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통사2]`훈민정음, 서사시, 언해` 요약/정리
본 자료는 1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해당 자료는 1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8.2.1. 훈민정음
8.2.2. <용비어천가>
8.2.3. <월인천강지곡>
8.2.4. <석보상절>
8.2.5. 언해

본문내용

해를 돕고자 하였으나 널리 반포되지 못하였다. 또한 세조가 세상을 떠나자 불교를 배척하고 유학을 기본 이념으로 삼는 노선이 재확인되고, 간경도감의 폐지로 불경 언해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시 작품의 언해도 국가사업으로 추진했다. 난세에 어려운 생애를 보내면서도 임금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절실히 나타내어 고려 때부터 애독된 두보의 시가 언해되어 1481년 <두시언해>로 나왔는데, 서문에서 시를 공부하고자 하면서도 두보의 시를 어렵게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석도 달고 번역도 한다고 했다. 원문과 번역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언해하면서, 우리말의 어법에는 맞지 않을 정도까지 직역하였고, 원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이 외에도 국가 차원의 한시언해는 <연주시격>과 <황산곡시집>이 있으나 전하지 않고 있다.
한시 언해를 학자 개인이 하기도 했는데, 김인후의 <백련초해>는 한 자마다 새김과 독음을 국문으로 단 뒤에 그 구의 번역을 붙였으나 이는 입문자에게 한시를 가르치기 위한 교재이고 번역 자체가 의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당나라의 양대 시인 중 두보보다 이백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어, 이백 시의 언해는 조선후기에 비로소 이루어지고 간행되지 못한 채 필사본으로 전하고 있다.
조선초기의 언해는 국문 사용을 확대한 점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지만, 번역이 원문을 대신할 수 있게 하지 못했으며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다. 원문을 읽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의역을 한 것도 더러 있으나, 번역문학의 작품으로 평가할 것을 마련하지 못하였으며, 자유로운 번역이 이루어진 것은 조선후기의 일이다.
  • 가격1,000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7.12.13
  • 저작시기2007.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200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