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석굴암의 사상적 배경
Ⅲ. 석굴암의 역사
Ⅳ. 석굴암의 유래
Ⅴ. 석굴암의 구조
1. 전실
1) 팔부중(북측)
2) 팔부중(남측)
2. 비도
1) 천부상과 보살상
2) 본존여래좌상
3) 십일면관음보살
4) 10대제자
3. 석굴암의 과학적인 건축양식
Ⅵ. 석굴암 불상의 예술적 가치
1. 불상 조각의 심미적(審美的) 가치
1) 본존불좌상
2) 보살입상(菩薩立像)
3) 십대제자입상
2. 미술사적 의의
Ⅱ. 석굴암의 사상적 배경
Ⅲ. 석굴암의 역사
Ⅳ. 석굴암의 유래
Ⅴ. 석굴암의 구조
1. 전실
1) 팔부중(북측)
2) 팔부중(남측)
2. 비도
1) 천부상과 보살상
2) 본존여래좌상
3) 십일면관음보살
4) 10대제자
3. 석굴암의 과학적인 건축양식
Ⅵ. 석굴암 불상의 예술적 가치
1. 불상 조각의 심미적(審美的) 가치
1) 본존불좌상
2) 보살입상(菩薩立像)
3) 십대제자입상
2. 미술사적 의의
본문내용
는 한 줄기의 애수감은 그 당시의 불교적인 염세관과 무상관이 주된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십대제자상에 나타난 애수나 우울감은 그 사회상에 깃든 당연한 반영일 것이며, 이것은 곧 새로운 방향으로 지향하는 생활양식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 당시의 불교가 인생의 무상을 가르키고 불교사상이 그러한 생활분위기 속에 침투하였다는 것을 주원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십대제자상에 각출된 형식은 인체의 시간적인 추이에 의한 극히 미묘한 변화와 인체의 자연감정을 내면화하여 인생의 무상을 반영해 종교적 명상보다는 인생의 자연사에 대한 미적 직관에 치중하였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와 고려에 영향을 미치는 미적 문화의 생성요소로서 싹터왔음을 알 수 있다.
2. 미술사적 의의
신라시대의 불상조각은 그 이전의 것과 견주어 볼 때 다양한 면에서 그 상이한 점을 포착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대한 상이점의 하나는 통일신라 이전의 불상조각에는 그 표현에「신관적(神官的) 공리화」가 인정되는데 반하여 통일신라시대의 것에 있어서는 「이상적」경향이 현저하다고 하는 사실이다.
미술사적 사실에 대해서 말하자면 고대시대 모든 불조각은 고대인의 미적의식에 있어서 가장 신위적이고 신의에 통달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인간의 형태인 직립경강(直立硬鋼)한 정면향 자세에서 파악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조상을 봉안예배하는 것에 의해서 당시 사람들은 실로 인간자체를 신으로 봉납하도록 하는 극진한 신위가 넘쳐흘러 끊임없이 현실화되도록 예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작품이 가지는「이상화」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 인간의 영원상을 이상화하고 미화하는 직관적 표출에 의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석굴암 굴내의 여러 조상에는 삼국시대의 조각작품에 보여지는 바와 같은 어떠한 종류의 편의적 공리화나 편협성도 엿볼 수 없다.
즉 거기에는 삼국시대의 조상예술에서 보여지는 바의 신체를 품위화하려는 의도는 찾아볼 수 없고 보편적인 우미한 인간의 지체와 안모를 극한까지 이상화하여 신성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본존불 좌상에 표출된 보리(普提) 그 자체와 같은 원골한 면상과 상 각부의 균정된 푸로포션(proportion)과 좌견(左肩)에서 우사향의 엷은 천의, 등등 거기에는 어떠한 과장도 허식도 없이 다만 아름다움이며 불타의 육체적 이상이 상징적으로 표출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십일면관음보살상 및 제 보살입상에서도 완미의 이상화가 입증되는 바이다. 특히 보살입상에는 조상이 가지고 있는 오른쪽과 왼쪽의 무릎을 유연하게 곡하는 이른바 유족(遊足-floating foot)을 하고 측면으로 향한 포즈(pose)와 기타 십대제자상 등의 좌우 비대칭의 모티브(Motive)와 그밖의 신체의 개성적 특징이 경탄할 정도로 이상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시대의 조상예술이 추상적인 신의 형상이나 초인화되어 있는가령, 전기 신라시대의 고분의 십이지신(호신)처럼 수두인신상(獸頭人身像)인 것과는 거리가 먼 그러한 이상화의 범주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예술에는 항상『존재양식』과『생성양식』이 수반된다는 견지에서 본다면 이 시대는 이전시대의 생성양식이 이미 존재양식으로 전위되었을 것이며, 다음 시대에의 생성양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때 그 시대의 역사적 인격성이 이상화를 규정할 것이다.
