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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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모비딕을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렸을 뿐이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멜빌을 위해 그의 가족들은 주변사람들을 통해 대학동창이며 신임 대통령인 프랭크린 피어스의 배려로 호손이 영국주재 외교관으로 임명된 것처럼 멜빌도 해외 외교관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한동안 집필활동을 단념하고 있던 멜빌은 1853년 여름 월간지<푸트남>(Putnam)지로부터 원고청탁을 받게 되자 처녀 단편인 서기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를 발표하게 되어 새로운 활기를 되찾는다. 멜빌은 지금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적극적이고 저항적인 인물상보다 이제는 소극적이며 수동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베니토 세레노(Benito Cereno)같은 뛰어난 단편소설도 발표하면서 계속 집필활동을 해오다가 1854년 7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월간지<푸트남>지에 역사소설인 「이스라엘 포터」(Israel Potter: His First Years of Exile)를 기고한다. 미국 독립전쟁기간에 영국군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다고 40년만에 미국으로 돌아온 한 참전용사의 수기를 자료로 쓴 이 작품은 미국의 독립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묻고 있는데 1855년 3월 단행본으로 출판된다.
한때 심각한 좌절감에 빠져들기도 했으나 멜빌은 자신이 작가로써 완전한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창작의욕을 불태운다. 그는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는 증기선을 무대로 한 「신용사기꾼」(Confidence Man)을 집필하여 1856년 4월 완성하여 우여곡절 끝에 1857년 4월에 출판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출판한 출판사가 곧 파산해 버려서 그는 단 한푼의 인세도 받지 못하고 만다. 이 작품은 사실상 멜빌 생전의 마지막 소설인데 첫 부분에서는 사기로 인한 속기 쉬움을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냉소를 공격하는 이중적 풍자구조로 남북전쟁이전의 사회적, 계급적 또는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힌 미국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지만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전혀 공감을 받지 못하여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 곧 사라져 버리고 만다.
「신용사기꾼」을 완성하고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후 1856년 겨울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던 멜빌은 1857년 5월 귀국하자 이제는 소설을 쓸 뜻이 없음을 가족에게 알린다. 37살의 멜빌은 창작활동을 계속해야하는 소설가로서는 완전히 탈진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3년 동안 틈틈이 순회강연에 나섰으나 연사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순회강연활동을 단념하고 동생 토마스가 선장으로 있는 배를 타고 세계일주 여행길에 오를 계획을 세운다.
멜빌은 여행을 떠나기 전 틈틈이 써놓았던 시(詩)를 모아 시집으로 출판해주기를 아내에게 부탁했으나 실현되지 못했고 세계일주여행을 희망했던 배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무한정 체류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파나마를 거쳐 집으로 돌아와 버린다. 그러자 남북 전쟁이 발발하여 그는 해군 장교가 되고 싶었으나 실패하고 만다. 그는 뉴욕으로 이사하고 계속 남북 전쟁에 관한 시를 꾸준히 집필하여 1866년 「전쟁의 노래, 전쟁의 진상」(Battle-Pieces and Aspects of the War)이라는 시집을 출간한다.
이 「전쟁의 노래」라는 시집이 출판된 직후인 1866년 12월 멜빌은 47세의 나이에 뉴욕세관의 검사관으로 취직하게 되어 1885년 퇴임할 때까지 20여년동안 세관관리로 평탄한 생활을 하게 된다. 세관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그는 더 이상 소설을 창작하는 일은 포기하였지만 완전히 글을 쓰는 일은 단념할 수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데는 시(詩)를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틈틈이 시를 쓰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1876년 마침내 「클래럴: 성지순례시」(Clarel: A Poem and Pilgrimage in the Holy Land)라는 18,000여행에 이르는 야심적인 서사시집의 출간이 숙부 피터 갠스부어트의 도움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멜빌의 의욕과는 달리 시집 「클래럴」은 20여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의 묘사가 매우 산만하고 시인이 의도하는 설교적 내용도 난해하여 완전히 실패작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빌은 틈틈이 시를 쓰기를 계속한다. 시인으로서의 변신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문단에서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 되어 버렸지만 무언가를 계속 쓰려는 그의 의식 때문에 만년에 이르자 그는 주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증정시집을 25부 한정판으로 만든다.
자신의 젊은 시절의 선원생활을 회상하여 쓴 「죤 마아와 선원들」(John Marr and Other Sailors)을 1888년에 출간하고 3년 뒤인 1891년 프르타크 영웅전에 나오는 영웅 티몰레온의 일화를 제목으로 한 「티몰레온」(Timoleon)을 출간하지만 독자 대중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888년 11월 16일부터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891년 4월 19일 탈고했지만 생전에 출판되지 못하고 멜빌이 죽은 후 30년이 지나서 세상에 나온 「빌리 버드」(Billy Budd)(1924)는 오늘날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순진한 인물인 빌리 버드와 악의가 숨겨져 있는 악의 상징 존 클러거트하사관 사이의 대결상황에서 우발적인 일격의 주먹으로 클러거트를 죽인 빌리의 살인행위는 군법회의에서 사형에 처해 진다.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한 우화는 독자로 하여금 인간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의 모호성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의 복지에 책임 있는 사회적 존재인가? 또는 죄와 무죄를 개인적으로 의식하는 책임이 있는 독립된 도덕적 존재인가? 멜빌은 인간은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관원으로 생활하게된 1866년부터 1885년 퇴임 할 때까지 멜빌의 생활은 평범한 세관관리로 평탄한 인생을 살았지만 작가로써의 멜빌은 대중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망각된 불우한 존재이었다. 1891년 1월 겨울의 추운 날씨에 산책을 나갔던 멜빌은 감기에 걸려서 악화되더니 다음날 심장발작의 증세를 나타냈다가 얼마 후 회복되었으나 9월 28일 심장발작의 악화로 사망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아내와 두딸 그리고 소수의 친척만이 참석한 쓸쓸함 뿐이었다.

키워드

  • 가격1,5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7.04.23
  • 저작시기2005.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6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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