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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Ⅱ.대한민국의 발전과 행정 환경 변화
1.이승만 대통령 시대(제1 공화국:1948.7.20~1960.5.3)
2.윤보선 대통령 시대(제2 공화국:1960.8.12~1962.3.23)
3.박정희 대통령 시대(제3,4 공화국:1963.12.18~1979.10.26)
1) 정치
①혁명 정부 시절
②3공화국 대통령 시절
③유신 대통령 시절
2) 경제
3) 사회.문화
4)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4.전두환 대통령 시대(제5 공화국:1980.10~1988.2)
1) 정치
2) 경제
3) 사회, 문화
4)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5.노태우 대통령 시대(제6 공화국:19882.25~1993.2.24)
1) 정치
2) 경제
3) 사회, 문화
4)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6.김영삼 대통령 시대(문민정부:1993.2.25~1998.2.24)
1) 정치
2) 경제
3) 사회, 문화
4)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7.김대중 대통령 시대(국민의 정부:1998.2.25∼2003.2.24)
1) 정치
2) 경제
①금융 구조 조정
②기업 구조조정
③노동시장 개혁
3) 사회, 문화
①사회 보험의 확대
②연금 제도의 개혁
③의료 보험의 통합
④국민기초 생활 보장 제도의 실시
4) 대북정책
5)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별첨 자료>참여정부의 정부 조직도
Ⅲ. 대한민국의 대통령
1. 이승만
2. 윤보선
3. 박정희
4. 최규하
5. 전두환
6. 노태우
7. 김영삼
8. 김대중
Ⅳ. 결론
Ⅱ.대한민국의 발전과 행정 환경 변화
1.이승만 대통령 시대(제1 공화국:1948.7.20~1960.5.3)
2.윤보선 대통령 시대(제2 공화국:1960.8.12~1962.3.23)
3.박정희 대통령 시대(제3,4 공화국:1963.12.18~1979.10.26)
1) 정치
①혁명 정부 시절
②3공화국 대통령 시절
③유신 대통령 시절
2) 경제
3) 사회.문화
4)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4.전두환 대통령 시대(제5 공화국:1980.10~1988.2)
1) 정치
2) 경제
3) 사회, 문화
4)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5.노태우 대통령 시대(제6 공화국:19882.25~1993.2.24)
1) 정치
2) 경제
3) 사회, 문화
4)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6.김영삼 대통령 시대(문민정부:1993.2.25~1998.2.24)
1) 정치
2) 경제
3) 사회, 문화
4)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7.김대중 대통령 시대(국민의 정부:1998.2.25∼2003.2.24)
1) 정치
2) 경제
①금융 구조 조정
②기업 구조조정
③노동시장 개혁
3) 사회, 문화
①사회 보험의 확대
②연금 제도의 개혁
③의료 보험의 통합
④국민기초 생활 보장 제도의 실시
4) 대북정책
5) 중앙 부처 조직의 변화
<별첨 자료>참여정부의 정부 조직도
Ⅲ. 대한민국의 대통령
1. 이승만
2. 윤보선
3. 박정희
4. 최규하
5. 전두환
6. 노태우
7. 김영삼
8. 김대중
Ⅳ. 결론
본문내용
이래 1960~1970년대의 고도 성장과 1980년대의 조정기를 거치는 동안 지속적인 팽창을 거듭하였다. 한국의 정부조직은 지난 40여 년간 지속적으로 팽창해 왔으며, 주기적 기구 개편을 통해 늘어나는 행정 수요에 그때그때 부분적ㆍ대증적으로만 조정되어 온 결과 부처간 기능의 중첩을 초래하는 등 구조적 갈등 요소를 안고 있었다. 또한 1960년대에 형성된 개발 행정 체제의 기본 골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어, 이러한 비효율적 조직구조로는 날로 치열해지는 무한 경쟁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1990년대 들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민간부문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민간 부분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대폭 줄요 나가고, 불필효하거나 과다한 정부 기능을 민간과 지방에 과감히 이양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광범위하게 제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인식을 토대로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ㆍ지방화ㆍ정보화ㆍ통일 시대에 대비한 ‘작고 강력한 정부’의 구축을 목표로 여러 차례에 걸친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추진하였다. 김 대통령은 출범 이후 4차에 걸친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출범 당시의 2원 16부 15청 2외국에서 2원 14부 5처 14청 1외국으로 2부 1처 1청을 폐지하고, 공무원 1,400여 명을 감축하는 획기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김 대통령은 출범 직후인 1993년 3월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를 통합하여 문화체육부로 개편하고,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통합하여 상공자원부로 개편하는 제1차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김 대통령은 취임 준비위원회를 통해 각계에서 제시된 여러 행정개혁안을 다각적으로 검토, 출범과 동시에 행정조직의 축소ㆍ통합을 추진하였다. 1차 조직 개편은 정부의 ‘작고 강력한 정부’ 구현을 위한 개혁의지를 조기에 가시화 한다는 차원에서, 행정 환경의 변화로 존치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한 체육청소년부와 동력자원부를 우선적으로 통ㆍ폐합하였다. 이와 같은 1차 조직 개편 결과 전체적으로 2개부가 폐지되고 3실, 7담당관, 12과의 하부 조직이 감축되었으며, 총 139명의 공무원 정원이 감축되었다.
