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길드와 보부상이 생긴 배경
본론
길드의 개념
보부상의 개념
차이점과공통점
길드와 보부상의 학파
결론
나의생각
길드와 보부상이 생긴 배경
본론
길드의 개념
보부상의 개념
차이점과공통점
길드와 보부상의 학파
결론
나의생각
본문내용
며, 그 당시 국민국가의 정책적 배려가 아직은 전면에 나타나지 않았기에 각 도시의 내부에서 상인이나 수공업자가 스스로의 가부장적 가정경영을 물심양면에서 지킬 목적으로, 우애적 상호부조단체를 자발적으로 결성했다. 이에 비해 조선의 보부상은 서구의 보부상 길드의 유래와 다르게 형성되었다.
보부상은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과 보호아래 이루어져 권력과 연관을 가지며 특권적 상인으로 성장되었다.
특히 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보부상단에 크게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이유는 보부상이 개항 후 청나라와 일본 등 외국상인의 침투로 극심한 난국에 처해 있었고, 보부상은 개항 당시 상인단체 가운데서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단체이므로 정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⑧길드와 보부상의 한계는 길드는 너무 독점주의를 내세워서이고, 보부상들의 한계는 그들이 연구만 했지 실행은 하지 않는 발전이 없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4. 길드와 보부상의 학파
보부상과 길드가 어느 학파인지 나와 있는 자료는 못 찾아서 나의 생각으로 학파를 분류해 본다.
우선 길드에서 제일 많이 인용되는 상인길드로 학파를 분류한다면 고전학파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고전학파와 길드의 시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성격이 같기 때문인데 길드는 중세도시는 지방간의 교역에 자극 받아 흥하여, 각 도시의 대외적 교역 독점을 위한 만들어 졌다고 위에서 명시한 바 있다.
고전학파는 중세시대로 중세시대는 봉건사회라 부른다. 봉건사회는 봉건제도 아래, 영주와 농노를 기본 계층으로 하여 지배하고 지배받는 관계에 있던 사회이다.
봉건제도의 사회. 경제사적 개념 규정은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는 생산 양식에 중점을 두고 봉건제를 인식하고, 노예제 사회가 붕괴한 이후와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의 시기에 존재했던 일정한 사회 경제 체제를 봉건제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중세도시는 스스로 상공업을 영위하는 상인·수공업자의 생산자도시였고 북서부유럽 여러 도시의 경우는 시민적 결합의 원리가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한 서약단체였으며, 자치와 자위의 공동체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 이 때 상인길드가 형성이 되었는데 상인길드는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의 봉건사회의 바탕을 두고 성립된 중세도시에 등장한 단체라고 볼 수 있으며, 도시를 중심으로 생긴 조직은 위에서 나열한 것과 같이 국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보부상은 시기로 보아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전통유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유학의 한 분파의 학문 및 사상으로 조선 후기인 실학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전문적 순력행상 집단인 보부상단이 형성된 것은 조선 전기였으나, 그 거래 규모가 매우 미미했다. 이는 이들 보부상단이 판매할 수 있는 물량이 제한적이었으며, 활동할 수 있는 향시 역시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으로 다종, 다량의 물품이 향시를 통해 활발히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이들 역시 전성기를 맞이한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농본주의 국가였다. 조선시대에는 중농 억상 정책이라고 하여 상업을 억제 하였다. 이는 사-농-공-상순으로 매긴 순 보면 알 수 있다. 또 조선시대의 사상적 배경은 바로 성리학이다. 하지만 18세가 중엽에 들어가면서 실학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성리학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실학파가 생긴 이유인데 이 실학은 조선왕조가 직면하고 있었던 통치질서의 화해현상으로 조선왕조의 지배원리였던 성리학이 그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조선후기의 신분변동과 서학의 전래 그리고 조선후기의 사회의 경제적 변화와 발전으로 인해 태동된다. 실학자들은 상업과 공업도 한 나라의 중요한 경제분야임을 강조하고 상업, 공업의 균형 있는 경제 발전책을 시도하여야 국가가 부강해진다고 주장하였다.
