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신학적 인간학 복음과 문화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인간론의 중요성과 그 종류에 대하여 설명하라.

2. 인간론을 신론(창조론)의 구조 속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라.

3. 인간론을 연구하는 목적에 대해서 설명하라.

4. 신학적 인간학이 다루어야 할 주제에 대해 설명하라.

5. 신학적 인간학의 당면 위기에 대해 설명하라.

6. 신학적 인간학에 대한 진화론의 도전을 설명하고 이를 비판해보라.

7.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역사적 개념들을 설명하고 이를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하라.
1. 자연주의적 견해
2. 로마 카톨릭의 초자연주의적 견해
3. 루터파
5. 개혁파
6. 칼 바르트

8.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대한 개혁신학적 입장에 대해 설명하라.

9.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문화적 측면에서의 하나님 형상의 회복에 대해 설명하라.

본문내용

치 있는 비물질적인 요소로 달리 해석하고 있다. 고대 이전의 삼분설은 플라톤과 루크레티우스에게서 나타난다. 교대 교회에서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오리겐과 영지주의자들이 삼분설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서방 교회의 어거스틴과 터툴리안 등은 이분설을 지지하였다. 한편 델리취는 영,혼,육을 기능적인 면으로 구분하여 삼분설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분설은 인간의 구조를 영과 육으로 나눈다. 삼분설은 프뉴마(영), 프쉬케(혼)을 구별하지만, 이분설은 영과 혼을 같은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성경에 따르면 프뉴마와 프쉬케를 같은 의미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마6:25, 10:28은 인간의 구조를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프뉴마와 프쉬케가 같은 뜻과 의미를 가진 단어인 이유는 첫째 죽음과 관련하여, 둘째 죽은 자와 관련하여 교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행7:59절의 스데반은 ’내 프뉴마를 받으소서‘라고 하였고, 창35:18절에는 라헬의 혼이 떠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데카르트 이후 보다 성경적인 입장에서 성경과 조화되기 위해 제시된 것이 실재적 이분설이다. 결국 이분설이란 전인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분설이란 단어 역시 두 부분을 구별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에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단일론과는 구별되지만 영과 육을 유기적 연결, 즉 전인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살전5:23에서 세 구성 요소인 ‘영, 혼, 육’ 이 2개의 ‘그리고’라는 접속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별개의 독립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막12:30은 4분설을 말하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살전5:23은 삼분설을 지지하기 위하여 기록된 말씀이 아니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죄에 물들지 않도록 보존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문법적으로 보면 영, 혼, 육을 수식하는 ‘보전되기 원하노라’의 표현은 복수가 아닌 단수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리델보스의 말대로 전인적, 즉 통전적인 인간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히4:12 역시 영과 혼, 골수를 구별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의 능력이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있게 하는 말씀을 나타내는 것이다.
영육 이원론 대립적 이해를 야기시키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하는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다. 삼분설론자들이 주장하는 살전5:23과 히4:12도 이원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성경 해석의 원리는 성경의 유비(Analogia Scriputra)인데 이는 전체와 부분이 순환적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희미한 부분인 살전5:23절은 인간의 구조를 두 부분으로 증거하고 있는 보다 더 많은 말씀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벌코프는 ‘인간은 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혼이다’라고 하였고, 래드는 ‘이 둘은 동일한 실제를 가진 다른 이름이다’라고 하였으며, 리델보스는 굳이 이 둘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인간이란 창2:7에서와 같이 생령, 즉 살아 있는 존재로서 전인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간 본성의 구성 요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나타나는 인간의 논의는 명백히 이분법적이다. 성경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하나의 통일체로 볼 것을 가르치면서 독립된 두 요소로 구성된 이원론 존재로 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각 요소는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상관없는 실재가 아니라 연하여 하나의 단일한 유기체를 형성하는 실재이다. 성경은 인간의 복합성을 인정하지만 인간 본성을 두 부분으로 나누지 않는다. 즉 모든 인간의 행위는 전인(全人)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격적 단일성을 지지하고 있는 전인적 인간을 말하고 있으며, 구조적 이중성을 전제하고 있다. 이중성이란 두 측면이 있다는 것으로 조화와 통일성 속에서 ‘두 면’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모든 개념을 인간의 구조 안에 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창2:7에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삼분설을 지지하는 듯한 영, 혼의 다른 단어의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영, 혼의 의미는 서로 교호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이 둘이 결국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눅1:46-47절을 이 둘을 병행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말씀이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여기서도 교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분법적 사고인 삼분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① 성경의 예외적인 언명은 성경의 통상적인 표현법에 비추어 해석하여야 바른 주석인 바, 삼분설을 옹호하는 일부학자들은 살전5:23, 히4:12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② 영과 혼이 나란히 언급되었다고 해서 성경이 두 개의 실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없다.
③ 살전5:23절은 영, 혼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여기서 우리는 전인적 개념을 보아야 한다.
④ 히4:12는 영, 혼을 나누는 말씀이 아니고, 단지 마음의 사유와 의도를 나누고 있을 따름이다.
9.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문화적 측면에서의 하나님 형상의 회복에 대해 설명하라.
창세기 1:28이 문화명령이라면, 마28:18-20은 복음명령이다. 이 두 종류의 명령은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양자는 병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명령에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에서 “모든 것”은 세상과 영적 세상을 구분한 이원론적 개념이 아니라 통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문화명령도 포함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복음명령과 문화명령은 같은 하나의 명령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복음이 바로 전파될 때 문화 명령이 그 근본 정신을 바로 살려서 실현될 수 있다. 타락으로 문화 명령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더욱 강화되었음이 창9:1-13절에 나온다. 이 문화 명령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셨을 때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복음의 빛 가운데서 문화명령이 이해되어야 한다.

키워드

Mensch,   인간론,   물질,   der,   인간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8.03.09
  • 저작시기2008.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5442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