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종교 문화로 읽는다2권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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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도교

2. 신종교

3. 동학(천도교)

본문내용

이는, 혹은 이미 만들어진 질서의 세계로서 이성이나 논리로 알 수 있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이 보이는 세계를 받치고 있는 세계로 합리적인 사고를 뛰어넘는 세계를 말할 것이다. 존재의 근원이나 생성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 예법 등도 그 근원을 캐보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세계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것이 ‘불연’의 세계이다.
2. 그 후의 역사 - 동학과 사회문화운동
해월이 죽고 의암 손병희가 동학을 맡은 게 1898년의 일이다. 그 후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동학의 혁혁한 사회문화운동이다. 동학은 일제 암흑기 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서 실로 칠흑 같은 밤바다의 등대와 같은 존재였다. 독립운동이나 신문화운동을 주도하면서 동학은 당시의 암울한 현실에 이정표가 되었던 것이다.
의암이 동학의 이름을 ‘천도교’로 바꿔 선포한 것은 그가 일본에 있을 때였다. 의암의 지도 아래 천도교가 교육 사업을 시작하여 현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학원과 현 동덕여대의 전신인 동덕여자의숙을 인수해 경영하게 된 일이다. 종전의 포접제를 보다 근대적인 교구제로 바꾸고, 천도교의 간판교리처럼 되어 있는 인내천사상을 확립해 교리의 현대화를 꾀했으며 오관제도, 즉 주문 외기, 청수바치기, 시일식 드리기, 성미 바치기, 기도하기를 정착시켜 천도교식 종교의례를 제정한 것도 모두 의암이 이룩한 공적들이다. 천도교는 의암의 이러한 노력과 실력에 힘입어 수많은 위기상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사회를 여러 모로 주도하는 교단이 된다.
천도교가 당시 다른 종단보다 앞서 갔던 것은 민족독립운동에서뿐만이 아니다. 천도교는 문화운동 분야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많이 남긴다. 독립운동 같은 것을 하드웨어라고 본다면 문화운동은 소프트웨어에 해당되는 것이니 천도교는 당시에 전 사회문화운동을 리드하고 있었던 셈이다. 천도교 교단 측에서는 이 제반 문화운동을 ‘신문화운동’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청년운동, 출판문화운동, 농민운동, 어린이운동, 여성운동이 포함된다.
“개벽”은 아마도 시사종합지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간된 게 아닌지 모르겠는데 이 잡지는 그 이름이 이미 천도교의 역사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개벽이듯이 천도교 교단에서 발간한 것이다. 3.1운동 때문에 어지간히 놀란 일제는 표면적으로 유화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우리 민족은 문화 쪽으로도 많은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천도교 청년회에서는 이제는 문화로써 이 민족을 깨우자는 계몽정신을 내세우게 됐고 그 첫 번째 결과가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 등의 3대 개벽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교양지 “개벽”의 창간이었다. “개벽”지는 일제 강점기라는 우리 민족 최대의 암흑기에 ‘민족혼의 화신’이었으며 다른 어떤 잡지와도 비교될 수 없는 종합잡지로서 당시 한국 문화계에서 총체적인 기능을 했다. 동학혁명과 3.1운동을 주도했던 천도교가 교단으로서 갖고 있었던 실력과 민족주의 이념이 바탕이 됨으로서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천도교는 한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어린이운동의 효시를 장식했으며, ‘어린이’란 용어 자체를 만들었고 - ‘어린’이라는 형용사에 사람이라는 뜻의 ‘이’를 붙여 만든 것으로 당시로서는 새로운 용어였다 - 어린이 날을 최초로 만들었으며, 또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전문지 “어린이”의 창간 등등.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운동과 연관해서 행했던 위와 같은 일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칭찬을 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을 행했던 사람이 소춘 김기전 선생이다. 소파나 소춘이 천교도인일 뿐 아니라 당시 교단에서 핵심 간부로서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행한 어린이 운동에는 자연히 천도교 이념이 깔리게 된다. 동학의 또 다른 창교주라 할 수 있는 해월이 제시한 사인여천(事人如天), 즉 ‘사람을 하늘처럼 모셔라’라는 유명한 법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이도 사람이니 자연히 어린이도 하늘 혹은 한울님처럼 모셔야 된다는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에 다다르게 된다.
“어린이”지를 발간해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개벽사는 “부인”이나 “신여성”과 같은 전문여성지를 1920년대 초부터 발간하면서 우리나라 사회운동의 또 다른 금자탑을 세운다. 천교도가 이렇듯 어린이운동과 더불어 여성운동에 진력하게 되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지금까지 모아 온 대로 인내천 사상 때문이다.
“어린이”지를 발간해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개벽사는 “부인”이나 “신여성”과 같은 전문여성지를 1920년대 초부터 발간하면서 우리나라 사회운동에 또다른 금자탑을 세운다 천도교가 이렇듯 어린이운동과 더불어 여성운동 우리는 앞에서 수운이 자신의 ‘시천주’사상을 실천에 옮기면서 자신의 두 여종을 해방시켜 하나는 양딸로, 하나는 며느리로 맞아들였다는 것을 보았다. 아마 이 당찬 실천을 천도교 여성운동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에 전력하게 되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지금까지 보아 온 대로 인내천사상 때문이다. 천도교의 여성운동도 어린이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교리적인 배경은 대부분 해월에 의해서 제공된다. 해월의 여성관을 보려 할 때 가장 압권인 글은 부인을 대상으로 한 ‘내칙 해월의 태교에 해당하는 법문이다.
’과 ‘내수도문 해월의 부인이 가정에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법문이다.
’이라는 글이다. 여기에서 해월은 부인을 그 집안의 주인 조선시대의 부인이란 밥이나 짓는 부엌데기, 논밭 매는 일꾼, 애 낳고 기르는 차세대 후계자 제조기, 남편 성욕 채워 주는 위안부 등과 같은 소모품에 불과 했는데 이런 부인 이미지에 대한 거대한 반격인 셈이다
이라고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같이 수운과 해월의 여성관을 기반으로 천도교에는 갖가지 여성운동이 생겨난다.
해월은 수준 높은 환경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이다. 해월은 '모든 사물은 한울님이다(물물천), 따라서 ‘물건을 공경해야 한다(경물사상)고 했다. 해월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천지, 자연, 부모를 모두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천지 혹은 자연을 부모 모시듯 극진히 존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키워드

도교,   신종교,   동학
  • 가격2,000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8.03.18
  • 저작시기200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56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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