가며 중국문화와 서양과학에 눈뜬 ‘개안의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귀국에 임박하여 홍대용은 천문의기들을 관람하기 위해 북경의 건국문(동문) 안에 있는 관상대를 찾았다. 이곳은 그곳에 근무하는 관리들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문지기들에게 가져간 인삼과 종이를 건네주고서야 그나마 밤중에 잠시 들어가 볼 수 있었을 뿐더러 관상대 위에는 올라가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관상대는 당시 올라가면 황제가 사는 자금성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하여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홍대용은 관상대 뜰 안에 놓인 명대에 만든 혼의와 간의 등을 살펴 보고 관상대 위의 의기들은 먼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곳은 원대 이래 사천대(관상대)가 있던 곳으로 명대에는 혼의와 간의 등을 제작하여 천체를 관측하였고, 청조에 들어서 서양과학의 우수성을 인정한 강희제는 천문·역법을 관장하는 흠천감의 우두머리를 서양 선교사로 임명하여 아담 샬(탕약망)과 페르비스트(남회인), 쾨글러(대진현) 등은 흠천감정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의기들을 제작하였다. 강희제는 남회인을 시켜 천체의, 적도경위의, 황도경위의, 지평경의, 기한의(육분의, 거도의), 상한의(지평위의)를, 기리안을 시켜 지평경위의를 만들었고, 건륭제는 대진현을 시켜 기형무진의를 만들었다. 이것들은 홍대용이 <의상고성>, <수리정온>, <지구도설> 등의 서적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어 이번 여행에서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들이다.
북경고관상대에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기로 하겠다. 홍대용의 천문사상에 대하여 일인자이셨던 소남 유경로 님은 1992년 8월 21일 고관상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홍대용의 방문기록이 남아있는지를 고관상대장 최석죽(崔石竹)교수에게 물으셨다. 정식으로 방문한 관리도 아니고 밤중에 몰래 다녀간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리 만무하였다. 그때 유 선생님이 보여주신 아쉬움과 낭패감은 지금도 필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이곳의 의기들은 역사상 보기 드문 동서 과학기술교류의 산물로서 중국 아니 인류 역사를 통 털어 유일무이하리만큼 값진 인류의 과학 문화유산이다. 이것들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1900년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구미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침범, 원명원을 불 사를 당시 천체의와 지평경위의를 관상대에서 약탈하면서부터 세계에 알려졌다. 독일 군은 천체의를 베르린 근교 포츠담의 여름 궁전으로 반출하여 20년 가까이 전시하다가 1차 대전이 끝나 파리 강화조약에 의거하여 원래의 자리에 반납하였다. 프랑스 군은 자국의 선교사인 키리안이 만든 지평경위의를 천진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에 이전·보관하였다가 본국으로 반출하려던 중 세계여론에 굴복하여 4년 뒤에 반납하였다. 약탈문화재의 반환사례 이다.
북경 고관상대에서는 이곳의 의기들을 중심으로 1993년에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는데 국내에서는 유경로, 나일성, 필자를 비롯하여 여러분이 참가하였다. 이곳은 남천주당과 더불어 연행사를 수행했던 조선의 학자들이 꼭 들러 보고 싶던 곳이었고, 흠천감을 통하여 수많은 조선의 과학자들이 서양과학을 배우고 익혀와 사실상 조선에 대해서는 서양과학 도입의 창구라 할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은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어 북경에 여행할 기회가 있는 독자들은 한번 고관상대에 올라 보기를 권한다.
<간이 태양 고도 측정기>
<각도기>
<지평면>
<태양방향면> <태양>
<제작순서>
① 위의 전개도를 가위로 자른다.
② <지평면>과 <태양방향면>의 음영 영역을 칼로 자른다.
③ <태양>을 <태양방향면>에 붙임후, <태양방향면>을 <지평면>에 붙인다.
④ <지평면>을 손바닥에 놓고 <태양방향면>을 이용하여 태양의 고도를 측정한다.
⑤ 태양방향인지 확인하려면 그림자의 유무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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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1.03
  • 저작시기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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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8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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