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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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상 사회지도자 부문에 선정된 것은 그녀가운영하고 있는 여성법률상담소가 넓은 의미의 여권운동이며 더불어 민주주의의 강령이라는 이유에서였다.
7. 가족
남편 정일형과 아들 정대철
남편 정일형은 한국의정사상 최초의 7선의원이며 훗날 자신의 묘비에 ‘자유민주주의의 노병’이라고 새겨달라고 할 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다. 그런 그가 3.1 명동사건으로 인해 1977년 3월 24일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정일형의 자격박탈로 재보권선거가 이루어졌는데 정 의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아들 정대철씨를 후보자로 천거하고 나섰다. 그러나 비정한 정치 생리를 알고 있는 아버지 정일형은 그들이 대철을 떨어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허나 측근들은 정 의원 몰래 아들 대철을 입후보로 등록해버렸다. 갖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혼동 없이 정대철을 뽑았다.
33세에 국회로 진출한 정대철의원은 당시 야당당수와 젊은 국회 의 원들도 몸을 사리느라 겉돌고 있을 때 대담하게 유신철폐와 박정희 정권 퇴진을 주장했다. 이에 공화당 의원들이 야유와 폭언을 퍼부었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받아치며 극언을 하였다. 이들의 난타전을 말리느라 민관식 국회의장 대리는 진땀을 뺐지만 국민들은 정대철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8.꿈
여성백인회관
가정법률상담소 창설 20주년을 맞이한 1976년 5월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899에서 여성백인회관 기공식을 가졌다. 여성인권을 위해 일생을 바친 태영이 신장암으로 수술실에 들어가지 전 모든 재산을 회관건립에 사용하여 달라고 유언(?)을 할 만큼 그녀에게는 필생의 사업과도 같은 건물이다. 늘 재정이 부적했던 탓에 구좌개설과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세운 여성백인회관은 문자 그대로 여성전체의 집이되리라는 태영의 확신이 담겨있다.
9. 죽음
1998년 12월 17일 오전 11시 10분, 봉원동 자택에서 조용히 타계하여 친정어머니와 남편 정일형 박사가 있는 하늘나라로 갔다.
만남 그리고 인생(관련 인물)
김활란 박사
이화여전 입학 당시 교감이이었던 김활란 박사는 어린 시절 태영에게 커다란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태영이 성장하여 자신의 길을 확고히 하면서부터 충돌이 잦았다. 태영이 법학연구에 대한 뜻을 내비치자 ‘그 일은 네가 아니어도 다른 남자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가정대학에서 전통의상을 연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한다. 끝내 태영은 사표를 제출하고 법학도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김활란 박사와 또다시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고시에 합격하였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이 김활란 박사이다. 이태영이 세계적 인물이라고 표현할 만큼 김활란 박사는 그녀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
1984년 국제변호사회에서 주최하는 제 1회 국제법률봉사상을 수상하기 위해 인도에 간 태영은 마더 테레사와 만나게 된다. 함께 어린이 수용소를 지나다 한쪽 다리가 잘려나가고 한쪽 눈이 뒤집힌 아이 옆에 몰려있는 수녀들을 보고 테레사가 연유를 물으니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치료비를 받지 못해 병원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흥분한 태영이 법률부조변호사는 어디 있느냐고 외치자 테레사가 태영의 손을 잡으며 함께 일하자고 청하였다. 그러나 서울에 할 일이 산적해 있는 태영은 ‘인류의 평화보다 가정의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테레사는 ‘인류평화는 가정에서부터’라는 메시지를 띄운다. 이 말을 듣고 태영은 생각했다. 가족법 개정은 단순히 여성지위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나 종적인 구조를 횡적인 구조로 바꾸어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곳인 가정에서의 차별이 극복되어야 사회가 민주적일 수 있다는 신념을 키우게 된 것이다.
맥아더 장군이 들려준 비화
1960년 10월 말 경, 외무부 장관 정일형과 그의 아내로서 유엔을 방문한 이태영은 맥아더 장군의 초청으로 리셉션에 참석하는데 그곳에서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한국 전쟁 당시의 비화를 듣게 된다. 만일 그 당시 맥아더의 의지대로 공산군을 압록강 넘어 만주로 내몰았더라면 한국은 분단이 아닌 통일 국가를 형성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에 태영은 그때 통일만 이루었더라면 독재의 잔재를 모두 걷어버리고 남한의 주도아래 민주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으리란 생각을 한다. 그렇게 맥아더와의 만남이 있고 난 이듬해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자 태영은 이 같은 생각을 더욱 뼈저리게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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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09
  • 저작시기2006.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3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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