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일본의조선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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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말...
1. 근대의 조선 인식
(1) 정한론 비판의 마지막 목소리
(2) 조선의 근대화 실패 요인
(3) 조선의 중립화 구상
(4) 한일병합

2. 조선 인식의 왜곡
(1) 강화도 조약 이전의 조선 인식
(2) 왜곡된 조선 인식
(3) 참모본부와 역사 연구
(4) 교과서 속의 조선 사상

맺음말...

본문내용

을 파견하는 것만이 아니라 참모본부는 독자적인 역사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그 중 "황조병사"라는 책을 보면 조선을 일본과 종속관계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임나고고"라는 책도 그 편찬의도가 당면한 조선 침략이라는 과제와 굳게 연결되어 멀리 고대사까지의 연구가 진행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침략 정책을 목적으로 하는 스파이 활동과 침략 정책의 일환인 역사 편찬은 1873년부터 1880년대까지 계속 되었고 이렇게 수집한 사료를 근거로 한 군부의 해석을 학문적인 정밀화의 과정을 거치도록 학자들에게 지시했다. 이런 학자들의 역사 연구는 군부의 침략 정책과는 달리 순수한 학술적 의도뿐이었다고 보기는 매우 힘들다. 이러한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역사 연구에서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더욱 심하게 말하면 학문이라 부를 수도 없다. 너무나 저속하고 비열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이러한 연구와 작업을 사상의 일체화, 상징의 강요 외에 달리 뭐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4) 교과서 속의 조선 사상
이러한 참모본부의 역사 연구, 이에 따른 학계의 동향이 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교과서 왜곡 문제가 일본과 우리사이의 외교적 문제로 등장할 정도인데 순수한 제국주의 국가 그 자체였던 그 당시 일본의 교과서 문제는 정말 뻔할 뻔자 아니었겠는가. 강화도 조약 이전까지는 비록 진구황후의 삼한 정벌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조선 정벌이라 하여 미화하고 있다 해도 설명은 매우 간략한 정도이다. 그러나 이후의 교과서에서는 역사의 왜곡과 과장을 통한 국민적 일체감의 강화 추구가 매우 심해진다. "제국소사"라는 교과서에서는 "일본서기"를 근거로 하여 증거도 없는 신화를 마치 역사적 현실이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고 조선을 스스로 일본화 되기를 원하고 변란이 끊이지 않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적 발상이 교과서에까지 침투하여 일본의 조선 침략 정책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일본에 있어서 정형화 되고 구체화 된 조선사상은 위에서 본 것처럼 그 왜곡이 시정되거나 진지하게 논의될 겨를도 없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정부의 조선 침략 정책과 실행, 참모본부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첩보 활동과 역사 연구 수행, 학계에 의한 한일관계사의 이데올로기 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정밀화, 여기에 청일전쟁의 승리 등이 왜곡상의 확신을 가져왔으며 러일전쟁의 승리로 조선의 식민지화가 이루어짐으로서 조선사상에 대한 회의론적 발상이나 논의가 나올 여지 자체가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맺음말...
이 논문을 읽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분석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조선인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선이 매우 안 좋았던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예전에 식민지 시절에 발행된 지금으로 치면 신문, 잡지 등을 인터넷 상에서 잠깐 봤었는데 특히, 풍자만화에 그려진 조선인들은 돼지나 소 같은 가축으로, 조선은 돼지우리 같은 곳으로 표현되고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그런 곳에 새롭고 멋진 것들을 가져오는 형식의 그림들이 많았다.
그런 일본의 비뚤어진 조선 인식을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이 있다. 물론 단순히 조선 인식의 문제가 아닌 강했던 일본, 아시아를 제패했던 일본에 대한 향수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노스탤지아 적인 그리움이 향하는 곳은 결국 전체주의, 군국주의일지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서양 열강들과 같이 인정받는 하나의 제국이 되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중국도 그 경직된 주자학과 유교의 영향, 그리고 자신감 혹은 오만감 으로 인해 열강들이 나눠 먹는 엄청 큰 피자가 되어버렸고 조선 또한 제국주의의 시대의 주체가 아닌 객체에 불과했음은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섬나라에서 오는 사고의 유연함과 근면, 성실, 단합성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 거기다 베버가 말한 무사도라는 국민적 가치관의 존재가 일본의 빛나는 영광의 시기를 가져왔다는 주장들이 다 맞다 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한용운마저도 훗날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를 돌이켜 서구에 대한 동양의 승리라고 찬미하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옥중에서 대한 독립 만세 같은 글자가 아닌 동양의 평화 같은 글을 남기고 죽었다 하니 최고의 지식인들에게는 단지 일본대 조선의 문제가 아닌 동양 대 서양의 문제가 있었던 건지 어떤 건지는 아직 나의 공부가 짧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인이 가지고 있던 조선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상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이웃에 살면서 이렇게 으르렁 대는 것이 국가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넓히기 위한 수단의 결과라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주입되는 이데올로기나 아이덴티티만큼 무서운 것은 없는 것 같다. 히틀러는 독일인과 유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자신들이 지배했던 식민주의 국가들에게 그 강압성으로 인해 많은 아픔을 주었다. 일본이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듯이 말이다. 이제는 이런 근대 이후 형성된, 특히 국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되어지고 재창조, 재구성 되어진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잘못된 인식과 사상들을 바꿔야 할 때라 생각한다. 그것만이 우리와 일본이 서로를 진지하고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느낀 점은 일본인이 우리를 바라봤던 시선을 우리는 나쁘게 말하고 반드시 고쳐져야 되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시선이라 하면서도 우리 안에는 그러한 배타성과 폭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구가 일본을 바라본 시선,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서 우리를 바라본 일본, 지금 우리는 우리보다 가난한 사람들, 특히 동남아 근로자라든가 화교 같은 사회적 마이너리티에 대해서 일본이 우리를 바라본 그런 인식과 똑같은 논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러한 논리와 인식에 대항해 나가기 위해서는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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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0.20
  • 저작시기200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3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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