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문제의 접근 : 근대화
♦청의 개항 과정과 양무운동
1. 청의 개항 과정과 내부의 위기
1 차 아편전쟁의 발발
아편 문제에 대한 청조의 대응과 인식
아편전쟁의 결과, 1842년의 난징 조약.
영국의 “좌절된” 이익과 대처-제 2차 아편 전쟁-의 결과 : 천진(天津) 조약
환약(換約)전쟁과 북경(北京) 조약의 성립
내부의 위기
2. 양무운동의 배경
청일전쟁의 성패
1. 개항과 개혁
청과 일본의 개항과정
개혁과 반발
일본의 前近代的 국가 신도와 近代的 교육정책의 결합
皇帝와 天皇
2. 청일 전쟁의 성패
개항 이전 일본의 사회 경제적 변화
메이지 유신 이 후 일본의 산업화
메이지 유신 이 후 재벌 계층의 형성
메이지 유신 이후 중간층의 형성
근대적 산업화의 차이점, 양무운동의 한계
개혁 주체 세력들의 차이점
청일 전쟁 발발 이전의 변화들
결론
♦청의 개항 과정과 양무운동
1. 청의 개항 과정과 내부의 위기
1 차 아편전쟁의 발발
아편 문제에 대한 청조의 대응과 인식
아편전쟁의 결과, 1842년의 난징 조약.
영국의 “좌절된” 이익과 대처-제 2차 아편 전쟁-의 결과 : 천진(天津) 조약
환약(換約)전쟁과 북경(北京) 조약의 성립
내부의 위기
2. 양무운동의 배경
청일전쟁의 성패
1. 개항과 개혁
청과 일본의 개항과정
개혁과 반발
일본의 前近代的 국가 신도와 近代的 교육정책의 결합
皇帝와 天皇
2. 청일 전쟁의 성패
개항 이전 일본의 사회 경제적 변화
메이지 유신 이 후 일본의 산업화
메이지 유신 이 후 재벌 계층의 형성
메이지 유신 이후 중간층의 형성
근대적 산업화의 차이점, 양무운동의 한계
개혁 주체 세력들의 차이점
청일 전쟁 발발 이전의 변화들
결론
본문내용
가 패배한 원인을 단기적인 측면에서 서태후와 리홍장의 부덕함으로만 돌리는 견해도 있지만, 이러한 견해는 청조와 메이지 정부의 근대화 추진 방향과 깊이, 정치 체제, 사회 경제적 변화 등의 차이를 모두 간과한 설득력이 낮은 분석이다. 청 일 전쟁의 발발 이전 해군경비가 서태후의 요구로 이화원(和園)의 건축비로 전용되어 이것이 일본에게 패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사실은 매우 부차적인 것이었다.
청 불 전쟁의 패배 이 후 청은 조선이라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둘러싸고 일본과 마찰을 일으켰다. 일본은 1876년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프랑스가 베트남을 침략하는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여 청의 종주권을 부인하면서 강제로 문호를 개방시켰다. 辛勝夏, op. cit., p.341.
이에 청은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일본은 청이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 조선의 개화파를 지지하여 갑신정변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청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가자 청과 일본의 대립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에 리홍장은 1885년 일본과 「천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양국이 조선에서 철병하고 군대를 파견할 때는 사전에 통보하는 것을 규정하였다. 이것은 훗날 청일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청의 알력이 심해지자 일본은 대대적인 군비확장에 들어갔다. 1893년에 특히 해군은 군함이 28척, 어뢰정이 24척으로 총 톤 수 가 6만 톤에 달하였다. 청일전쟁 직전에 일본의 군비는 이미 북양함대를 능가하고 있었다. Ibid., p.343.
청조 또한 1880년대 후반부터 국방비를 늘리며 해군 함대를 건조하고, 독일로부터 군함들을 구입했다. 단기적으로 증가한 국방비로 청조는 어느 정도의 해군력을 갖출 수 있었으며 이것은 당시 동아시아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한 규모였다. 그러나 당시 청이 지니고 있었던 해군의 군사력은 이미 일본에 뒤져 있었을 뿐 아니라 청일전쟁 직전 서태후는 군함 수입을 금지시켜버렸다.
한편 조선에서는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여 일본과 청은 동시에 조선으로 출병하였다. 이 때 일본내각은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해외팽창으로 돌리고자 1894년 6월 23일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청과의 전쟁을 결정하였다. 결과는 청의 완전한 패배였다.
