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기독교 전파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로마제국의 기독교 전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로마제국의 기독교 전파
<목 차>
Ⅰ. 기독교란?

Ⅱ. 로마제국의 형성과정

Ⅲ. 기독교는 어떻게 로마제국에 전파되었을까

Ⅳ.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후에도 지속되었다.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목회서신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집필되었다. 이 서신들은 1세기말경에 씌어진 것 같다. 이와 동시에 현존하는 바울의 서신들이 수집되었다. 그것은 교회 전체에 그 서신들을 회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서신들은 곧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의 준거가 되었다. 특히 속죄(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인류와 하느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가르침)에 관한 이론들은 언제나 바울의 사상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절반을 이루는 서방(라틴) 진영에서 바울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들을 통해 교회의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은총과 자유의지에 관한 펠라기우스 논쟁은 바울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문구에 대한 해석에 좌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논증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바울의 예정사상에 논증의 근거를 두었다. 그는 바울의 예정사상이 우주적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예정된 계획을 언급한 것이며 자유의지의 행사와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는데 이것은 정확한 해석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도 바울 큰 빚을 졌다. 마르틴 루터는 의인론(義認論)에 몰두했다. 그는 신앙과 공로를 구별했으며 이를 거점으로 중세 후기 교회를 공격했다. 장 칼뱅은 바울로부터 교회를 선민들의 공동체로 보는 개념을 끌어냈고 예정사상을 활용했다. 그는 이에 약간의 추론을 덧붙였는데, 신자들만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력을 통해 종교개혁과 그 유산인 근대 개신교의 루터파 교회와 칼뱅파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주제들은 동방정교회에서는 서방교회만큼 중시된 적이 없다.바울로 대한 현대 신학자들의 연구는 이같은 논쟁들을 넘어서서 바울을 그리스도교의 탄생과 연관시켜 살펴보려고 한다. 현대 신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바울 사상의 기초는 그당시의 유대교 개념들과 연관시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칼뱅의 일부 후계자들이 표방했던 비타협적인 예정론은 바울의 의도에 대한 지나치게 경직된 해석으로 간주되었다. 울의 사상이 그리스 사상과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거부되고 있다. 오늘날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유대인으로서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형편이다. 회심 경험을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주도권 아래 있는 우주적인 주(主)이며, 하느님 나라의 대행자요 인도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장벽이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 3:28)
Ⅳ. 결론
다신교 로마제국은 그 힘으로 기독교를 억누르려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 대표적으로는 네로 황제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재미로 로마시를 불태우고 그것을 기독교인들의 짓이라고 하며 엄청난 수의 기독교인들을 처형시켰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때 순교했을 것이라고 오늘날 학자들은 얘기합니다.
그런데 왜 로마제국이 그토록 박해했던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습니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첫번째 이유는 기독교의 교리와 로마제국의 종교교리와는
사실 비교할 수도 없이 합당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두번째는 초기기독교인들의 죽음을 무릅쓴 선교활동입니다. 억압에 눌려있던 로마제국내의 피지배인들은
기독교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에 엄청난 속도로 동화되어 갔으며 이것은 탄압으로도 결코 막을 수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국 대중들의 요구에 로마황제는 두손 두발 다들게 된거죠 결국 기원4세기 콘스탄틴황제는 그 유명한 콘스탄틴공의회를 통해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아니죠. 다 속셈이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제국내의 많은 피지배인들을 적절하게 달래주고 동시에 서쪽의 지한 게르만 민족과의 차별성입니다. 사실 로마제국의 종교라는 그때까지만 해도 종교라고 할것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려서부터 읽어봤지만 제우스 비너스 아폴로등등의 신이 등장하지만 과연 그 신들이 기독교의 숭고한 교리와 비교될 수 있었겠습니까? 따라서 로마제국은 세련되고 수준높은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서 대 로마제국의 존속에 이득이 되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제국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전세계에 급속하게 퍼지게 되었고 오늘란 전세계의 종교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교국가인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 해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바로 초기기독교와는 기본자체가 다른 외계인같은 교리가 발생한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교리와 기독교교리가 합쳐진 것이죠.
콘스탄틴공의회를 거쳐 기독교 교리는 엄청나게 변형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영혼불멸, 삼위일체교리입니다. 그리고 중세로 들어서면서 그 변형정도는 더욱더 심해지죠. 결국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가 발생하게 된 계기가 되는데 상당부분이 정화되었지만 아직도 정화될 부분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성서(히브리어,희랍어)는 절대 변경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원본과 거의 변한게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의심할 여지는 없습니다.
성서의 내용과 무관하게 로마시대를 거쳐 중세시대, 그리고 오늘날까지 지배계급을 위한 억지의 교리들이 판을 쳤지만 이제는 초기 기독교의 순수한 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참고문헌>
-인터넷 사이트
http://blog.naver.com/junganjun?Redirect=Log&logNo=150002925194
http://blog.naver.com/kimseye3?Redirect=Log&logNo=130002357632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DKkYX37PpSdPjgs+cBDLP0f+MFY9pg2M
-참고서적
차용구, 2005,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 푸른역사
지동식, 2004, 로마제국과 기독교, 한국신학연구소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7.06.09
  • 저작시기2007.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410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