위에서 나열했듯이 보부상은 국가의 간섭아래에 활동을 했고 국가의 개입으로 더 이상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실학파와 같은 시가라 할 수 있겠다. 이유는 실학 역시 연구만 하고 활동은 하지 않아 망했기 때문이다.
-그들 문화의 특징
서유럽의 길드 - 길드라는 말은 퍽 뜻이 넓어서 그 중에서 공동제사 공동주연 상호부조에 의해서 맺어지면서 중세 초기에 일어났다가 없어진 고(古)길드나 나중에는 정치길드 등도 포함되지만, 중세도시경제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뜻을 지니게 된 것은 상인들에 의해서 결성된 상인길드 및 수공업자들의 동직 길드(craft guild)이다.
동양의 보부상 - 사고무친으로 의탁할 곳이 없기 때문에 병구사장, 동병상린, 환난상구를 위하여 단결했다.
부상단은 지역에 따라 약간의 특색은 있으나, 다같이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하여 보부상 상호 간의 선두다툼(경쟁)과 상호간의 화합을 위한 병구사장, 환난상구(화합)를 생활신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경쟁과 화합의 원리를 간직하기 위하여 엄격한 규율(장문법)로 다스려왔다.
이같은 원리는 보부상들이 마을 공동체에서 터득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은 마을 공동체를 이탈하여 보부상이 되였고, 마을 공동체의 원리를 보부상 조직에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마을 공동체의 경쟁과 화합의 원리를 알아본다.
레포트를 쓴 후 나의 생각
-길드에 대해서는 지난 학기의 경제사에서도 들어본 바 있었지만 보부상에 대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 듣는 것이어서 나에게는 생소한 과제였다. 과제를 하기 위해 많은 사이트들을 돌아 다녀보고 백과사전도 참고해 봤는데 자료가 거의 없어서 레포트를 하는 것이 좀 힘들었다.
게다가 무역학과의 TI사업단에서 출전하는 마케팅대회가 있어서 시험 기간에는 몇 일을 마케팅 대회의 논문을 작성하는 데에만 열중해서 레포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여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를 했고 후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교수님!!! 좀더 깊은 생각으로 레포트를 제출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참고 문헌*
브리테니커 백과사전
동아 대 백과사전
인터넷 사이트: http://www.naver.com
http://www.empas.com
http://www.mutiro.co.kr
보부상은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과 보호아래 이루어져 권력과 연관을 가지며 특권적 상인으로 성장되었다.
특히 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보부상단에 크게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이유는 보부상이 개항 후 청나라와 일본 등 외국상인의 침투로 극심한 난국에 처해 있었고, 보부상은 개항 당시 상인단체 가운데서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단체이므로 정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⑧길드와 보부상의 한계는 길드는 너무 독점주의를 내세워서이고, 보부상들의 한계는 그들이 연구만 했지 실행은 하지 않는 발전이 없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4. 길드와 보부상의 학파
보부상과 길드가 어느 학파인지 나와 있는 자료는 못 찾아서 나의 생각으로 학파를 분류해 본다.
우선 길드에서 제일 많이 인용되는 상인길드로 학파를 분류한다면 고전학파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고전학파와 길드의 시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성격이 같기 때문인데 길드는 중세도시는 지방간의 교역에 자극 받아 흥하여, 각 도시의 대외적 교역 독점을 위한 만들어 졌다고 위에서 명시한 바 있다.
고전학파는 중세시대로 중세시대는 봉건사회라 부른다. 봉건사회는 봉건제도 아래, 영주와 농노를 기본 계층으로 하여 지배하고 지배받는 관계에 있던 사회이다.