결론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양국 간의 근대화가 왜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는가를 논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과 일본의 개항 과정과 근대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문제의 핵심으로 한걸음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양국 모두 동아시아에서의 쇄국체제를 고수했지만, 그 내부에서 일어난 사회 경제적 변화는 매우 다르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20c 초 독일의 사회학자 칼-뷔허는 일본의 근대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가내경제와 봉건제, 그리고 국민경제로 이어지는 이른바 서구의 발전단계 모형에서 찾으려했다. 칼-뷔허의 해석은 일본의 대표적인 계몽주의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는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의 핵심이 되는 여러 이론들을 연구했다.
사실 근대화의 성패에 대해 다루고자 할 때 개항 이전의 사회 경제적 변화에 주목하여 그것을 개항 이 후 일본에서 나타난 일원적인 국가체제로 연결시키는 작업은 매우 무난한 정설로 굳어져왔다. 이것에 일조한 일본의 뛰어난 인문학자들 중 상당수는 이러한 논리를 동아시아를 대변하는 일본, 그리고 아시아와의 차별성을 갖는 일본으로 승화시켜 일본만이 서구와 대비될 수 있는 아시아의 우두머리로서 지칭해왔다. 그러나 비록 국가경제의 단계적 발전론과 일본 근대화에 대한 분석의 틀이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그것 자체로서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본인은 일본 근대화의 특징을 청과의 비교를 통해 입증해 보려고 했다. 여기서 각각의 요소들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었으며, 어떤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그로 인해 사회 경제적 지표들이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논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비록 여기서 언급한 각각의 요소들의 변이들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유발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각각의 요소들이 만들어 낸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에서 유발된 양국의 근대화의 결과는 1894년 명확히 나타났다.
참고문헌
주요 참고문헌
辛勝夏 지음,「근대중국 : 개혁과 혁명 上」, 대명출판사, 2001.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현대 중국을 찾아서 1」,이산, 1997.
박경희 지음,「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 일빛, 1998.
구태훈, 조명철 공저,「일본근세근현대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1.
피터 두으스 지음, 김용덕 옮김,「日本近代史」, 지식산업사, 1983.
황런위 지음, 이재정 옮김,「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이산, 2001.
보조 참고문헌
김상중 지음, 이경덕, 임성모 옮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부제 : 근대문화비판」, 이산, 1997.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에서는 근대적인 교육 정책이 국가의 각 구성원에게 유발시키는 “생체권력” 부분을 참조하였다. 그리고 미쉘 푸코와 E.W.Side의 분석의 틀에서 시작하여 일본의 식민 정책학을 비판하고 있는 《제3장 일본의 식민정책학과 오리엔탈리즘의 3. 식민정책학의 심상지리와 그 이론》은 본인에게 근대 국가에서의 의무 교육과 훈육 방식이 일본의 팽창과정과 접합된다고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해주었다.
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염 옮김, 「자본의 시대」, 한길사, 1998.
일본과 청의 개항과정은 서양과의 접촉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불평등 조약으로 촉발된 근대적인 조약 체제, 즉 팽창하는 서구적 국제질서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자본의 시대에서의 홉스봄의 논지인 19c에 구체화되고 있던 부르주아사회의 형성과 그것이 제국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청조와 영국이 근본적으로 무역체제의 문제로 갈등이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구체화시킬 수 있다.
청 불 전쟁의 패배 이 후 청은 조선이라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둘러싸고 일본과 마찰을 일으켰다. 일본은 1876년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프랑스가 베트남을 침략하는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여 청의 종주권을 부인하면서 강제로 문호를 개방시켰다. 辛勝夏, op. cit., p.341.
이에 청은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일본은 청이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 조선의 개화파를 지지하여 갑신정변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청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가자 청과 일본의 대립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에 리홍장은 1885년 일본과 「천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양국이 조선에서 철병하고 군대를 파견할 때는 사전에 통보하는 것을 규정하였다. 이것은 훗날 청일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청의 알력이 심해지자 일본은 대대적인 군비확장에 들어갔다. 1893년에 특히 해군은 군함이 28척, 어뢰정이 24척으로 총 톤 수 가 6만 톤에 달하였다. 청일전쟁 직전에 일본의 군비는 이미 북양함대를 능가하고 있었다. Ibid., p.343.
