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들어가며
Ⅱ.본문
Ⅱ-ⅰ.민중시
Ⅱ-ⅰ-ⓛ 김지하
*김지하의 「오적」
Ⅱ-ⅰ-② 신경림
Ⅱ-ⅰ-③ 정희성
Ⅱ-ⅱ. 모더니즘 시
Ⅱ-ⅱ-①김광규
Ⅱ-ⅱ-②정호승
Ⅲ. 결론
Ⅱ.본문
Ⅱ-ⅰ.민중시
Ⅱ-ⅰ-ⓛ 김지하
*김지하의 「오적」
Ⅱ-ⅰ-② 신경림
Ⅱ-ⅰ-③ 정희성
Ⅱ-ⅱ. 모더니즘 시
Ⅱ-ⅱ-①김광규
Ⅱ-ⅱ-②정호승
Ⅲ. 결론
본문내용
문학론이다. 같은 ‘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실상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모순이 느껴지지 않는가?
박정희 정권을 부정적으로 규정짓는다면 그가 동원하였던 민족주의는 분명 변형된 형태일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도 분분하며 이는 현 정치에도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는 했으나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그의 공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 폐해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는다며 신랄하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의 독재정권의 이면에는 취약한 자본시장, 불균형성장에 따른 양극화, 불모의 복지정책, 희생을 강요당한 노동계급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젊은이들의 투쟁이 있었고 희생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그의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사용했다면 분명 70년대 민중시를 쓴 시인들은 그 민족주의를 부정하고 진정한 민족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70년대 시인들은 그 시대를 대변하고자 했던 사명감이 매우 투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시대를 대변하려고 했던 노력이 강하게 보인다. 이 때 지식인들은 민중들 사이에 형성된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들의 사연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를 써내었던 것이다.
시가 민중적 삶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든지, 민중적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주장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경험적 진실성에 대한 추구 자세로 보아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대상에 대한 느낌의 문제보다 깨달음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긍정적인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적 태도가 시를 통해 가치 있게 구현될 수 있기 위해서는 삶의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인식을 전제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들의 시가 없었다면 인류의 보편적가치인 인권과 생명에 대한 인식이 거대한 박정희 정권의 그늘에 가려져 잊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70년대 시들은 그 자체가 역사의 또 다른 진실성 있는 기록으로써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그에 따른 실천적 의지를 시를 통해 구현하고자 할 경우, 시의 언어는 희망의 언어이기 이전에 비판의 소리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판적인 소리에도 창조적인 감성이 요구되며, 그 격정의 소리를 절제할 수 있는 지성도 필요하다. 상황의 황폐성을 지적하기 위해 시 역시 정신적 황폐성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시가 현실에 대한 상상적인 비전을 지니지 못할 경우, 자칫 구호에 떨어질 위험성도 없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1970년대의 민중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두루 지적된 사실이다.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민음사, 2002,p.346~347
또한 노동자의 생활에 가까이 가려는 시인의 노력은 인정할 만하지만, 그 시적 성과에는 미흡함이 있다. 시인의 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실제 노동자의 삶 사이의 괴리감이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서준섭,「현대시와 민중」,『1970년대 문학연구』(문학사와비평연구회 편), 예하, 1991, 52면.
그러나 이 시의 이러한 한계는 사실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다. 방직공장 등 몇몇의 경공업 공장을 제외하고는 아직은 본격적인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지 못한 70년대 초반에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노동자의 연대 의식이나 노동자 스스로의 힘에 대한 믿음과 전망이 확립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인 농토에서 유리되어 도시 변두리를 떠돌면서 산업예비군으로서, 또는 날품팔이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70년대 초 도시 빈민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기 때문이다. 민족문학사연구소 현대문학분과, 1970년대 문학연구, 소명출판, 2000,238p
모더니즘 시들은 현대의 시대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특장이 있다. 이는 70년대 시인들이 바라보았던 산업화와 도시화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전체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서 정치니 경제니 하는 한 단면만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시의 모더니스트 시인들은 민중시인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를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진화 된 정치체제와 더불어 많은 병폐를 양산해냈던 천민자본주의가 우리사회에 가져온 공동체파괴문제라든지 인간소외 현상들에 관심을 보이며 이를 시로써 표현해낸 것이다. 이 점에서 그들의 시는 현대에서 바라보았을 때 거리감이 없고 공감의 영역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한 시대만을 대표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미래에도 보편적으로 호소력이 지속된다면 또 다른 의의를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 시에도 안타까운 면이 존재한다. 이들에게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 적극적인 실천이기보다는 막연한 태도로 이루어져 있다. 70년대 현실의 모순은 너무나 순식간에 중측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극복의지가 그 충격과 그로 인한 상처에 눌려 다소 소극적이고 관념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민족문학사연구소, 위의책, 363p
70년대 역사는 현 시점에서 활발하게 재평가되고 있다. 최근 국정원의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가 조직되어 인혁당민청학력 사건이 재건위되고, 국가보안법폐지에 관한 논란이 있었던 것이 그 예라고 하겠다. 또한 FTA에 관한 논란은 신경림의 시 「농무」를 연상케 한다.