김 대통령은 학계와 기업계 등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추가적ㆍ전면적 정부조직개편을 준비하기 위해, 1993년 4월 행정쇄신위원회를 발족하였다. 행정쇄신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 작업 추진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부 개편 대상 부처를 중심으로 동요와 반발이 야기되고,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가 전격적으로 실시되어 경제 사회가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자, 김 대통령은 추가적인 조직 개편 작업을 보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1994년 11월까지는 부처 통폐합 등 대규모 조직 개편이전이 정부적으로 추진되기보다는 각 부처가 자체적으로 내부 개편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는 소규모의 2차 조직 개편이 추진되었다.
2차 개편을 추진한 이유는 특히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 완화가 행정쇄신위원회 및 경제 행정규제완화위원회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차 개편에서는 규제 관련 조직을 감축하고 그에 따라 불필요해진 인력을 축소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2차 개편을 통해 경제기획원ㆍ상공부ㆍ내무부 등 28개 부처에서 1실, 3국, 11심의관, 35개 과의 하부 조직을 감축하고 정원 212명을 축소하였다.
김 대통령의 제3차 조직 개편은 1994년 11월 갑작스럽게 재추진되었다. 정부조직개편에 따른 공직사회의 저항과 동요를 우려하여 추가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주저해온 김 대통령이 시드니 세계화 선언을 계기로 조직 개편 작업 재추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3차 정부조직 개편으로 중앙 행정기관은 1부 1처가 줄어들어 2원 13부 5처 15청 2외국이 되었고, 하부 조직은 장ㆍ차관급 5, 차관보 5, 국장 26, 과장 115개 직위가 감축되었으며 공무원의 정원은 총 1,002명이 감축되었다.
3차 조직 개편의 초점은 경제 정책의 계획과 수단을 통합한 재정경제원의 출범과 사회 간접 자본을 담당하고 있는 건설부와 교통부의 통합에 있다. 재정경제원의 출범을 계기로, 개발 연대를 통해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개발 투자에 필요한 내ㆍ외자 동원 역할을 수행하던 경제기획원이 금융ㆍ세제 등 거시 경제 정책 수단을 갖고 있는 재무부와 통합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금융ㆍ보험ㆍ외환 관리 등 각종 금융 관련 조직이 축소ㆍ조정되고, 대외 경제 조정, 경제 협력 등 상호 유사한 기능이 통합되었다. 건설부와 교통부의 통합에서는, 업무의 관련성이 높은 건설부의 주택국과 도시국, 교통부의 수송정책실과 화물유통국 등 유사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 통합되었다. 또한 사회 간접 자본과 직접 관계가 없는 관광 기능은 문화체육부로 이관 되었다.
3차 개편에서 또한 상공자원부는 통상산업부로 개편되어 대외 통상 무역 및 통상교섭 기능이 강화되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개별 산업별 공업 정책 기능은 축소ㆍ통합되었다. 그리고 정보화 사회에 대비하여 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 개편,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던 정보 통신 기능을 통합ㆍ일원화하여 정보 통신 산업을 국가 발전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하였다. 농림수산부의 경우에는 WTO체제에 대비한 우리 농업의 개방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하여 농업 정책 기능과 국제 협력ㆍ투자 심사 기능을 보강하는 한편, 집행 기능은 농업진흥청으로 이관하였다. 또한 환경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환경처를 환경부로 격상하였으며, 국민 복지 정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보건사회부는 보건복지부로 개편하여 식품 안전 관리 및 검사 기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내무부의 지방 통제 기능을 축소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기구ㆍ정원 및 행정에 대한 통제 기능을 주로 수행하여 왔던 지방행정국과 지방기획국을 지방행정국으로 축소ㆍ통합하였고, 지역경제국은 지방재정국과 통합하여 지방재정경제국으로 개편하였으며, 방재구난 관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방재계획관을 방재국으로 확대ㆍ개편하였다. 또한 정부 부처간 업무나 상호 연계되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에게 차관 회의
이러한 시대적 상황 인식을 토대로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ㆍ지방화ㆍ정보화ㆍ통일 시대에 대비한 ‘작고 강력한 정부’의 구축을 목표로 여러 차례에 걸친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추진하였다. 김 대통령은 출범 이후 4차에 걸친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출범 당시의 2원 16부 15청 2외국에서 2원 14부 5처 14청 1외국으로 2부 1처 1청을 폐지하고, 공무원 1,400여 명을 감축하는 획기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김 대통령은 출범 직후인 1993년 3월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를 통합하여 문화체육부로 개편하고,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통합하여 상공자원부로 개편하는 제1차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김 대통령은 취임 준비위원회를 통해 각계에서 제시된 여러 행정개혁안을 다각적으로 검토, 출범과 동시에 행정조직의 축소ㆍ통합을 추진하였다. 1차 조직 개편은 정부의 ‘작고 강력한 정부’ 구현을 위한 개혁의지를 조기에 가시화 한다는 차원에서, 행정 환경의 변화로 존치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한 체육청소년부와 동력자원부를 우선적으로 통ㆍ폐합하였다. 이와 같은 1차 조직 개편 결과 전체적으로 2개부가 폐지되고 3실, 7담당관, 12과의 하부 조직이 감축되었으며, 총 139명의 공무원 정원이 감축되었다.
