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통일에 있어 청소년의 태도와 교류가 미친영향 및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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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동서독간의 인적접촉 및 방송을 통한 접촉과 청소년
1. 친구 및 친척들과의 개인적 접촉들
2. 청소년 교류
3. 동독 청소년의 서독 방송 시청

Ⅲ. 독일문제에 대한 동서독 청소년들의 태도
1. 민족의 다른 쪽에 대한 관심과 지식
2. 동서독 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
3. 동서독 체제에 대한 태도
4. 독일정책에 대한 태도
5. 독일 통일에 대한 태도

Ⅳ. 결 론

본문내용

에서 동독은 서독보다 우월했다. 그러나 자유로운 정치적 의견형성과 생활수준에서는 서독이 낫다고 평가했다.
) 이에 대해서 상세히는 Foerster, S. 1269-1277 참고.
물론 동서독 체제에 대한 이러한 비교 평가에서 서독 방송과 동독 방송 중 어느 매체를 주로 시청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났다. "언젠가 통일이 올 것이라 보는가"라는 질문에 동독 청소년의 42%가 "예", 36%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P. Foerster, in: Enquete V.2. S. 1244-45)
1970년대 후반에 "동서독은 통일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동독 청소년 노동자의 비율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동독 체제에 대한지지,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한 확신도 감소하였다. 이것은 생산 현장에서 동독 경제의 위기를 지속적으로 경험한 청소년 노동자들이 점점 더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P. Foerster, in: Enquete V.2. 1247쪽.
1981년 동독 남자 견습사원을 대상으로 행한 통일문제에 대한 태도의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서독에 친척이나 친구의 존재 유무, 접촉의 강도, 서독 방송 시청 정도에 따라 큰 편차를 보여 주었다. "동서독의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서독인과의 인적 접촉이 없는 청소년들중 반대자는 18%였던 반면 서독인의 방문을 받는 청소년들 중 반대자는 32%에 달하였다. 주로 동독 방송을 시청하는 청소년의 경우 이 비율은 17%에 지나지 않은 반면, 주로 서독 방송을 시청하는 청소년에게서 이 비율은 39%나 되었다. (표 4 참고) 80년대에 일반적인 정치적 심성의 변화와 더불어 통일을 반대하는 동독 청소년들의 비율이 줄어들었다. 1989년 가을 절반 정도가 국가연합의 형태로의 통일을 지지했다. 1990년 초에 이 비율은 재빨리 약 80%로 육박했다.
서독 방송 시청은 통일 후까지 동독 청소년의 정치적 태도에 장기적인 영향을 남겼다. 정치적 정체성의 조사에서 주로 독일인으로서 느끼는 동독인들은 주로 동독인으로 느끼는 사람들보다 과거에 더 자주 서독 방송을 시청한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통일에 대한 태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게 드러난다. 서독 방송을 매일 시청함으로써 정치 정보를 얻은 사람은 동서독의 통일에 대해서 훨씬 더 지지도가 높았다.
) P. Foerster, Der lange Weg vom DDR- zum Bundesbuerger, U. Schlegel/P. Foerster ed., Ostdeutsche Jugendliche. Vom DDR-Buerger zum Bundesbuerger, Opladen 1997, 221-222쪽.
표4) 서독과의 인적 접촉 및 서독 방송 시청과 통일에 대한 태도의 관계
(1981년 동독 남자 견습사원 2369명 대상 조사)
"동서독의 통일은 불가능하다"
1 전적으로 동감이다. 2 다소 그렇다. 3 별로 그렇지 않다. 4 전혀 그렇지 않다.
1 2 3 4 n
a) 인적 접촉
친척 친구 없음 62 20 12 6 792
접촉 없음 60 18 15 7 358
편지만 왕래 51 23 20 6 371
방문 43 25 20 12 1161
b) 방송 접촉
주로 동독 방송 66 17 12 5 632
양쪽 다 시청 52 22 18 8 1507
주로 서독 방송 33 28 22 17 423
(출처: P. Foerster, in: Enquete V.2. S. 1246)
Ⅳ. 결 론
동독에서 이데올로기 교육은 체제가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한 청소년의 정치 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 경제위기 등을 통해서 체제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면서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다수 청소년들의 서독인과의 인적 접촉 및 방송 매체를 통한 접촉은 서독의 영향을 차단하려는 동독 정부의 이데올로기 교육의 효과를 약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접촉들은 동독 청소년들로 하여금 동서독인이 같은 민족이며 따라서 통일되어야한다는 생각을 강화시켰다. 이러한 접촉을 가졌던 청소년은 후에 통일 독일의 완전히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보다 더 빨랐다.
서독 청소년들에게서는 분단현실을 바꾸기 어려운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그 속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다른 연령층에서보다 강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서독 정부는 학교교육을 통해서 분단의 고착화를 막고 통일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자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서독 정부는 1980년대 초에 동독과의 협상을 통해 학생들과 다른 청소년 집단들의 동독으로의 단체여행을 본격적으로 확대함으로써 그들의 동독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와 함께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동독의 친척이나 친구를 방문할 수 있었던 청소년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러한 인연이 없는 청소년들도 동독 사회와 동독인을 생생하게 체험함으로써, 냉전체제에서 형성되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동독사회에 대한 일방적이고 경직된 시각을 교정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모토를 가지고 보다 많은 인적교류를 통해서 민족적 유대를 유지·강화시키려했던 빌리 브란트의 신동방정책 이래 서독은 대동독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80년대에는 동서독의 인적 교류가 훨씬 더 긴밀해졌으며 이것은 동서독 청소년들의 독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우리는 1980년대에 동독의 경제위기와 더불어 동독 체제에 대한 정체성의 약화, 반체제 시민운동, 89년 가을의 전환기에 반체제 시위들, 서독으로의 대량 이주 등 동독의 붕괴와 통일을 가져온 중요한 사건들에서 체제비판적인 청소년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그들이 체제비판적인 의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서독인과의 광범위한 인적 접촉 및 서독 방송의 일상적 시청으로부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러한 측면에서 서독의 대동독 화해 및 협력정책은 청소년층과 관련해서도 독일 통일에 궁극적으로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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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09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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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98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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