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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만해 한용운][님의 침묵]만해 한용운과 님의 침묵(만해 한용운 생애, 만해 한용운 연보, 만해 한용운과 3․1운동, 만해 한용운 시적 출발, 만해 한용운 시 특징, 님의 침묵 분석, 만해 한용운 시에 나타난 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만해 한용운의 생애

Ⅲ. 만해 한용운의 연보

Ⅳ. 만해 한용운과 3․1운동
1. 3․1운동의 주도
2.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전개

Ⅴ. 만해 한용운의 시적 출발

Ⅵ. 만해 한용운 시의 특징
1. 님은 누구인가
2. 님의 침묵에 나타난 역설
3. 여성적 화자의 의미

Ⅶ. 님의 침묵(沈黙) 분석

Ⅷ. 만해 한용운 시에 나타난 님

Ⅸ. 결론

본문내용

는 불꽃을 얼음처럼 마시는 사랑의 狂人이여
아아 사랑에 병들어 自己의 사랑에게 自殺을 勸告하는 사
랑의 失敗者여
그대는 滿足한 사랑을 받기 위하야 나의 팔에 안겨요.
나의 팔은 그대의 사랑의 分身인 줄을 그대는 왜 모르셔요.
---- 한용운 「슬픔의 三昧」에서 ----
여기서 님은 ‘외로이 누워 있는 님’,‘비틀걸음치는 美人’,‘사랑의 狂人’,‘사랑의 失敗者’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님의 모습이 불의 모습이 아님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이 시에 나타난 님은 바로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갈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羊’의 모습인 것이다. 즉,현실에서 괴로워하는 衆生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님을 나,佛,衆生의 3者의 共存으로 보는 것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한용운의 시에 나타난 님은 詩篇에 따라 종래의 견해처럼 佛로도 해석되고 衆生으로도 해석되어지지만 반드시 그러한 구별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님이 佛과 衆生의 뜻을 동시에 갖고 해석될 수도 있으며,어떤 경우에는 님이란 단어가 중복되어 각각 佛과 衆生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어떤 人稱代名詞와 님이란 단어가 나타나 각각 衆生과 佛의 心像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보통 나(話者)와 님(聽者)의 2者가 시에 등장하였으나, 나,佛,衆生의 3者가 동시에 등장하는 詩篇들도 다수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참말인가요. 님이여 속임없이 말씀하야 주셔요.
당신을 나에게서 빼앗어간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그대는
님이 없다」고 하얏다지요.
그래서 당신은 남모르는 곳에서 울다가 남이 오면 울음을
웃음으로 변한다지요.
사람의 우는 것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인데 울기조처 마음
대로 못하고 웃음으로 변하는 것은 죽음의 맛보다도 더 쓴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변명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읍니다.
나의 생명의 꽃가지를 있는 대로 꺾어서 花環을 만들어 당
신의 목에 걸고 「이것이 님의 님이라」고 소리쳐 말하겄읍
니다.
그것이 참말인가요 님이여 속임없이 말씀하야 주서요.
당신을 나에게서 빼앗어간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그대의
님은 우리가 구하야 준다」고 하얏다지요.
그래서 당신은 「獨身生活을 하겄다」고 하얏다지요.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분풀이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
읍니다.
많지 안한 나의 피를 더운 눈물에 섞어서 피에 목마른 그
들의 칼에 뿌리고 「이것이 님의 님이라」고 울음 섞어서 말
하겄읍니다.
---- 한용운 「참말인가요」에서 ----
이 시는 일제에 빼앗긴 조국이 그리워서 쓴 시이다. ‘당신을 나에게서 빼앗어간 사람’의 ‘당신’은 佛, 특히 조국이다. ‘빼앗어간 사람’은 일본인이다. 따라서 ‘그대는 님이 없다’의 그대는 佛(특히,조국)이며 님은 衆生(특히,백성)이다. 이러한 이해를 가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이것이 님의 님이라」’ 라는 난해한 구절을 解得할 수 있다. 먼저 ‘이것’은 생명의 꽃가지로 만든 花環이다. ‘님의 님’에서 앞의 님은 佛(조국)이며 뒤의 님은 衆生(백성)이 된다. 즉 한용운의 花環은 衆生(백성)을 대표하게 된다. 일본인들이 조국을 보고 ‘그대는 백성을 모두 잃었다’고 할 때, 나는 생명을 바쳐 ‘이 花環이 내 조국의 백성이다’고 항거하여 부르짖는 내용의 시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님=衆生(백성)’, ‘님=佛(조국)’의 두 개념이 하나의 시속에서 각각 공존하고 있는 희귀한 예를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님의 침묵』88편을 3가지 경우로 구분하면,
첫째, 님이 佛로만 해석되는 경우
둘째, 님이 衆生으로만 해석되는 경우
세째, 님이 佛,衆生 모두로 해석되는 경우
이 구분 중에서 세째에 해당하는 詩篇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용운이 『님의 침묵』에서 그토록 부른 ‘님의 정체’는 조국,민족,衆生,佛,愛人,친구 등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성을 함유하고 있으나, 결국은 하나의 생명적인 근원으로 귀일된다고 보아야 한다. 비록 이 시인에게는 ‘님’이 떠나버려 부재하지만, 그 ‘님’을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라도 남게 하지 못한다면 살 수 없었던 생명적인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의 시적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Ⅸ. 결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님은 과연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되돌아 올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그 안에서 훼손되어 버린 삶을 님이 없는 시대와 삶으로 파악하고 노래한 이는 한용운만이 아니었다. 김소월, 이상화 또한 님을 잃은 삶의 막막함과 고통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시에서는 님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하거나(김소월), 미래의 절망적 경험 안에서나 나와 합일할 수 있는 대상(이상화)으로 나타난다. 이와는 달리 한용운은 떠나간 님은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믿으며 삶의 절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님을 향해 누를 수 없이 솟아오르는 사랑의 힘을 노래하였다. 물론 소망의 간절함에도 님이 없는 시대의 여러 조건과 고통은 쉽사리 극복될 수 없는 것이기에 님이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늘 확실한 것이 아니다. ‘님의 침묵’ 곳곳에서 표출되는 부정적 세계관은 바로 님이 없는 삶의 괴로움과 오지 않는 님에의 원망이나 비판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만해의 부정적 사유는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소멸이 생성의 원리이듯, 존재를 긍정하기 위한 전제 조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부정적인 것은 그저 부정적인 것이 아니요 바로 변증법의 성과 속에 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동시에 긍적적인 것, 적극적인 것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조선 불교 유신론\"에서 유신이란 파괴의 자손이며, 파괴란 유신의 어머니라고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만해시가 이러한 부정적 논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은 바로 비판과 부정을 통해 보다 확실하고 적극적인 긍정에 도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 세계관을 볼 때 식민지 시대는 님이 침묵하고 부재하는 때다. 그러면 님은 어디에 있는가? 님은 어둠과 고통의 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님은 우리의 고통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피안의 존재일 수도 없다. 결국 님은 완전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부재하지고 않고 그것을 갈구하는 자의 끊임없는 예기와 모색의 실천 속에서 불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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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0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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