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조선 시대 이전의 교육 및 관리 선발 제도
1) 삼국 및 남북국 시대
2) 고려 시대
3. 조선 시대의 교육 및 과거제도
1) 관학
2) 사학
3) 과거의 종류 및 규모
4) 예외적인 경우
4. 세종의 인사정책에 대한 평가
5. 결론
2. 조선 시대 이전의 교육 및 관리 선발 제도
1) 삼국 및 남북국 시대
2) 고려 시대
3. 조선 시대의 교육 및 과거제도
1) 관학
2) 사학
3) 과거의 종류 및 규모
4) 예외적인 경우
4. 세종의 인사정책에 대한 평가
5. 결론
본문내용
한 인사조치는 세종의 능력주의 원칙에 기반한 것이다. 따라서 창업시대부터 줄곧 이어져 내려 온 조직의 군살빼기는 이러한 능력주의의 인사정책과 맞물려 필수적으로 뒤따랐다. 그리하여 급여를 받던 형식상의 직책이었던 ‘유급산직’은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가게 된다.이러한 형식적인 직급들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예컨대, 영직(명목만의 관직을 주고 실제 업무는 맡기지 않는 직책을 말한다), 산관직(퇴직하더라도 재직시 가지고 있던 품계에 따라 예우를 하던 것을 말한다), 노인직(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형식적으로 벼슬을 주던 것을 말한다), 무록(실제 사무는 맡기지 않고 이름만 가지게 하는 것으로 관직명 앞에 붙인 말이다), 검교직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들은 세종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무급산직으로 전환되다가 나중에 저절로 없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세종이 이렇듯 형식뿐인 직책들을 정리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조직의 효율성을 강화해 개혁의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만일, 세종이 이 일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신생 조선을 자신이 지향하던 궤도위에 올려놓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세종은 인사 제도를 통해 현실 경영을 제어하고자 했던 것이다.
언제나 인사, 조직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에 있기 보다는 운영상의 형평성에 있다. 세종은 이 부분에서 전문가다운 모습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러나 세종에게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부분은 이러한 원칙 수용과 함께, 상대의 심리를 장악해 나가는 심리적 경영 기법에 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신하들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꼭 드러나는 행위를 통해서만 실행된 것은 아니다. 그의 인사 정책에는 ‘보이지 않는 손’인 상대에 대한 ‘기대’와 ‘바램,’ 그리고 ‘긍정적인 메시지’가 함께 했다.
이러한 CEO의 ‘기대’는 팀원들에게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이자, 업무성과를 향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만큼 세종은 그들에게 강한 긍정적 리더십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세종이 국가 경영을 하는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 주었다.
이러한 동기 부여의 원칙은 무엇보다도 세종 자신이 세우고 실천한 능력과 성과주의에 근거한다. 또 투명한 인사 제도의 실시에 있다. 세종은 서울 근무자와 지방 근무자간에 승진 시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곧바로 시정해 주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인사 정책의 투명성과 함께 세종이 세운 원칙의 하나는 바로, 다름 아닌 ‘소신 경영’이었다. 그는 소신에 근거한 인사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자신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 이러한 ‘소신’은 실제 실행 과정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조말생은 한번 탄핵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었을 때 신하들이 그의 삭탈관직을 청하지만, 세종은 '소신 경영'을 일관되게 유지해 나갔다. 반대자는 ‘일’이 진행됨으로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그는 이해했다. CEO가 한번 정한 일을 원칙 없이 자주 바꾸면, 실제 그러한 인사 조치에 반발한 측들도 CEO를 낮춰 볼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세종의 이러한 인사 원칙은 실제 특별한 인재를 발탁ㆍ승진시키는 경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CEO의 기대감을 심어 준 것은, 그에게 피그말리온 효과를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신하들의 성과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세종의 이러한 경영 기법에는 세종 자신이 상대에게 보여주는 인간적 관심이 큰 몫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발휘하게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조선 초는 지배계급이 자신의 특권을 독점하려는 의지에서 고려 때 보다 한층 두껍게 계급간의 이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제도를 만들고 있는 시기였다. 따라서 의관, 역관, 산관 등 특수 기술직 인재들은 관료의 신분을 유지해도 엄격히 차별되는 중인 신분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마당에 관노 출신인 장영실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것은 지배계급에게 가히 충격적인 인사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세종은 왜 그랬을까?
세종은 훌륭한 인재를 발탁한다는 기본 취지 이외에도 정부 조직 내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런 방식으로 지배 계급 내부에 퍼지는 매너리즘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계급과 계층에서든 이런 조치로 인해 누구든 자기 능력 이상을 발휘하는 자는 발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극제가 되도록 하고 싶었다. 그의 이러한 인사 정책은 신분제도 하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해 숨막혀하던 인재들에 대해 최소한의 숨통을 열어 놓는 대안의 인사 정책이기도 했다.
장영실은 이처럼 그 자신 탁월한 인재이기도 했지만, 세종이 그를 통해 인사정책의 모범 케이스를 만들어 보이려고 한 기본취지에서 발굴된 인재이기도 했다. 세종은 조선이라는 신생 조직 안에 최상의 생산성과 창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것이다.