석굴암 굴입구에 있는 보살입상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사물의 형상이 이상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목에 진주를 걸쳐 가슴앞에 장식된 경식은 선을 포함하여 유연하고 좌견에서 그 반대로 흐르는 천의, 팔에서 발 아래로 흐르는 나의군(羅衣裙)의 동세에 액센트로 결집되고 얼굴 시선 방향과의 콘트라스트(contrast) 등은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여인의 청초한 포즈의 자연성이 깃들어 있고, 조야한 화강암에 유기적인 촉각과 온열의 인상까지가 표현에 고양되어 이상화되고 있는 것은 종래 미술사연구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중요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시대의 조상 작품에 대한 취향이나 사상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삼국시대 조상작품들이 냉엄한 신위적 취향을 강조했던 것에 비해 석굴암 불상들은 현 생활의 호흡 속에서 현세적인 것을 이상화하여 단엄하면서도 우려하고 청초한 미를 표출하려고 하였음을 엿 볼수있다.
석굴암 굴내의 정연한 정서를 통일시킨 본존불좌상의 위용은 풍염한 상상력을 통한 단엄함의 표출이면서도, 제 불상의 명랑하고 유연한 우미감을 표현하는 것은 현세적 사물에서 사상된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성애로운 인간의 징표를 결집시킨 마음의 발로였음을 쉽사리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실로 이들 조상에 나타난 바는 감각적이고 현세적인 것을 순화하고 진실한 영원무변의 이상을 강조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당대의 조상가(혹은 佛師, 佛工)는 그 이전 사람이 추구했던 미가 아니라 진실한 미의 원상을 캐내고 그러므로써 심원한 종교적 삼매경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을 각 조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조상작품이 말하는 바는 명백히 하나의 새로운 생활원리였으며, 그것은 새로운 인간의 이상적 표출로써 보여지는 바이며, 그러한 예술창조의 근저에는 현세적인 것 속에서 보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현실에서 부처를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예술의 표현은 그 이전시대의 생활가치 내지 예술의욕에 대한 하나의 의식적인 개혁이었고, 여기에 우리는 이른바 ‘심미주의적(審美主義的)’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에의 완연한 조화를 볼 수 있으며, 이 마음의 경향을 일컬어『이상주의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석굴암의 불상조각 특히 보살입상에서 나타난 청초하고 우미하게 정서를 갖춘 자태, 십대제자상에서 보여지는 보살과 같은 친애성과 감미성, 그리고 본존불좌상에 표출된 신성함의 충만됨 등에 있어서, 그 이전시대의 조각작품 예컨대 월남리출세삼존석불(月南里出世三尊石佛)과 인왕리출세석가여래좌상(仁旺里出世釋迦如來坐像) 등에서 보여지는 아이러니칼한 포즈와 경직된 기념비적 취향의 용모는 사라지고 다만 자연에 대한 법열(法悅)과 생명을 추구하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십대제자상에 나타난 애수나 우울감은 그 사회상에 깃든 당연한 반영일 것이며, 이것은 곧 새로운 방향으로 지향하는 생활양식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 당시의 불교가 인생의 무상을 가르키고 불교사상이 그러한 생활분위기 속에 침투하였다는 것을 주원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십대제자상에 각출된 형식은 인체의 시간적인 추이에 의한 극히 미묘한 변화와 인체의 자연감정을 내면화하여 인생의 무상을 반영해 종교적 명상보다는 인생의 자연사에 대한 미적 직관에 치중하였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와 고려에 영향을 미치는 미적 문화의 생성요소로서 싹터왔음을 알 수 있다.
2. 미술사적 의의
신라시대의 불상조각은 그 이전의 것과 견주어 볼 때 다양한 면에서 그 상이한 점을 포착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대한 상이점의 하나는 통일신라 이전의 불상조각에는 그 표현에「신관적(神官的) 공리화」가 인정되는데 반하여 통일신라시대의 것에 있어서는 「이상적」경향이 현저하다고 하는 사실이다.
미술사적 사실에 대해서 말하자면 고대시대 모든 불조각은 고대인의 미적의식에 있어서 가장 신위적이고 신의에 통달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인간의 형태인 직립경강(直立硬鋼)한 정면향 자세에서 파악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조상을 봉안예배하는 것에 의해서 당시 사람들은 실로 인간자체를 신으로 봉납하도록 하는 극진한 신위가 넘쳐흘러 끊임없이 현실화되도록 예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작품이 가지는「이상화」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 인간의 영원상을 이상화하고 미화하는 직관적 표출에 의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석굴암 굴내의 여러 조상에는 삼국시대의 조각작품에 보여지는 바와 같은 어떠한 종류의 편의적 공리화나 편협성도 엿볼 수 없다.
