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시작하는 말: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의의
1. 교회의 하느님 인식: 자연적 이성을 통한 하느님 인식
2. 신관의 성격
2.1. 인간을 만나러 오신 하느님
2.2. 하느님 존재의 유일성
2.3. 전능(全能)하신 하느님
2.4. 창조주 하느님: 세 위격의 공동 사업
맺는 말
1. 교회의 하느님 인식: 자연적 이성을 통한 하느님 인식
2. 신관의 성격
2.1. 인간을 만나러 오신 하느님
2.2. 하느님 존재의 유일성
2.3. 전능(全能)하신 하느님
2.4. 창조주 하느님: 세 위격의 공동 사업
맺는 말
본문내용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 성령께서 창조의 유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근원이시라는 것 역시 신앙의 진리임 316항 참조.
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하느님의 모든 계획은 신적 세 위격의 공동 사업이다. 삼위가 오직 하나의 동일한 본성을 지니셨듯이, 그 작용도 유일하고 동일한 작용이다.” 258항 참조.
라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셨음을 믿는다. 그러므로 세계는 어떤 필연성이나, 맹목적 운명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피조물들을 당신의 존재와 지혜와 선하심에 참여시키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세계가 생겨났음을 우리는 믿는다. 295항 참조.
맺는 말
이제껏 가톨릭 교리 교과서에 담긴 가톨릭 신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특히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교리서에 실린 신관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과제를 하면서 교리서 즉 교회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신관을 보면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신학교에서 살고 있는 나는 하느님을 어떻게 느끼고,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잠시 묵상을 해보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다소 유치하게 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나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서너가지의 신관중 하나의 신관을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 할까한다.
태어난 지 7일째 되던 날, 소변을 보지 못해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병원의 실수로 인하여 당시 한국의 의학기술로는 치료를 할 수 없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병원의 의료진들도 나를 포기하라고 부모님을 설득하였고, 특히나 가정 형편이 힘든 집안에서 더 이상 빚을 낼 능력이 없는 상황에, 병에 걸린 나는 물론이고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되어 아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한 고통을 느끼는 부모님의 마음을 치유해준 하느님을 ‘의사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 누구도 꺼져가는 핏덩어리에 불과한 나를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하지만, 부모님과 당시 열심히 교회(개신교)를 다니고 있던 친척분들의 ‘기도’라는 ‘의술’ 덕분에, 나는 오늘도 건강한 몸을 가지고 이곳 신학교에서 살고 있다.
[참 고 문 헌]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신간과 인간관’, 「전망112 1996년, 심상태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 성령께서 창조의 유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근원이시라는 것 역시 신앙의 진리임 316항 참조.
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하느님의 모든 계획은 신적 세 위격의 공동 사업이다. 삼위가 오직 하나의 동일한 본성을 지니셨듯이, 그 작용도 유일하고 동일한 작용이다.” 258항 참조.
라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셨음을 믿는다. 그러므로 세계는 어떤 필연성이나, 맹목적 운명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피조물들을 당신의 존재와 지혜와 선하심에 참여시키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세계가 생겨났음을 우리는 믿는다. 295항 참조.
맺는 말
이제껏 가톨릭 교리 교과서에 담긴 가톨릭 신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특히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교리서에 실린 신관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과제를 하면서 교리서 즉 교회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신관을 보면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신학교에서 살고 있는 나는 하느님을 어떻게 느끼고,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잠시 묵상을 해보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다소 유치하게 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나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서너가지의 신관중 하나의 신관을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 할까한다.
태어난 지 7일째 되던 날, 소변을 보지 못해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병원의 실수로 인하여 당시 한국의 의학기술로는 치료를 할 수 없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병원의 의료진들도 나를 포기하라고 부모님을 설득하였고, 특히나 가정 형편이 힘든 집안에서 더 이상 빚을 낼 능력이 없는 상황에, 병에 걸린 나는 물론이고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되어 아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한 고통을 느끼는 부모님의 마음을 치유해준 하느님을 ‘의사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 누구도 꺼져가는 핏덩어리에 불과한 나를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하지만, 부모님과 당시 열심히 교회(개신교)를 다니고 있던 친척분들의 ‘기도’라는 ‘의술’ 덕분에, 나는 오늘도 건강한 몸을 가지고 이곳 신학교에서 살고 있다.
[참 고 문 헌]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신간과 인간관’, 「전망112 1996년, 심상태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