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여러 유형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사회학과 교수님이하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들, 그리고 북측에서 일하시는 조선족 동포들, 북측 안내원(리정혜와 김광훈 동무), 항상 편하게 여행할 수 있게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우리 조장 이정아님(특히 조장 이정아님은 조장생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물론 개인적으로 내가 물어보았지만, 관광가이드인 조장생활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처럼 들렸다. 남측 소식은 그의 못 듣고 살며, 한달에 4박 5일 남측에 휴가 나오는 것 제외하고는 1년 365일 대부분의 날을<특히 명절 때도>북측 숙소에서 머물러야만 한다고 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일을 그만 두어야 하고, 많은 등반으로 인해 무릎이 다들 안 좋다고 한다. 그러나 북측 안내원 및 관계자들과 언니, 동생하며 편안하게 지내는 모습은 부러웠다. 조장들은 우스갯소리로 북측 남자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였다. 조장들이 있기에 우리는 여행도중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알찬 기행을 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이 공간을 빌어 깊이 감사드린다), 관광객들이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그 앞에 나와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신 해금강호텔, 온정각 직원들, 그 외 관계자들, 북측 CIQ 군인들, 양 갈래 길에 우뚝하니 서 있던 북측 군인들, 북측 주민 전용도로로 다니던 사람들, 돌격대들 등등 잊혀질 수 없는 많은 사람들.
둘째는 평생 가슴 속 깊이 담아두고 싶은 빼어난 절경의 금강산 일만이천봉, 기암절벽, 여러 형상을 띤 바위들, 맑은 물로 둘러싸인 삼일포 등.
마지막으로 점점 마음을 열고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북측 안내원들을 비롯하여 북측 물건(막걸리, 감자, 전, 기념품 등)을 파시는 젊은 여성분들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조장의 말로는 예전에는 남측 관광객이 물건을 사든 말든 가격만 말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나, 지금은 이른 바 호객행위를 하며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점점 자본주의의 상술과 논리가 퍼져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북측 주민들이 보다 질 높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예로부터 간직해 오던 전통문화와 질 높은 자연환경은 개발 논리에 앞서 보존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언제나 피곤에 지친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 줄 수 있고 여유롭게 흙을 걸어볼 수 있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주었으면 한다. 북측에 들어가자마자 휴대폰 벨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휴대폰 반입은 금지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3일 동안 고요함 속에 지내고 다시 서울에서 벨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왠지 모를 ‘짜증’이 나기도 하였다. 북측 주민들이 발달된 문명화된 삶과 개발되지 않은 자연적인 삶을 함께 잘 조화시켜 나갔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북측의 동포들의 손을 쉽게 잡을 수 있고 그들의 일상적인 삶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을 끝으로 가져보며 가슴 벅차고 찡했던 금강산 학술테마 기행을 마무리할까 한다.
둘째는 평생 가슴 속 깊이 담아두고 싶은 빼어난 절경의 금강산 일만이천봉, 기암절벽, 여러 형상을 띤 바위들, 맑은 물로 둘러싸인 삼일포 등.
마지막으로 점점 마음을 열고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북측 안내원들을 비롯하여 북측 물건(막걸리, 감자, 전, 기념품 등)을 파시는 젊은 여성분들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조장의 말로는 예전에는 남측 관광객이 물건을 사든 말든 가격만 말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나, 지금은 이른 바 호객행위를 하며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점점 자본주의의 상술과 논리가 퍼져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북측 주민들이 보다 질 높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예로부터 간직해 오던 전통문화와 질 높은 자연환경은 개발 논리에 앞서 보존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언제나 피곤에 지친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 줄 수 있고 여유롭게 흙을 걸어볼 수 있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주었으면 한다. 북측에 들어가자마자 휴대폰 벨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휴대폰 반입은 금지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3일 동안 고요함 속에 지내고 다시 서울에서 벨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왠지 모를 ‘짜증’이 나기도 하였다. 북측 주민들이 발달된 문명화된 삶과 개발되지 않은 자연적인 삶을 함께 잘 조화시켜 나갔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북측의 동포들의 손을 쉽게 잡을 수 있고 그들의 일상적인 삶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을 끝으로 가져보며 가슴 벅차고 찡했던 금강산 학술테마 기행을 마무리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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