장영실의 경우처럼 세종은 한 사람의 기대가 다른 사람의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지극히 단순한 인간 심리에 근거한 원리를 통해 학습 분야에서도 경연제도를 강화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5. 결론
위의 평가에서도 언급했듯이, 세종의 탁월한 인사배치는 건국초기의 불안정한 조선의 사회를 안정시키고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장영실의 발탁이라는 일대 사건은 실력보다는 간판에 연연하는 오늘날의 풍토에 더더욱 상기해보아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종의 인사정책은 단지 옛날의 것 끝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세종대왕을 단지 과거의 인물로만 기억하고 있다. CEO 카네기는 기억해도 CEO 세종대왕을 기억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리더쉽은 오늘날에도 배워야 할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자신과 학연, 혹은 지연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 한없이 관대하여 인사를 그르치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제는 한국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위대한 CEO 세종대왕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세종이 이렇듯 형식뿐인 직책들을 정리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조직의 효율성을 강화해 개혁의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만일, 세종이 이 일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신생 조선을 자신이 지향하던 궤도위에 올려놓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세종은 인사 제도를 통해 현실 경영을 제어하고자 했던 것이다.
언제나 인사, 조직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에 있기 보다는 운영상의 형평성에 있다. 세종은 이 부분에서 전문가다운 모습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러나 세종에게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부분은 이러한 원칙 수용과 함께, 상대의 심리를 장악해 나가는 심리적 경영 기법에 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신하들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꼭 드러나는 행위를 통해서만 실행된 것은 아니다. 그의 인사 정책에는 ‘보이지 않는 손’인 상대에 대한 ‘기대’와 ‘바램,’ 그리고 ‘긍정적인 메시지’가 함께 했다.
이러한 CEO의 ‘기대’는 팀원들에게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이자, 업무성과를 향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만큼 세종은 그들에게 강한 긍정적 리더십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세종이 국가 경영을 하는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 주었다.
이러한 동기 부여의 원칙은 무엇보다도 세종 자신이 세우고 실천한 능력과 성과주의에 근거한다. 또 투명한 인사 제도의 실시에 있다. 세종은 서울 근무자와 지방 근무자간에 승진 시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곧바로 시정해 주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인사 정책의 투명성과 함께 세종이 세운 원칙의 하나는 바로, 다름 아닌 ‘소신 경영’이었다. 그는 소신에 근거한 인사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자신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 이러한 ‘소신’은 실제 실행 과정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조말생은 한번 탄핵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었을 때 신하들이 그의 삭탈관직을 청하지만, 세종은 '소신 경영'을 일관되게 유지해 나갔다. 반대자는 ‘일’이 진행됨으로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그는 이해했다. CEO가 한번 정한 일을 원칙 없이 자주 바꾸면, 실제 그러한 인사 조치에 반발한 측들도 CEO를 낮춰 볼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세종의 이러한 인사 원칙은 실제 특별한 인재를 발탁ㆍ승진시키는 경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CEO의 기대감을 심어 준 것은, 그에게 피그말리온 효과를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신하들의 성과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세종의 이러한 경영 기법에는 세종 자신이 상대에게 보여주는 인간적 관심이 큰 몫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발휘하게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조선 초는 지배계급이 자신의 특권을 독점하려는 의지에서 고려 때 보다 한층 두껍게 계급간의 이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제도를 만들고 있는 시기였다. 따라서 의관, 역관, 산관 등 특수 기술직 인재들은 관료의 신분을 유지해도 엄격히 차별되는 중인 신분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마당에 관노 출신인 장영실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것은 지배계급에게 가히 충격적인 인사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세종은 왜 그랬을까?
세종은 훌륭한 인재를 발탁한다는 기본 취지 이외에도 정부 조직 내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런 방식으로 지배 계급 내부에 퍼지는 매너리즘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계급과 계층에서든 이런 조치로 인해 누구든 자기 능력 이상을 발휘하는 자는 발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극제가 되도록 하고 싶었다. 그의 이러한 인사 정책은 신분제도 하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해 숨막혀하던 인재들에 대해 최소한의 숨통을 열어 놓는 대안의 인사 정책이기도 했다.
장영실은 이처럼 그 자신 탁월한 인재이기도 했지만, 세종이 그를 통해 인사정책의 모범 케이스를 만들어 보이려고 한 기본취지에서 발굴된 인재이기도 했다. 세종은 조선이라는 신생 조직 안에 최상의 생산성과 창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것이다.
장영실의 경우처럼 세종은 한 사람의 기대가 다른 사람의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지극히 단순한 인간 심리에 근거한 원리를 통해 학습 분야에서도 경연제도를 강화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5. 결론
위의 평가에서도 언급했듯이, 세종의 탁월한 인사배치는 건국초기의 불안정한 조선의 사회를 안정시키고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장영실의 발탁이라는 일대 사건은 실력보다는 간판에 연연하는 오늘날의 풍토에 더더욱 상기해보아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종의 인사정책은 단지 옛날의 것 끝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세종대왕을 단지 과거의 인물로만 기억하고 있다. CEO 카네기는 기억해도 CEO 세종대왕을 기억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리더쉽은 오늘날에도 배워야 할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자신과 학연, 혹은 지연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 한없이 관대하여 인사를 그르치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제는 한국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위대한 CEO 세종대왕을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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