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goodman brown 원문 및 해석 그리고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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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독교 신자인 클로이즈 아주머니는 자기 집 격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른 아침 햇살에 몸을 맡긴 채 서서 아침 우유 한 병을 가져온 어린 소녀에게 교리 문답을 하고 있었다. 향사 브라운은 악마의 손아귀에서 어린 아이를 빼앗아 오듯 그 아이를 잡아채서 데리고 왔다. 예배당의 모퉁이를 돌자 그는 연분홍빛 리본을 한 페이스의 머리를 흘낏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다가 남편을 보고는 말할 수 없이 즐거운 표정이 되어 온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키스라도 할 것처럼 거리로 뛰어나왔다. 그러나 향사 브라운은 엄숙하고도 슬픈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고는 아침 인사말도 건네지 않은 채 그녀를 지나쳤다.
향사 브라운은 숲 속에서 잠이 든 채 마녀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내용의 거친 꿈에 시달렸던 것일까?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젊은 향사 브라운에게 그 꿈은 무언가 불길한 징조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꿈에 시달리던 그 밤이 지나고 난 다음 그는 비록 절망에 빠진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어도 어딘가 엄숙하고 슬프면서도 침울한 생각과 의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안식일이 되어 신도들이 성스러운 찬송가를 부를 때 그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죄악을 찬양하는 노래 소리가 그의 귀에 밀려들어와 그 모든 축복의 가락을 묻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이 성경책에 손을 얹은 채 설교단에서 온 힘을 다하여 열렬한 웅변조로 우리 종교의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설교를 할 때, 성자와 같은 삶과 슬리에 찬 죽음에 대해 설교를 할 때, 그리고 미래에 누리게 될 천국의 기쁨이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불행에 관해 설교를 할 때, 향사 브라운의 얼굴은 창백해져만 갔다. 그느 이 백발의 신성 모독자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예배당의 천장이 굉음을 내며 내려앉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느꼈떤 것이다. 때때로 한밤중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몸을 움츠러 페이스의 품 안을 피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이 모여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는 아침녘이나 저녁때가 되면, 그는 얼굴을 찡그리거나 혼자말로 투덜대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세상을 살다가 백발의 시신이 되어 묘지로 운구되었으며, 이제 할머니가 된 페이스, 그리고 그의 자식들과 손자들, 또한 적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대단한 장례 행렬을 이룬 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묘비에 그 어떤 희망적인 비문도 새겨 넣지 않았는데, 그가 아주 침울한 가운데 임종을 맞이 했기 때문이다.
작품 해설- 환상적으로 드러낸 원죄의식 혹은 인간 내면의 악마성 이른바 '전기적 오류'가 될지 모르지만, 흔히 [젊은 향사 브라운]은 나 다니엘 호손의 어두은 가문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조부는 세일럼의 마녀재판 때 무자비한 선고로 악명 높은 윌리엄 호손 판사였다.
하나님을 우러르고 악마를 쳐부순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고 박해한 조상들의 반이성적 행위는 실제로 호손의 정신에 강하게 원죄의식을 심어부었던 듯하다. 그의 외롭고 자폐적인 일생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스스로 가문의 이름을 바꾼 일에 잘 드러난다.
호손은 원래 Hathorne이었던 성의 철자에 w를 덧붙여 Hawthorne으로 바꾸어 썼다.
이 작품에서 젊은 향사 브라운이 그날 밤 환상적으로 목도하고 체험한 것은 인간의 내면에 깃들인 악마성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세상은 거룩한과 사악함, 천사와 악마가 정연하게 나뉘어져 있지만 밤의 어둠과 신비적 공간에서 연출된 것은 그것들의 섬뜩한 뒤얽힘이었다. 그리고 그같은 진실에 대한 그의 반응이 짧고 삭막한 후일담의 형태로 얘기를 맺는다.
평소 마을에서 그들의 선을 향한 의지와 용기로 이름높던 이들이나 경건한 신의 사람으로
불리우던 이들이 진작부터 악마의 사람으로 분류되어 저주받고 기피되던 이들과 실은 한통속이 되어 세상을 이끌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틀림없이 젊은 브라운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존경하는 조상들이면 믿고 사랑하던 아내까지도 예외가 아니었음으 확인하게 되면서 그 충격은 낙담과 상심으로 그를 미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땅 위에 선이란 것은 없다. 죄악이 곧 선이 아닌가. 자, 악마여, 이 세상은 바로 그대의 것이다."란 그의 절규는 바로 그같은 낙담과 상심의 표현이다.
그런 브라운에게 날이 밝은 뒤의 세계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세계는 다시 둘로 나뉘어져 겉으로는 신을 믿고 선을 구현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는 이미 그 뒤어 감추어진 어두운 진실을 목도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이후 그가 엄숙하고도 슬픈듯한 표정으로 침울한 생각에 젖어있는 사나이가 되어버렸고, 세월이 흐른 뒤 우울한 임종을 맞게 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드른 이 작품에서 작가가 자신의 원죄의식을 세상 모두에게로 확대함으로써 가문의 어두운 역사가 주는 부담을 줄리려 한 게 아닌가 하는 혐의를 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찌하랴, 세상의 참모습은 브라운이 그날 밤 본 것과 더 가까운 듯 하니 싫더라도 우리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악마를 아무도 부인할 수는 없으니. 여기서 젊은 브라운이 그날 밤 보았던 게 실제로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의 설명처럼 어떤 악마적이고 신비한 힘에 의한 연출이든, 작가의 어두운 열정이 빚어낸 일련의 가상이든, 또는 우연찮게 꾸게 된 악몽이든 인간의 내면에 깃들인 악마성을 드러내보이는 기법으로서의 환상과 기상은 실로 빛나는 데가 있다. 그것이 작가의 고전적인 문체와 어울려 오히려 주제를 압도하는 느낌마저 준다.
나다니엘 호손은 미국 단편의 혹립자이자 미국이 낳은 최초의 세계적인 작가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12년간이나 독서와 명상에 잠겨 보낸 세월이 그르 큰 작가로 기르는데 밑거름이 된듯하다. 우리에게는 장편 [주홍글씨 (정확한 번역은 '진홍글자'여야 한다는 말도 있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이 책의 첫머리에 놓임으로써 [성장과 눈뜸]편에서 그의 단편 [큰바위 얼굴]을 싣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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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7.11.01
  • 저작시기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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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3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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