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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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문

Ⅱ. 헉슬리의 생애와 사상

Ⅲ.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역이상주의

Ⅳ. 멋진 신세계

Ⅴ. 멋진 신세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

본문내용

한다. 이러한 사실은 신세계의 시대이념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이기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 아름다운 알파인 여성 레니나와 야만인 새비지를 통해서 멋진 신세계의 실상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새비지는 백인이라는 이유로 인디언 부락에서 소외되어 살았었다. 그는 버나드의 주선으로 신세계에 오게 되고, 야만의 눈으로 문명을 바라보게 된다. 새비지는 "여기에는 정말 훌륭한 인간이 많구나!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외치면서 신세계에 들어선다.
그러나 멋질 것이라 생각했던 신세계는 기대와는 딴판으로 전개된다. 그는 과학과 결탁한 지배권력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수정란 복제에 의해 태어난 쌍둥이들을 보며 역겨움을 느낀다. 그는 수십 명의 쌍둥이들을 보면서 징그러움을 느끼고 육체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보존지역에선 소외의 원이었던) 얼마나 다행인가를 알게 된다. "쌍둥이, 쌍둥이, 또 쌍둥이, 그것은 악몽이었다. 그들의 얼굴들, 복제된 그들의 얼굴들, 한가지 형태밖에 없는 그들의 얼굴이 코를 벌름거리며 창백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재잘거리자 병실은 마치 구더기가 들끓는 것같이 되었다." 이 장면은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복제의 '동일성' 논리를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또 한 어머니라는 말에, 모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역겨움과 흥미로움을 보이는 문명인들에게 실증을 느끼게 되고,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는 자신을 힐난하는 보모에게 분노한다.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이 불가능한, 사람들 간의 정신적 교감과 이해가 불가능한, 메마른 감정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는 새비지에게 분노의 대상일 뿐이다. 남녀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사랑하는 레니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저는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요."
"그게 왜 필요한 거죠?"
"저는 무엇이든 할 거예요. 무엇이든 말만 해주세요. 당신을 기쁘게 해드릴 수만 있다면 어떤 괴로운 일이라도, 당신이 원한다면은 기꺼이 괴로움도... 그것이 바로 제 심정입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마루라도 쓸겠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진공청소기가 있어요..."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상대를 배려하고 그를 위해 사소한 것이라도 헌신하려는 새비지의 사랑을 희화화되고있는 것은 레니나인데, 그녀의 사랑에 대한 무지함은 신세계의 정신적 공허함을 드러내면서 독자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녀는 단지 육체적 쾌락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을 원한다. 그러한 요강을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레니나는 새비지가 보기에 창녀일 수밖에 없다. "왜 그래요. 존?" 레니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물었다. "매춘부!" 그는 미치광이처럼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 뻔뻔스러운 창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한편 새비지는 소마가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아 가두는 감옥과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에게 소마는 우는 아이에게 던져주는 무마용 사탕 같은 것일 따름이다. 소마로 인해 사람들은 길들여진 유아 상태에 계속 모르게 된다. 그리하여 새비지는 사람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소리친다. "여러분들은 자유로운 어른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성인이라는 것과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이해가 안 됩니까?" 물론 사람들은 새비지의 이런 외침을 이해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가 자신을 이데올로기로서 드러내지 않는 연유로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주체는 그 이데올로기를 이데올로기로 보지 못한다.
새비지는 문명을 탈출하기 전에 이곳 길드포드의 회장과 대화를 나눈다. 헉슬리의 사상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대화를 통해서이다. 과학을 통한 풍요와 행복추구라는 대중적 열망에 대한 진지한 경고가 이 대화에서 울려나온다. 헉슬리는 과학의 발전 자체를 문제 삼는다기보다는 과학과 권력의 결탁을 문제 삼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걱정한다. 행복을 추구하려는 대중적 열망이 과학에 대한 통제를 불러왔고, 그 결과 과학은 대중적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진리와 아름다움·신을 대체해 버렸다. 멋진 신세계는 그 결과물로 탄생한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이다.
결국 새비지는 문명으로 인해 오염된 자신을 깨닫고 문명을 탈출한다. 탈출한 후에도 끊임없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자신, 오염을 떨칠 수 없는 자신을 질책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Ⅴ. 멋진 신세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
'멋진 신세계'는 과학이 잘못된 방향으로 과도하게 적용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경고로서 일종의 반 유토피아적 소설이다. 기술의 발달에 의한 이상국가의 건설은 하나의 허구이며 정반대의 현실을 몰고 온다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발전에 대한 몇 가지 논고에서 헉슬리는 자연을 정복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언청이 바보 등의 기형아의 생산으로 나타남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천벌이며 유린당한 자연이 가져다주는 복수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 개개인의 품성과 타고난 소질이 희생되는 생물학적 정보는 인간 이하의 저차원으로의 후퇴이며,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발전은 아니며 오히려 원시적 인간이 더 행복하고 덕이 있으며 창조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역이상사회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하게 한다는 것, 진정한 자유가 없는 노예화된 사회라고 헉슬리는 이 책에서 말한다.
그가 책 속의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도 점점 변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아직까지 남아 있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애초에 헉슬리가 그가 말한 신세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그는 그 곳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는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끊임없이 소유와 욕구를 위한 투쟁을 한다. 나는 이 멋진 신세계의 모습을 보면서 한번쯤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곳에는 더 이상의 싸움도 욕심도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어느 것이 인간을 위한 진정한 사회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어차피 기본 유전자가 비슷하다면 태어나 사회화 되어가며 바뀌는 그 모습이 인간 그 자체의 참 모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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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16
  • 저작시기2003.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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