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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넷째 방법을 최후의 수단으로 쓸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당장 직업도 없는 전태일은 뺀뺀이 집에 앉아 놀기 뭐하다면서 어머니께 사정해서 삼각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기도원인 ‘임마뉴엘’ 수도원에 가서 공사판 인부 노릇을 약5개월 동안 하게 된다. 삼각산에 오르기 전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유서를 써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결단, 마침내 오랜만에 일기를 썼고, 그것은 결단, 노예의 삶의 모든 굴욕과 허위와 유혹을 떨쳐버리고, 아무리 수난과 고통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가시밭길일지라도 인간성을 위하여 싸우는 존엄한 인간의 길로 기어이 돌아가겠다는 결단이었다. 그가 산에서 내려와 평화시장을 찾았을 때, 하늘이 도운 것인지 노동운동의 활동은 잘 풀리는 듯 했다. 기자들은 많은 인원이 동참한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하였고 그것은 곧 노동자의 노동실태가 기사특보로 실리게 되었다. 노동자의 실태를 비판한 기사 몇 줄은 평화시장의 젊은 재단사들을 기쁨에 미쳐 날뛰게 했고, 많은 노동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바보회의 이름은 삼동친목회가 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억압자들은 이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전태일의 호소는 번번이 억압자들의 연계속에서 가로막혔고 배신당하였다. 그는 결국 데모를 하기로 결심하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은행 앞에서 데모를 결행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업주들과 형사의 단속으로 데모가 제대로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자, 그는 친구 김개남에게 몸에 불을 붙여 쇼를 벌여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자며 성냥불을 갖다 대어 달라 그랬다. 불안한 마음으로 김개남은 불을 붙여줬고, 이미 죽을 각오를 했었던 전태일은 준비한 석유통을 전신에 끼얹었다. 그리고는 아직 많은 노동자들이 서성대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쳐나가며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마라!” 그리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1만 5천원짜리 주사 두 대를 맞을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질 못하고서 죽어갔다. 전태일의 몸을 불사른 불꽃은 ‘인간 선언’의 불꽃이며, 이 사회에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권력이 존재하고 억압과 착취가 이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않는 한, 전태일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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