70년대의 시인들이 각기 현실을 보는 눈은 달랐지만 그들에게는 투철한 역사의식이 있었고 또 직접 행동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 시대에서는 그 역사의식이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시가 그 자체의 정체성을 잃고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비판하는 시를 쓰고 그대로 살고자 했던 시인의 삶이 있다면 그 시는 더욱 높이 평가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된다. 진실과 정의에 대항하는 시들은 그 존재자체로 문학사뿐만 아니라 역사에서도 인간과 사라져가는 것들의 존엄성으로 남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을 부정적으로 규정짓는다면 그가 동원하였던 민족주의는 분명 변형된 형태일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도 분분하며 이는 현 정치에도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는 했으나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그의 공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 폐해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는다며 신랄하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의 독재정권의 이면에는 취약한 자본시장, 불균형성장에 따른 양극화, 불모의 복지정책, 희생을 강요당한 노동계급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젊은이들의 투쟁이 있었고 희생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그의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사용했다면 분명 70년대 민중시를 쓴 시인들은 그 민족주의를 부정하고 진정한 민족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70년대 시인들은 그 시대를 대변하고자 했던 사명감이 매우 투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시대를 대변하려고 했던 노력이 강하게 보인다. 이 때 지식인들은 민중들 사이에 형성된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들의 사연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를 써내었던 것이다.
시가 민중적 삶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든지, 민중적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주장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경험적 진실성에 대한 추구 자세로 보아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대상에 대한 느낌의 문제보다 깨달음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긍정적인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적 태도가 시를 통해 가치 있게 구현될 수 있기 위해서는 삶의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인식을 전제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들의 시가 없었다면 인류의 보편적가치인 인권과 생명에 대한 인식이 거대한 박정희 정권의 그늘에 가려져 잊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70년대 시들은 그 자체가 역사의 또 다른 진실성 있는 기록으로써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그에 따른 실천적 의지를 시를 통해 구현하고자 할 경우, 시의 언어는 희망의 언어이기 이전에 비판의 소리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판적인 소리에도 창조적인 감성이 요구되며, 그 격정의 소리를 절제할 수 있는 지성도 필요하다. 상황의 황폐성을 지적하기 위해 시 역시 정신적 황폐성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시가 현실에 대한 상상적인 비전을 지니지 못할 경우, 자칫 구호에 떨어질 위험성도 없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1970년대의 민중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두루 지적된 사실이다.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민음사, 2002,p.346~347
또한 노동자의 생활에 가까이 가려는 시인의 노력은 인정할 만하지만, 그 시적 성과에는 미흡함이 있다. 시인의 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실제 노동자의 삶 사이의 괴리감이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서준섭,「현대시와 민중」,『1970년대 문학연구』(문학사와비평연구회 편), 예하, 1991, 52면.
그러나 이 시의 이러한 한계는 사실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다. 방직공장 등 몇몇의 경공업 공장을 제외하고는 아직은 본격적인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지 못한 70년대 초반에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노동자의 연대 의식이나 노동자 스스로의 힘에 대한 믿음과 전망이 확립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인 농토에서 유리되어 도시 변두리를 떠돌면서 산업예비군으로서, 또는 날품팔이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70년대 초 도시 빈민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기 때문이다. 민족문학사연구소 현대문학분과, 1970년대 문학연구, 소명출판, 2000,238p
모더니즘 시들은 현대의 시대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특장이 있다. 이는 70년대 시인들이 바라보았던 산업화와 도시화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전체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서 정치니 경제니 하는 한 단면만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시의 모더니스트 시인들은 민중시인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를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진화 된 정치체제와 더불어 많은 병폐를 양산해냈던 천민자본주의가 우리사회에 가져온 공동체파괴문제라든지 인간소외 현상들에 관심을 보이며 이를 시로써 표현해낸 것이다. 이 점에서 그들의 시는 현대에서 바라보았을 때 거리감이 없고 공감의 영역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한 시대만을 대표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미래에도 보편적으로 호소력이 지속된다면 또 다른 의의를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 시에도 안타까운 면이 존재한다. 이들에게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 적극적인 실천이기보다는 막연한 태도로 이루어져 있다. 70년대 현실의 모순은 너무나 순식간에 중측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극복의지가 그 충격과 그로 인한 상처에 눌려 다소 소극적이고 관념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민족문학사연구소, 위의책, 363p
70년대 역사는 현 시점에서 활발하게 재평가되고 있다. 최근 국정원의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가 조직되어 인혁당민청학력 사건이 재건위되고, 국가보안법폐지에 관한 논란이 있었던 것이 그 예라고 하겠다. 또한 FTA에 관한 논란은 신경림의 시 「농무」를 연상케 한다.
70년대의 시인들이 각기 현실을 보는 눈은 달랐지만 그들에게는 투철한 역사의식이 있었고 또 직접 행동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 시대에서는 그 역사의식이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시가 그 자체의 정체성을 잃고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비판하는 시를 쓰고 그대로 살고자 했던 시인의 삶이 있다면 그 시는 더욱 높이 평가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된다. 진실과 정의에 대항하는 시들은 그 존재자체로 문학사뿐만 아니라 역사에서도 인간과 사라져가는 것들의 존엄성으로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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