즉 거기에는 삼국시대의 조상예술에서 보여지는 바의 신체를 품위화하려는 의도는 찾아볼 수 없고 보편적인 우미한 인간의 지체와 안모를 극한까지 이상화하여 신성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본존불 좌상에 표출된 보리(普提) 그 자체와 같은 원골한 면상과 상 각부의 균정된 푸로포션(proportion)과 좌견(左肩)에서 우사향의 엷은 천의, 등등 거기에는 어떠한 과장도 허식도 없이 다만 아름다움이며 불타의 육체적 이상이 상징적으로 표출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십일면관음보살상 및 제 보살입상에서도 완미의 이상화가 입증되는 바이다. 특히 보살입상에는 조상이 가지고 있는 오른쪽과 왼쪽의 무릎을 유연하게 곡하는 이른바 유족(遊足-floating foot)을 하고 측면으로 향한 포즈(pose)와 기타 십대제자상 등의 좌우 비대칭의 모티브(Motive)와 그밖의 신체의 개성적 특징이 경탄할 정도로 이상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시대의 조상예술이 추상적인 신의 형상이나 초인화되어 있는가령, 전기 신라시대의 고분의 십이지신(호신)처럼 수두인신상(獸頭人身像)인 것과는 거리가 먼 그러한 이상화의 범주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예술에는 항상『존재양식』과『생성양식』이 수반된다는 견지에서 본다면 이 시대는 이전시대의 생성양식이 이미 존재양식으로 전위되었을 것이며, 다음 시대에의 생성양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때 그 시대의 역사적 인격성이 이상화를 규정할 것이다.
석굴암 굴입구에 있는 보살입상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사물의 형상이 이상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목에 진주를 걸쳐 가슴앞에 장식된 경식은 선을 포함하여 유연하고 좌견에서 그 반대로 흐르는 천의, 팔에서 발 아래로 흐르는 나의군(羅衣裙)의 동세에 액센트로 결집되고 얼굴 시선 방향과의 콘트라스트(contrast) 등은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여인의 청초한 포즈의 자연성이 깃들어 있고, 조야한 화강암에 유기적인 촉각과 온열의 인상까지가 표현에 고양되어 이상화되고 있는 것은 종래 미술사연구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중요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시대의 조상 작품에 대한 취향이나 사상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삼국시대 조상작품들이 냉엄한 신위적 취향을 강조했던 것에 비해 석굴암 불상들은 현 생활의 호흡 속에서 현세적인 것을 이상화하여 단엄하면서도 우려하고 청초한 미를 표출하려고 하였음을 엿 볼수있다.
석굴암 굴내의 정연한 정서를 통일시킨 본존불좌상의 위용은 풍염한 상상력을 통한 단엄함의 표출이면서도, 제 불상의 명랑하고 유연한 우미감을 표현하는 것은 현세적 사물에서 사상된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성애로운 인간의 징표를 결집시킨 마음의 발로였음을 쉽사리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실로 이들 조상에 나타난 바는 감각적이고 현세적인 것을 순화하고 진실한 영원무변의 이상을 강조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당대의 조상가(혹은 佛師, 佛工)는 그 이전 사람이 추구했던 미가 아니라 진실한 미의 원상을 캐내고 그러므로써 심원한 종교적 삼매경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을 각 조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조상작품이 말하는 바는 명백히 하나의 새로운 생활원리였으며, 그것은 새로운 인간의 이상적 표출로써 보여지는 바이며, 그러한 예술창조의 근저에는 현세적인 것 속에서 보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현실에서 부처를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예술의 표현은 그 이전시대의 생활가치 내지 예술의욕에 대한 하나의 의식적인 개혁이었고, 여기에 우리는 이른바 ‘심미주의적(審美主義的)’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에의 완연한 조화를 볼 수 있으며, 이 마음의 경향을 일컬어『이상주의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석굴암의 불상조각 특히 보살입상에서 나타난 청초하고 우미하게 정서를 갖춘 자태, 십대제자상에서 보여지는 보살과 같은 친애성과 감미성, 그리고 본존불좌상에 표출된 신성함의 충만됨 등에 있어서, 그 이전시대의 조각작품 예컨대 월남리출세삼존석불(月南里出世三尊石佛)과 인왕리출세석가여래좌상(仁旺里出世釋迦如來坐像) 등에서 보여지는 아이러니칼한 포즈와 경직된 기념비적 취향의 용모는 사라지고 다만 자연에 대한 법열(法悅)과 생명을 추구하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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