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 저자 신웅진
▣ Short Summary
▣ 차례
제1부 ― 인생은 꿈을 따라 흐른다
1 공부라는 놈을 믿고 마음을 줘라
2 꿈도 물을 줘야 자란다
3 결핍이 없이는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배울 수 없다
제2부 ― 인생은 꿈을 따라 흐른다
4 최후의 승리는 결국 선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5 열정만 있다면 부족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
6 계산하지 않은 진심이 큰 행운을 몰고 온다
▣ 저자 신웅진
▣ Short Summary
▣ 차례
제1부 ― 인생은 꿈을 따라 흐른다
1 공부라는 놈을 믿고 마음을 줘라
2 꿈도 물을 줘야 자란다
3 결핍이 없이는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배울 수 없다
제2부 ― 인생은 꿈을 따라 흐른다
4 최후의 승리는 결국 선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5 열정만 있다면 부족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
6 계산하지 않은 진심이 큰 행운을 몰고 온다
본문내용
열정,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직급이 올라가서도 반기문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해외 출장을 다닐 때는 반드시 일정에 무박을 넣어 시간과 숙박비를 아꼈고, 비행기 안에서도 끊임없이 일정과 업무를 점검했다. 2000년 외교통상부 차관 시절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해 일한 것으로 유명하며,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한 2년 10개월 동안에 방문한 국가는 모두 111개국이나 된다. 해외 출장 357일, 외교장관 회담만 374회로, 이것은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으로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픔도 없지 않았다. 1991년 12월 미주 국장으로 판문점에서 열린 북한과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협상을 진행할 때였다. 협상이 한창이던 시점, 보좌관 한 사람이 그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나 바로 협상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했다. 이를 악물었다. 몇 시간 후, 협상이 끝나고 아버지의 빈소가 있는 충주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탔다. ‘쾅’하고 차 문이 닫히는 소리에 비로소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의 부음 소식에도 바로 달려갈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가 그때만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이렇듯 열정적으로 일한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1년 2월 외교부 차관직을 맡고 있을 때, 김대중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정상 회담 결의 공동성명의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 정부가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조약을 지지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는 미국의 전미 미사일 방어체제(NMD)와는 대치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었고, 이에 미국 측에서 우리가 러시아와 손을 잡고 미국에 등을 돌렸다며 우리나라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했고, 그 책임을 지고 반기문이 퇴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4개월이 지났을 무렵, 한승수 외무부 장관으로부터 유엔 총회 의장 비서실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차관에서 국장으로 낮춰가는 자리였지만 반기문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의 뒷말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그때 그가 다른 사람의 눈에 초라해 보이는 것이 두려워 유엔으로 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겨울과 같은 위기와 시련이 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겨울나무가 새 봄을 위해 자신의 잎을 떨구어 내듯이, 앙상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 말고 도전해야 이듬해 봄날 눈부신 푸른 잎을 새로 틔울 수 있는 것이다.
6 계산하지 않은 진심이 큰 행운을 몰고 온다
유엔 총회 의장 비서실장으로 다시 시작한 반기문은 대단한 열정으로 일했다. 차관까지 지낸 덕분에 넓은 인맥으로 영향력이 커 일의 효율성과 추진력이 좋았다. 그는 곧 유엔 사무국에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유엔에서 난제였던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반목도 일일이 각국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여 해결해냈을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등 소외된 지역의 대표와도 자주 만나 수시로 격려했다. 그는 그곳에서도 적이 없는 ‘진짜 외교관’으로 통했으며, 이러한 모든 인연은 나중에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2005년부터 외교가에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우리나라에서 내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정부도 이에 적극적이었다. 정부에서는 30여 년간의 외교관 생활과 유엔 실무경험으로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탄탄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공식 후보로 선정했고, 기자들에게는 5개월간의 엠바고를 요청했다. 언론 공표 전에 신중하게 사전 선거운동을 하자는 치밀한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2006년 2월 14일, 드디어 엠바고가 종료되었고 반기문은 카메라 앞에 서 출사표를 낭독했다. 정부는 북한에도 이를 알렸고, 국회에도 찾아가 지원을 당부하여 초당적인 지지를 약속 받았다. 이후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고, 반기문은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내며 투표권이 있는 15개 국가뿐만 아니라 유엔 소속국 전체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2006년 7월,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을 뽑는 제1차 예비투표에서 반기문은 찬성 13표, 반대 1표, 기권 1표로 인도의 샤시 타루르 후보를 2표 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워낙 엄청난 자리라서 해외는 물론 국내 언론조차 그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그제야 언론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후 새로운 다른 후보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9월에 실시한 제2차, 제3차 투표에서 그는 굳건히 1위를 지켰고, 우리 정부에서는 사무총장 선거에 총력을 쏟기 위해 2007년 예정이었던 비상임이사국 진출까지 연기했다. 마침내 10월 3일, 제4차 투표가 치러졌고, 찬성 14표, 기권 1표, 그리고 상임이사국의 반대가 없는 압도적인 득표 결과가 나왔다. 다른 후보들이 사퇴를 선언하고 반기문 지지를 발표했다. 승리였다. 반기문은 드디어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이다. 그는 감격적인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의 신뢰와 지지에 크게 감사하고 개인적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유엔 개혁문제를 포함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보호에 많은 기여를 해야 하는 역할을 맡아 큰 책임을 느낍니다. 변함 없는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사실 그의 도전은 성공 가능성이 높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크고 작은 인연들이 그의 지원군이 되어 주었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역시 그녀와의 인연에 최선을 다하는 반기문의 태도를 높이 평가하여 부시 대통령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해 주었다.
