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선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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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선논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교종과 선종의 대립상황

2. 교선 대립의 주요 논점

3. 고려불교의 이상 - 이론과 실천, 그 대립의 극복

4. 교선논쟁의 의의

본문내용

하게 말하자면 정은 마음의 공적(空寂)한 본체, 즉 근본지를 가리키며, 혜란 마음의 신령스럽게 아는 영지(靈知)의 작용을 말한다. 마음의 본체와 작용을 분리할 수 없듯이 정과 혜도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혜쌍수설의 요점이다. 이것으로 교종과 선종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지눌은 의천의 교관병수설과는 달리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ㆍ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ㆍ경절문(徑截門) 성적등지문은 행(行)을 말하고, 원돈신해문은 신(信)을, 경절문은 증(證)을 가리킨다. 특히 경절문은 간화선(看話禪)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지해(知解)의 장애를 떨쳐버리기 위해 선문의 화구(話句)를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눌 선의 최고 지향점이다.
이라는 3문의 실천체계를 더 가진다. 하지만 지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선결사’ 또는 ‘정혜결사’라는 구체적 실천운동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혼탁한 사회를 비판하고 개혁하련느 동기에서 출발한 것으로 정토(淨土)사상과 참법(懺法)을 바탕으로 불국토 건설을 주창하는 등 기층 사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이 불교 대중화 운동이란 할 수 있다. 이들은 단지 참선 수행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는 간화선을 더욱 정밀하게 정리하기도 하고, 일반백성들의 세속적인 정토신앙까지 포용하는 불교관을 피력해서 일반백성들에게 광범위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요세의 백련결사는 이에 영향을 받아 일어난 교종측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법화정토 사상에 입각한 ‘염불결사(念佛結社)’로서 정토구생(淨土求生)을 강조하는 등 주로 참법의 성격이 강하였다. 요세는 지눌의 수선결사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실천위주의 수선결사는 연수가 ‘선종유심결’에서 지적한 120가지 수행상의 제약 즉, 이론기반 없이 실천의 맹목성에서 오는 여러 제약들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1216년 전남 강진의 만덕사에서 백련결사를 결성하게 된다. 요세는 천태교관을 이루기 위한 실천방향으로 수참(修懺)(참회정진법)과 정토를 제시하였다. 지눌과 요세는 수행과 교화의 일치를 주장한 점에서 일치하지만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 중생들의 근기(根機)를 인식하는데 서로 차이를 보였다. 지눌은 ‘즉심즉불’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돈오’와 ‘정혜쌍수’를 중시하여 결과적으로는 그 대상은 여전히 최소한의 지해(知解)정도는 갖고 있는 중생이었다. 그러나 요세는 자력으로는 도저히 해탈 못하는 가련한 중생을 근기의 대상으로 삼았다. 지눌은 자기마음의 직관을 강조해서 근기의 구별을 두지 않지만 요세는 중생의 지해정도 차이가 수행에 분명 제약이 된다고 보고 최하근기 사람들을 위해 정토 참회법을 제시하였다. 요세는 지눌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일어난 운동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지해를 전제하지 않고 염불중심의 ‘참회멸죄(懺悔滅罪)’와 정토구생의 행법에 중점을 둔 결사 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4. 교선논쟁의 의의
고려 불교의 교선 논쟁에서 실제적인 내용을 이룬 것은 의천의 교주선종과 지눌의 선주교종이다.
의천은 실천을 중시하였으나 결과는 차별적 불성론을 주장하게 되었고 본체와 현상의 통일을 주장하였지만 이는 '분리'를 전제로 함으로써 현실세계를 본체에 대비되는 현상세계로 간주하게 되어 현실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됨으로써 민중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지눌은 불성을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평상심으로 보았고 이를 근거로 회광반조를 주장하여, 보살(실천)의 도만 행하면 삶이 공간인 삼계가 불토가 아님이 없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지눌은 난해한 불교의 교릴ㄹ 모든 사람의 주관 의식과 결부시켜 바로 인간 자신의 문제로 해결하려 했다.
고려 불교가 교선 대립의 극복을 과제로 하게 된 배경에는 불교 내부의 문제보다는 외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전기의 불교가 성종과 상종 사이의 이론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해소를 주과제로 한 것이었던 데 반해, 고려 불교는 이론과 실천의 일치 문제를 주요 과제로 한 점에서 긍정적인 특징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고려 시대 정신계를 주도하였던 가장 커다란 문제였던 교선 대립이 극복 문제는 불교의 가장 근본적이자 궁극적인 문제인 성불의 문제에서 첨예한 대립을 빚으면서, 그 해결의 과제를 다음 시기인 조선 불교의 과제로 넘기게 되었으며, 이는 다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고익진, 『한국의 불교사상』, 동국대학교출판부, 1987.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2003.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예문서원, 2003.

키워드

교선,   논쟁,   교종,   선종,   고려,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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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7.01.04
  • 저작시기2007.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6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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