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답사기3 -경주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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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7cm, 높이 18cm)은 석가탑의 그것처럼 장중한 균형미를 갖춰 국내외에서 발견된 사리장치 중 최고의 예술품임이 확인되었다.
제3사리병은 비단으로 겹겹이 싼 높이 4cm의 은항아리 속에 순금종이로 감싼 콩알만한 은제합 속에 진신사리를 간직한 보기 드문 희귀한 것이었다. 위에 세 사리함에서 나온 사리는 모두 48과였다. (사리병에서 46과, 두 개의 합에서 각각 1과)
이밖에 비단으로 싼 목판본 불경은 폭 8cm, 길이 5cm의 다라니경으로서 한지에 한문이 총총히 박힌 것을 볼 수가 있어 이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쇄문화를 말하는 귀중한 유물임이 분명하다. 이와 함께 발견된 칠기는 삭아서 기형을 알 수가 없으나 옻을 입힌 자취가 역력히 남아 있어서 높은 기술을 엿볼 수 있다.
그 외 탑이 부러진 것 말고도 큰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석가탑에서 나온 사리장치 중 하이라이트인 사리 46과가 담겨 있던 녹색 사리유리병을 한 스님이 옮기다 떨어뜨려 깨뜨린 것이다. 그야말로 박살이 나도록 깨져 억지로 이어붙인 상태로 지금은 국경경주박물관 창고에 있다.
⑦ 1970년대 복원공사 진행과정
1. 1969년 5월 12일 박대통령 복원 지시
2. 1969년 5월 21일 신범식 문공부장관이 본사업 추진을 위한 경제인 간담회 개최
4. 1969년 6월 17일 청와대 정무비서실에서 불국사 복원이 행주산성, 도산서원, 진주성
보수, 정화사업과 함께 토의
5. 1969년 6월 23일 코리아 하우스에서 불국사복원위원회의 운영, 고증, 설계위원회 구성
8. 1969년 7월 30일 세종호텔에서 불국사 복원재원 염출을 위하여(경제인) 시주자 감담회 개최
13. 1969년 8월 29일부터 10월 30일까지 64일간 불국사 발굴 조사 실시
18. 1969년 11월 14일 불국사 복원공사 기공식
35. 1972년 2월 6일 대통령 각하께서 불국사 현장을 순시하시고 당청공사에 대하여 밝고 은은하게 하고 각별한 정성을 들여 충실한 공사가 되도록 지시하시면서 관계관에게 노고를 치하하심
36. 1972년 6월 18일 대통령 각하께서 불국사 현장에 오셔서 불국사 벽단청을 좀 더 은은하게 하도록 지시하심
39. 1973년 7월 3일 대통령 각하를 모시고 불국사 복원공사 준공식 거행
⑧ 불국사의 잃어버린 아름다움
앞의 복잡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불국사는 복원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국사는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
첫째는 경루를 복원하지 않은 잘못이다.
둘째는 석가탑을 복원하면서 상륜부를 너무 장식적으로 처리한 점이다.
셋째는 극락전 건물의 초라함이다.
넷째는 아마도 가장 큰 아쉬운 점으로 구품연지를 1970년대 복원 때 포기한 점이다.
⑨ 나무 불국사, 나무 불국사
작가 자신이 위대한 불국사가 그 어느 위대한 시인도 이 위대함을 찬미한 일이 없어 차라리 자신이 서툰 노래로 옛사람들이 쓰던 형식을 빌려 찬하겠다한다. 제목은 '나무 불국사'다.
향가와 옛 시인의 글이 셋 인용됐고,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이며 '나무'는 '어찌 없을 것이냐'는 뜻으로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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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4.27
  • 저작시기2007.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6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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