김 대통령은 학계와 기업계 등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추가적ㆍ전면적 정부조직개편을 준비하기 위해, 1993년 4월 행정쇄신위원회를 발족하였다. 행정쇄신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 작업 추진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부 개편 대상 부처를 중심으로 동요와 반발이 야기되고,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가 전격적으로 실시되어 경제 사회가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자, 김 대통령은 추가적인 조직 개편 작업을 보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1994년 11월까지는 부처 통폐합 등 대규모 조직 개편이전이 정부적으로 추진되기보다는 각 부처가 자체적으로 내부 개편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는 소규모의 2차 조직 개편이 추진되었다.
2차 개편을 추진한 이유는 특히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 완화가 행정쇄신위원회 및 경제 행정규제완화위원회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차 개편에서는 규제 관련 조직을 감축하고 그에 따라 불필요해진 인력을 축소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2차 개편을 통해 경제기획원ㆍ상공부ㆍ내무부 등 28개 부처에서 1실, 3국, 11심의관, 35개 과의 하부 조직을 감축하고 정원 212명을 축소하였다.
김 대통령의 제3차 조직 개편은 1994년 11월 갑작스럽게 재추진되었다. 정부조직개편에 따른 공직사회의 저항과 동요를 우려하여 추가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주저해온 김 대통령이 시드니 세계화 선언을 계기로 조직 개편 작업 재추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3차 정부조직 개편으로 중앙 행정기관은 1부 1처가 줄어들어 2원 13부 5처 15청 2외국이 되었고, 하부 조직은 장ㆍ차관급 5, 차관보 5, 국장 26, 과장 115개 직위가 감축되었으며 공무원의 정원은 총 1,002명이 감축되었다.
3차 조직 개편의 초점은 경제 정책의 계획과 수단을 통합한 재정경제원의 출범과 사회 간접 자본을 담당하고 있는 건설부와 교통부의 통합에 있다. 재정경제원의 출범을 계기로, 개발 연대를 통해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개발 투자에 필요한 내ㆍ외자 동원 역할을 수행하던 경제기획원이 금융ㆍ세제 등 거시 경제 정책 수단을 갖고 있는 재무부와 통합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금융ㆍ보험ㆍ외환 관리 등 각종 금융 관련 조직이 축소ㆍ조정되고, 대외 경제 조정, 경제 협력 등 상호 유사한 기능이 통합되었다. 건설부와 교통부의 통합에서는, 업무의 관련성이 높은 건설부의 주택국과 도시국, 교통부의 수송정책실과 화물유통국 등 유사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 통합되었다. 또한 사회 간접 자본과 직접 관계가 없는 관광 기능은 문화체육부로 이관 되었다.
3차 개편에서 또한 상공자원부는 통상산업부로 개편되어 대외 통상 무역 및 통상교섭 기능이 강화되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개별 산업별 공업 정책 기능은 축소ㆍ통합되었다. 그리고 정보화 사회에 대비하여 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 개편,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던 정보 통신 기능을 통합ㆍ일원화하여 정보 통신 산업을 국가 발전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하였다. 농림수산부의 경우에는 WTO체제에 대비한 우리 농업의 개방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하여 농업 정책 기능과 국제 협력ㆍ투자 심사 기능을 보강하는 한편, 집행 기능은 농업진흥청으로 이관하였다. 또한 환경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환경처를 환경부로 격상하였으며, 국민 복지 정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보건사회부는 보건복지부로 개편하여 식품 안전 관리 및 검사 기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내무부의 지방 통제 기능을 축소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기구ㆍ정원 및 행정에 대한 통제 기능을 주로 수행하여 왔던 지방행정국과 지방기획국을 지방행정국으로 축소ㆍ통합하였고, 지역경제국은 지방재정국과 통합하여 지방재정경제국으로 개편하였으며, 방재구난 관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방재계획관을 방재국으로 확대ㆍ개편하였다. 또한 정부 부처간 업무나 상호 연계되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에게 차관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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