청조 또한 1880년대 후반부터 국방비를 늘리며 해군 함대를 건조하고, 독일로부터 군함들을 구입했다. 단기적으로 증가한 국방비로 청조는 어느 정도의 해군력을 갖출 수 있었으며 이것은 당시 동아시아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한 규모였다. 그러나 당시 청이 지니고 있었던 해군의 군사력은 이미 일본에 뒤져 있었을 뿐 아니라 청일전쟁 직전 서태후는 군함 수입을 금지시켜버렸다.
한편 조선에서는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여 일본과 청은 동시에 조선으로 출병하였다. 이 때 일본내각은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해외팽창으로 돌리고자 1894년 6월 23일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청과의 전쟁을 결정하였다. 결과는 청의 완전한 패배였다.
결론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양국 간의 근대화가 왜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는가를 논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과 일본의 개항 과정과 근대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문제의 핵심으로 한걸음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양국 모두 동아시아에서의 쇄국체제를 고수했지만, 그 내부에서 일어난 사회 경제적 변화는 매우 다르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20c 초 독일의 사회학자 칼-뷔허는 일본의 근대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가내경제와 봉건제, 그리고 국민경제로 이어지는 이른바 서구의 발전단계 모형에서 찾으려했다. 칼-뷔허의 해석은 일본의 대표적인 계몽주의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는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의 핵심이 되는 여러 이론들을 연구했다.
사실 근대화의 성패에 대해 다루고자 할 때 개항 이전의 사회 경제적 변화에 주목하여 그것을 개항 이 후 일본에서 나타난 일원적인 국가체제로 연결시키는 작업은 매우 무난한 정설로 굳어져왔다. 이것에 일조한 일본의 뛰어난 인문학자들 중 상당수는 이러한 논리를 동아시아를 대변하는 일본, 그리고 아시아와의 차별성을 갖는 일본으로 승화시켜 일본만이 서구와 대비될 수 있는 아시아의 우두머리로서 지칭해왔다. 그러나 비록 국가경제의 단계적 발전론과 일본 근대화에 대한 분석의 틀이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그것 자체로서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본인은 일본 근대화의 특징을 청과의 비교를 통해 입증해 보려고 했다. 여기서 각각의 요소들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었으며, 어떤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그로 인해 사회 경제적 지표들이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논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비록 여기서 언급한 각각의 요소들의 변이들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유발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각각의 요소들이 만들어 낸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에서 유발된 양국의 근대화의 결과는 1894년 명확히 나타났다.
참고문헌
주요 참고문헌
辛勝夏 지음,「근대중국 : 개혁과 혁명 上」, 대명출판사, 2001.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현대 중국을 찾아서 1」,이산, 1997.
박경희 지음,「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 일빛, 1998.
구태훈, 조명철 공저,「일본근세근현대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1.
피터 두으스 지음, 김용덕 옮김,「日本近代史」, 지식산업사, 1983.
황런위 지음, 이재정 옮김,「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이산, 2001.
보조 참고문헌
김상중 지음, 이경덕, 임성모 옮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부제 : 근대문화비판」, 이산, 1997.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에서는 근대적인 교육 정책이 국가의 각 구성원에게 유발시키는 “생체권력” 부분을 참조하였다. 그리고 미쉘 푸코와 E.W.Side의 분석의 틀에서 시작하여 일본의 식민 정책학을 비판하고 있는 《제3장 일본의 식민정책학과 오리엔탈리즘의 3. 식민정책학의 심상지리와 그 이론》은 본인에게 근대 국가에서의 의무 교육과 훈육 방식이 일본의 팽창과정과 접합된다고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해주었다.
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염 옮김, 「자본의 시대」, 한길사, 1998.
일본과 청의 개항과정은 서양과의 접촉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불평등 조약으로 촉발된 근대적인 조약 체제, 즉 팽창하는 서구적 국제질서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자본의 시대에서의 홉스봄의 논지인 19c에 구체화되고 있던 부르주아사회의 형성과 그것이 제국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청조와 영국이 근본적으로 무역체제의 문제로 갈등이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구체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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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론][일본내각의 조직과 기능 그리고 수상의 리더십과 내각조직 개편으로 본 일본정치]
일본의 사회복지 발달사(일본 사회복지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