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논문(Anti 이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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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완용 논문(Anti 이완용)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 론 (Anti 이완용)

Ⅱ.본 론
1. 만고의 역적 이완용
2. 이완용의 또 다른 모습
3. 현실주의자 이완용

Ⅲ.결 론

본문내용

로 봤을 때 오늘날 각종 철도사업 등의 부설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 물론 그가 미래를 내다보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식의 의도보다는 어차피 넘겨줄 이권이고, 그 와중에서 생기는 이득은 취하고 보자는 식의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처세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그의 외부대신으로서의 입장에서 관여할 수밖에 없었고 적어도 미래의 국가를 위한 길이라는 명분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떤 식의 논리가 의사결정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는 접어두고라도 그가 관료로서 맡은바 책임을 다했던 성품을 미루어 보아 적어도 오늘날 비난받을 내용은 아닐 것이다. 광산의 운영권이나 산림의 개발권 등의 이권들도 당시의 관료들이 이런 사업에 대한 지식이 너무 미천해서 너무도 억울하게 빼앗긴 경우가 많은 것이지 이완용만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이완용이 일본에 대한 충정은 사실 국가관에 있어서 초월하고 있었다면 또한 납득이 된다. 조선의 자주독립이라는 개념보다는 일제치하의 조선으로서 하나의 일본이라는 국가의 개념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에 충성을 다한 것이다라고 보면 그의 애국심이라는 것은 설명이 된다.
결국 이런 모든 논리를 증명하는 그의 변역의 논리는 현실주의적인 입장에서 귀결이 된다.
"나의 지나온 바를 말한다면 최초 25세 경에는 종래 조선인이 목적으로 삼았던 문과에 급제했다. 그런데 당시로부터 미국과의 교제가 점점 긴요해졌기 때문에 그때 신설된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미국에 가게 되었다. 갑오경장 후 을미년에 이르러 아관파천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당 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후 일러전쟁이 끝났을 때 여기에서 전환하여 현재의 일본파 라는 칭호를 얻었다. 때에 따라 마땅한 것을 따를 뿐 달리 길이 없다. 무릇 천도에 춘하추동이 없어 이를 변역(變易) 이라 하며 인사에 동서남북이 있어 이 또한 변역이라 한다. 천도와 인사가 때에 따라 변역하지 않으면 이는 실리를 잃어 끝내 성취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완용의 회고 中)
Ⅲ. 결 론
현실주의자로의 분류는 그의 일생을 일관되게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현실주의자로의 분류는 그의 행적들이 이중적인 또는 자책감에 기인된 모습들로 보여졌던 것이라고 하기 보단 더 논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애국자로 명명 할 수는 또한 없는 것이다. 역사적인 관점에 있어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보다는 그의 업적 또는 행적들에 초점을 맞춰 그 당시 사회상을 바라보는 데에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양비론 적인 견지에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져선 안 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완용을 검색하면 '한말의 정치가. 친일파.' 이런 식으로 시작이 된다. 그런 사전에서조차도 다분히 그를 매국행적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현실이다. 이완용은 틀림없는 매국노이다. 하지만 독립문 현판을 친일파인 이완용이 쓴 것이 어찌 치욕이 되며, 그가 일으킨 교육혁신이나 각종 이권을 넘김으로 인한 결과물들은 왜 아무런 평가가 없는 것인가? 만일 이완용이 아닌 다른 이가 총리대신의 자리에 있었다면 한일합방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인가?
그건 그렇지 않다.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있었고, 강압이냐 합의냐의 기로에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완용이 만일 한일합방 후에 파멸의 길을 걷고 해외 도피를 한다던가 죽었다던가 했다면, 오늘날 인터넷 검색으로 나온 그는 한말의 불우한 정치가. 일지도 모른다.
그를 역사적인 평가 이전에 한 인물로써 보자면 격변의 역사 그 파란 만장한 현장 속에서 그렇게 변절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만큼 정말 그의 능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쓸모 있는 사람이기에 중용이 된 것이 아닌가. 우유부단하고 소심했다고 평가받는 고종에게 죽는 날까지 인정받는 충신이었다는 것도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그의 현실주의는 변절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분히 운도 따랐지만, 그의 성실하다 못해 치밀한 숨겨진 노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그리고 다변 하는 상황 속에서의 현실 대처 능력 등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할 만한 능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한가지 의혹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렇게 까지 그가 욕을 먹는 이유에는 아마도 다른 이유에 근거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완용이 진정 비난을 받는 이유는 비단 그의 매국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수를 누리며 당대 최고 갑부계열에 들며 부와 권력을 끝까지 유지한 사람이었음에 진정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이완용이 환생한다면 그야말로 정치인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이 시대의 소위 부패했다고 하는 정치인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상은 훌륭하되 현실정치에선 어쩔 수 없이 때론 유치해지기도 하고 적당히 부정도 저지르는 등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하지만 시류를 잘 읽기에 꽤나 유력한 그런 정치인의 한 사람 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이기에 오늘날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국민정서에 맞지 않아 지금 까지도 그의 오명은 벗겨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역사적인 행적에 있어서 그는 부인할 수 없는 매국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으로 감춰진 또는 가려진 일들 그뿐만 아니라 잘못된 역사들은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시점에서 새로이 인식해야할 이민문제나 경제위기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 미군장갑차 사건이래 우리 나라의 위기의식이 고조된 지금 이민문제의 핵심인 인종주의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애국이라는 이름아래 성조기를 불사르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조하는 많은 이들. 초등학생이 그저 맹목적으로 부시를 욕하고 빈라덴을 옹호하면서 테러의 정당성에 대해 인식하게 될지도 모를 이런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독립문 현판에 대한 진위여부, 이완용의 교육사적 업적들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역사의 올바른 인식은 비단 과거의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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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5.20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0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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