봉건제도의 사회. 경제사적 개념 규정은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는 생산 양식에 중점을 두고 봉건제를 인식하고, 노예제 사회가 붕괴한 이후와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의 시기에 존재했던 일정한 사회 경제 체제를 봉건제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중세도시는 스스로 상공업을 영위하는 상인·수공업자의 생산자도시였고 북서부유럽 여러 도시의 경우는 시민적 결합의 원리가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한 서약단체였으며, 자치와 자위의 공동체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 이 때 상인길드가 형성이 되었는데 상인길드는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의 봉건사회의 바탕을 두고 성립된 중세도시에 등장한 단체라고 볼 수 있으며, 도시를 중심으로 생긴 조직은 위에서 나열한 것과 같이 국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보부상은 시기로 보아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전통유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유학의 한 분파의 학문 및 사상으로 조선 후기인 실학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전문적 순력행상 집단인 보부상단이 형성된 것은 조선 전기였으나, 그 거래 규모가 매우 미미했다. 이는 이들 보부상단이 판매할 수 있는 물량이 제한적이었으며, 활동할 수 있는 향시 역시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으로 다종, 다량의 물품이 향시를 통해 활발히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이들 역시 전성기를 맞이한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농본주의 국가였다. 조선시대에는 중농 억상 정책이라고 하여 상업을 억제 하였다. 이는 사-농-공-상순으로 매긴 순 보면 알 수 있다. 또 조선시대의 사상적 배경은 바로 성리학이다. 하지만 18세가 중엽에 들어가면서 실학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성리학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실학파가 생긴 이유인데 이 실학은 조선왕조가 직면하고 있었던 통치질서의 화해현상으로 조선왕조의 지배원리였던 성리학이 그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조선후기의 신분변동과 서학의 전래 그리고 조선후기의 사회의 경제적 변화와 발전으로 인해 태동된다. 실학자들은 상업과 공업도 한 나라의 중요한 경제분야임을 강조하고 상업, 공업의 균형 있는 경제 발전책을 시도하여야 국가가 부강해진다고 주장하였다.
위에서 나열했듯이 보부상은 국가의 간섭아래에 활동을 했고 국가의 개입으로 더 이상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실학파와 같은 시가라 할 수 있겠다. 이유는 실학 역시 연구만 하고 활동은 하지 않아 망했기 때문이다.
-그들 문화의 특징
서유럽의 길드 - 길드라는 말은 퍽 뜻이 넓어서 그 중에서 공동제사 공동주연 상호부조에 의해서 맺어지면서 중세 초기에 일어났다가 없어진 고(古)길드나 나중에는 정치길드 등도 포함되지만, 중세도시경제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뜻을 지니게 된 것은 상인들에 의해서 결성된 상인길드 및 수공업자들의 동직 길드(craft guild)이다.
동양의 보부상 - 사고무친으로 의탁할 곳이 없기 때문에 병구사장, 동병상린, 환난상구를 위하여 단결했다.
부상단은 지역에 따라 약간의 특색은 있으나, 다같이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하여 보부상 상호 간의 선두다툼(경쟁)과 상호간의 화합을 위한 병구사장, 환난상구(화합)를 생활신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경쟁과 화합의 원리를 간직하기 위하여 엄격한 규율(장문법)로 다스려왔다.
이같은 원리는 보부상들이 마을 공동체에서 터득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은 마을 공동체를 이탈하여 보부상이 되였고, 마을 공동체의 원리를 보부상 조직에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마을 공동체의 경쟁과 화합의 원리를 알아본다.
레포트를 쓴 후 나의 생각
-길드에 대해서는 지난 학기의 경제사에서도 들어본 바 있었지만 보부상에 대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 듣는 것이어서 나에게는 생소한 과제였다. 과제를 하기 위해 많은 사이트들을 돌아 다녀보고 백과사전도 참고해 봤는데 자료가 거의 없어서 레포트를 하는 것이 좀 힘들었다.
게다가 무역학과의 TI사업단에서 출전하는 마케팅대회가 있어서 시험 기간에는 몇 일을 마케팅 대회의 논문을 작성하는 데에만 열중해서 레포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여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를 했고 후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교수님!!! 좀더 깊은 생각으로 레포트를 제출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참고 문헌*
브리테니커 백과사전
동아 대 백과사전
인터넷 사이트: http://www.naver.com
http://www.empas.com
http://www.mutir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