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현재까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얻어진 방사성탄소연대는 60가지 예에 이른다. 이를 상대편년된 지역별 유적에 대입할 때 중.서부지방은 암사동이 기원전 5300-기원전3200년, 남부지방은 동삼동이 기원전 5000-기원전1500년으로, 동북지방의 오산리유적은 기원전6000-기원전4400년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수치로 볼 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000년에서 기원전 1000년까지 5000년간 존속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2.사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사회는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의 원시미개민족 즉 신석기시대문화수준에 머물러 있는 주민들의 생활상과 비교해서 유추해볼 때 신석기시대인들은 모든 행위가 공동체적인 집단행동으로 이루어져 공동생산. 공동소유. 공동분배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생산활동에서 여성의 역할이 큰 경제생활을 영위해 자연히 모계씨족사회에 바탕을 둔 사회조직체로 운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의 원시미개민족들의 혼인 및 가족제도가 모계(母系)인 점에서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씨족모계사회는 농경이 본격화하는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남성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부계(父系)사회로 넘어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Ⅵ신석기문화의 종말
1.중서부지방 -중서부지방에서는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가 층위를 달리하여 조사된 평양 금탄리와 남경유적을 통해서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의 일시적인 동반현상과 민무늬토기문화의 정립상을 살필 수 있다. 신석기문화층인 금탄리2문화층에서는 토기 겉면 전체에 생선뼈무늬가 베풀어진 토기, 몸통에 덧무늬 한 줄을 덧대준 토기, 빗금줄무늬 서너 줄을 등간격으로 베풀어준 토기와 함께 다수의 빗살무늬계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남경유적 신석기시대 말기 토기의 양상도 대체로 빗살무늬계 민무늬토기의 비율이 전체 토기의 30퍼센트에 가까워지는 등 민무늬토기 문화에 더욱 접근하고 있다.
2.동북지방 -서포항. 범의구석유적 등 신석기시대의 만기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와의 공반관계를 살필 수 있다. 서포항 신석기시대 5기층에서는 4기층에 보이던 번개무늬.삼각무늬.점줄무늬.생선뼈무늬 등 신석기시대 말기의 무늬들이 퇴화해 없어지는 대신, 빗살무늬로는 생선뼈무늬만이 아가리에서 몸통일부에 베풀어지는 토기 외에 민무늬의 겹아가리토기가 증가된다.
범의구석의 신석기시대유적에서는 10기의 움집터가 조사되었다. 여기서는 민무늬토기에는 굽다리잔과 간토기들도 보이는 데 그 수량은 같이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보다 많아 신석시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적인 양상을 잘 보여준다.
3.서북지방 -신암리유적은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의 문화층이 퇴적되어 있다. 이 신석기시대 말기의 빗살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의 영향이 깊게 나타나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청동기시대 층위에서 출토되는 무늬가 없는 미송리형토기로 이어진다.
4.남부지방 -남부지방의 신석기시대 말기의 문화층은 부산동삼동과 금곡동. 농소리. 상노대도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이 유적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문화층이 형성된 곳으로 말기에 이르면 무늬가 아가리에 일부만 베풀어진 것, 무늬가 퇴화하여 간단한 빗금무늬만 들어 있는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같은 아가리를 겹아가리로 만든 민무늬토기가 출토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는 이의 계승. 발전 속에서 청동기문화로 접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원래의 신석기시대 문화인이 새로운 문화의 소지자인 청동기시대인에 의해 정복되었다는 것보다는 서로의 혼거 속에 보다 발달된 문화의 경제체계를 갖고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문화로 발전되어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발제: 김 현철)
2.사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사회는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의 원시미개민족 즉 신석기시대문화수준에 머물러 있는 주민들의 생활상과 비교해서 유추해볼 때 신석기시대인들은 모든 행위가 공동체적인 집단행동으로 이루어져 공동생산. 공동소유. 공동분배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생산활동에서 여성의 역할이 큰 경제생활을 영위해 자연히 모계씨족사회에 바탕을 둔 사회조직체로 운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의 원시미개민족들의 혼인 및 가족제도가 모계(母系)인 점에서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씨족모계사회는 농경이 본격화하는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남성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부계(父系)사회로 넘어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Ⅵ신석기문화의 종말
1.중서부지방 -중서부지방에서는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가 층위를 달리하여 조사된 평양 금탄리와 남경유적을 통해서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의 일시적인 동반현상과 민무늬토기문화의 정립상을 살필 수 있다. 신석기문화층인 금탄리2문화층에서는 토기 겉면 전체에 생선뼈무늬가 베풀어진 토기, 몸통에 덧무늬 한 줄을 덧대준 토기, 빗금줄무늬 서너 줄을 등간격으로 베풀어준 토기와 함께 다수의 빗살무늬계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남경유적 신석기시대 말기 토기의 양상도 대체로 빗살무늬계 민무늬토기의 비율이 전체 토기의 30퍼센트에 가까워지는 등 민무늬토기 문화에 더욱 접근하고 있다.
2.동북지방 -서포항. 범의구석유적 등 신석기시대의 만기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와의 공반관계를 살필 수 있다. 서포항 신석기시대 5기층에서는 4기층에 보이던 번개무늬.삼각무늬.점줄무늬.생선뼈무늬 등 신석기시대 말기의 무늬들이 퇴화해 없어지는 대신, 빗살무늬로는 생선뼈무늬만이 아가리에서 몸통일부에 베풀어지는 토기 외에 민무늬의 겹아가리토기가 증가된다.
범의구석의 신석기시대유적에서는 10기의 움집터가 조사되었다. 여기서는 민무늬토기에는 굽다리잔과 간토기들도 보이는 데 그 수량은 같이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보다 많아 신석시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적인 양상을 잘 보여준다.
3.서북지방 -신암리유적은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의 문화층이 퇴적되어 있다. 이 신석기시대 말기의 빗살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의 영향이 깊게 나타나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청동기시대 층위에서 출토되는 무늬가 없는 미송리형토기로 이어진다.
4.남부지방 -남부지방의 신석기시대 말기의 문화층은 부산동삼동과 금곡동. 농소리. 상노대도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이 유적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문화층이 형성된 곳으로 말기에 이르면 무늬가 아가리에 일부만 베풀어진 것, 무늬가 퇴화하여 간단한 빗금무늬만 들어 있는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같은 아가리를 겹아가리로 만든 민무늬토기가 출토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는 이의 계승. 발전 속에서 청동기문화로 접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원래의 신석기시대 문화인이 새로운 문화의 소지자인 청동기시대인에 의해 정복되었다는 것보다는 서로의 혼거 속에 보다 발달된 문화의 경제체계를 갖고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문화로 발전되어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발제: 김 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