반기문이라는 인물이 이토록 큰 성취를 이루어 낸 것은 작은 인연을 소중히 하고 상대가 누구든 배려하려 애쓰는 그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계산하지 않고 진심으로 베푼 모든 선한 행동은 세상을 한 바퀴 돌아 자신에게 큰 행운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그는 교과서처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직급이 올라가서도 반기문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해외 출장을 다닐 때는 반드시 일정에 무박을 넣어 시간과 숙박비를 아꼈고, 비행기 안에서도 끊임없이 일정과 업무를 점검했다. 2000년 외교통상부 차관 시절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해 일한 것으로 유명하며,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한 2년 10개월 동안에 방문한 국가는 모두 111개국이나 된다. 해외 출장 357일, 외교장관 회담만 374회로, 이것은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으로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픔도 없지 않았다. 1991년 12월 미주 국장으로 판문점에서 열린 북한과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협상을 진행할 때였다. 협상이 한창이던 시점, 보좌관 한 사람이 그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나 바로 협상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했다. 이를 악물었다. 몇 시간 후, 협상이 끝나고 아버지의 빈소가 있는 충주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탔다. ‘쾅’하고 차 문이 닫히는 소리에 비로소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의 부음 소식에도 바로 달려갈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가 그때만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이렇듯 열정적으로 일한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1년 2월 외교부 차관직을 맡고 있을 때, 김대중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정상 회담 결의 공동성명의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 정부가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조약을 지지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는 미국의 전미 미사일 방어체제(NMD)와는 대치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었고, 이에 미국 측에서 우리가 러시아와 손을 잡고 미국에 등을 돌렸다며 우리나라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했고, 그 책임을 지고 반기문이 퇴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4개월이 지났을 무렵, 한승수 외무부 장관으로부터 유엔 총회 의장 비서실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차관에서 국장으로 낮춰가는 자리였지만 반기문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의 뒷말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그때 그가 다른 사람의 눈에 초라해 보이는 것이 두려워 유엔으로 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겨울과 같은 위기와 시련이 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겨울나무가 새 봄을 위해 자신의 잎을 떨구어 내듯이, 앙상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 말고 도전해야 이듬해 봄날 눈부신 푸른 잎을 새로 틔울 수 있는 것이다.
6 계산하지 않은 진심이 큰 행운을 몰고 온다
유엔 총회 의장 비서실장으로 다시 시작한 반기문은 대단한 열정으로 일했다. 차관까지 지낸 덕분에 넓은 인맥으로 영향력이 커 일의 효율성과 추진력이 좋았다. 그는 곧 유엔 사무국에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유엔에서 난제였던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반목도 일일이 각국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여 해결해냈을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등 소외된 지역의 대표와도 자주 만나 수시로 격려했다. 그는 그곳에서도 적이 없는 ‘진짜 외교관’으로 통했으며, 이러한 모든 인연은 나중에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2005년부터 외교가에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우리나라에서 내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정부도 이에 적극적이었다. 정부에서는 30여 년간의 외교관 생활과 유엔 실무경험으로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탄탄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공식 후보로 선정했고, 기자들에게는 5개월간의 엠바고를 요청했다. 언론 공표 전에 신중하게 사전 선거운동을 하자는 치밀한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2006년 2월 14일, 드디어 엠바고가 종료되었고 반기문은 카메라 앞에 서 출사표를 낭독했다. 정부는 북한에도 이를 알렸고, 국회에도 찾아가 지원을 당부하여 초당적인 지지를 약속 받았다. 이후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고, 반기문은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내며 투표권이 있는 15개 국가뿐만 아니라 유엔 소속국 전체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2006년 7월,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을 뽑는 제1차 예비투표에서 반기문은 찬성 13표, 반대 1표, 기권 1표로 인도의 샤시 타루르 후보를 2표 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워낙 엄청난 자리라서 해외는 물론 국내 언론조차 그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그제야 언론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후 새로운 다른 후보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9월에 실시한 제2차, 제3차 투표에서 그는 굳건히 1위를 지켰고, 우리 정부에서는 사무총장 선거에 총력을 쏟기 위해 2007년 예정이었던 비상임이사국 진출까지 연기했다. 마침내 10월 3일, 제4차 투표가 치러졌고, 찬성 14표, 기권 1표, 그리고 상임이사국의 반대가 없는 압도적인 득표 결과가 나왔다. 다른 후보들이 사퇴를 선언하고 반기문 지지를 발표했다. 승리였다. 반기문은 드디어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이다. 그는 감격적인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의 신뢰와 지지에 크게 감사하고 개인적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유엔 개혁문제를 포함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보호에 많은 기여를 해야 하는 역할을 맡아 큰 책임을 느낍니다. 변함 없는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사실 그의 도전은 성공 가능성이 높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크고 작은 인연들이 그의 지원군이 되어 주었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역시 그녀와의 인연에 최선을 다하는 반기문의 태도를 높이 평가하여 부시 대통령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해 주었다.
반기문이라는 인물이 이토록 큰 성취를 이루어 낸 것은 작은 인연을 소중히 하고 상대가 누구든 배려하려 애쓰는 그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계산하지 않고 진심으로 베푼 모든 선한 행동은 세상을 한 바퀴 돌아 자신에게 큰 행운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그는 교과서처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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