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냉전의 기원
2. 냉전의 전개와 봉쇄정책의 성립
3.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변동
1) 유럽에서의 봉쇄정책 배경
(1) 그리스 내전과 터키 문제
(2) 베를린 봉쇄
2) 아시아에서의 봉쇄정책 배경
(1) 중공 정권 수립
(2) 한국전쟁
4. 미국의 대소봉쇄정책 전략
1) Kennan의 봉쇄정책
2) 트루만독트린과 봉쇄정책
3) 마샬플랜(Marshall Plan) 과 봉쇄정책
4) 북대서양조약기구(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5. 봉쇄정책의 실현과 결과
Ⅲ. 결 론
참고 문헌
Ⅱ. 본 론
1. 냉전의 기원
2. 냉전의 전개와 봉쇄정책의 성립
3.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변동
1) 유럽에서의 봉쇄정책 배경
(1) 그리스 내전과 터키 문제
(2) 베를린 봉쇄
2) 아시아에서의 봉쇄정책 배경
(1) 중공 정권 수립
(2) 한국전쟁
4. 미국의 대소봉쇄정책 전략
1) Kennan의 봉쇄정책
2) 트루만독트린과 봉쇄정책
3) 마샬플랜(Marshall Plan) 과 봉쇄정책
4) 북대서양조약기구(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5. 봉쇄정책의 실현과 결과
Ⅲ. 결 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대한 반박이다.
Walter Lippman은 이와 같은 논의를 거쳐 다음과 같이 結論짓는다. "Mr.X의 철학과 트르만의 정책은 어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蘇聯體制와의 어떤 친근감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련을 정치 영역에 있어서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경쟁자로서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Mr. X는 러시아가 競爭者가되는 것을 멈추고 파트너가 될 때까지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外交政策의 역사는 경쟁국 간의 관계사였다. 그것은 정치적 親近感을 향유하는 것도 아니고 공동의 목적에 호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解決策은 있는 것이다."
Ⅲ. 결 론
미국은 전후세계가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되기를 바랬다. 그것은 개방된 세계 경제질서와 그것에 바탕을 둔 정치질서의 수립이었다. 2차 대전 결과, 미국과 패권을 겨룰 세력은 없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미국의 전후구상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전후 큰 장애물 - 소련과 유럽 -을 만났다. 소련의 힘이 미국에게 위협적인 정도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소련의 태도였다. 미국이 소련에게 동유럽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했지만, 그것은 어떤 나라든 그 지역으로의 접근이 보장된 세력권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동유럽을 개방할 뜻이 없어 보였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되기를 희망했던 미국의 전후구상은 수정될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이 미국에게 위협이었다. 유럽의 경제는 구조적 결함과 계속된 혹한과 홍수로 말미암아 위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유럽은 현실적으로 쌍무주의·자급자족적(autarky) 경제 관행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자간 자유무역주의라는 미국적 이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게다가 유럽의 위기는 신생국들의 급진적인 민족주의와 더불어 소련의 세력 확장을 자극할 것으로 보였다.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지 당면한 위협에 대응해야 했다. 미국은 어떤 수단에 의해서든 소련이 세력권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하면서, 독일과 일본을 제어함으로써 소련의 안보 위협을 제거해 주는 일종의 이중 봉쇄정책을 택했는데 이것이 바로 트루먼 독트린의 실질적인 내용이었다. 그리스·터키 위기에서는 그것이 지역적인 정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루먼 독트린을 통해 전세계적인 봉쇄의 길을 열었다. 그것은 외교정책에 있어 이데올로기를 도입하고 국제적인 재정원조를 약속하며 곧 이어 군사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통해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적 관념 하에 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 트루먼 독트린 이후 미국은 자본주의체제 내부에서 미국 헤게모니를 어떻게 추구할지 고민했다. 방어적인 성격의 봉쇄정책의 논리는 곧 대전으로 파괴된 유럽에 마셜 플랜이라 불리는 경제원조를 약속하게 되었는데, 마셜 플랜의 진행과정에서 결국 유럽을 이분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선 유럽을 분단시켜 서유럽 중심의 세력권 경제를 실질적으로 공식화하고 미국의 헤게모니가 작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했다. 먀셜 플랜은 그것을 위해 미국이 마련한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었다. 서부독일의 통화개혁과 그것에 기인한 베를린 봉쇄, 서부독일의 건설은 유럽을 실질적으로 이분화하고 세계를 양극화했다. 또한 베를린 위기 때 강조된 군사적 성격은 평화시에 미국이 지역 집단안정보장을 약속하는 조약기구(NATO)를 성립시킴으로써 미국의 안보가 해외에서의 세력균형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미·소간 혹은 진영간의 이념 대결이 조장·강조되었다.
봉쇄정책을 1945년 이후 핵전쟁을 성공적으로 피했다는 이유로 Cold War가 아닌 Cold Peace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것의 실현과정에서 결국 미국내의 정치과정을 경직화 시켰고, 미국의 달러가 모든 외교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릇된 결과를 낳았다.
봉쇄정책의 실현과정에서 파생된 미국 외교정책의 다음과 같은 특징들은 매우 중요하다.
첫째, 미국 외교정책의 목적이 전통주의자들이 주장한 바와 같은 고상한 이상 추구가 아니라 일관된 자기이익 추구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대외정책 수행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고립주의의 전통에서 파생한 것으로 세계를 실재 그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전후 미국인의 희망과 가치들은 세계의 모든 사람과 공유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파생했다. 셋째는 기강대국의 팽창주의적 외교정책은 다분히 국가안보의 관념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자기 증식에 바탕을 둔 불안해소의 방책이었다. 제2차대전 이후 세계를 동·서로 갈라놓았던 진영대립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사실상 끝났다. 당시, 그 극적인 장면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은 바야흐로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흥분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기대는 단지 그럴듯한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 냉전은 끝났다고들 하는데, 현실은 과거와 거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분명 미·소 대립은 더 이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기 동안 형성된 자본주의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패턴은 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는 듯하다. 비록 이데올로기의 위력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제와 문화,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새로운 문제는 과거의 이데올로기 못지 않게 상당히 위험스런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또다른 요인의 다른 형태를 가지는 냉전이 존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참고 문헌
김정배, 『미국과 냉전의 기원 - 공존과 지배의 전략』 혜안
박무성 미국현대사 F.프라이델 A.브린쿨리
『미국과 냉전의 기원 - 공존과 지배의 전략』 같은 책
『미국현대사』 같은 책
『미국과 냉전의 기원 - 공존과 지배의 전략』 같은 책
김진웅, 「냉전의 역사」, 비봉출판사, 1999
김진웅, 「현대미국외교사」, 아세아문화사, 1987
최영보.이주천외.., 「미국현대외교사」, 비봉출판사, 1998
김정배, 「미국과 냉전의 기원」, 혜안출판사, 2001
유현석, 「국제정세의 이해」, 한울출판사, 2001
이삼성,「미국 외교이념과 베트남 전쟁」, 법문사, 1991
Walter Lippman은 이와 같은 논의를 거쳐 다음과 같이 結論짓는다. "Mr.X의 철학과 트르만의 정책은 어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蘇聯體制와의 어떤 친근감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련을 정치 영역에 있어서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경쟁자로서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Mr. X는 러시아가 競爭者가되는 것을 멈추고 파트너가 될 때까지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外交政策의 역사는 경쟁국 간의 관계사였다. 그것은 정치적 親近感을 향유하는 것도 아니고 공동의 목적에 호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解決策은 있는 것이다."
Ⅲ. 결 론
미국은 전후세계가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되기를 바랬다. 그것은 개방된 세계 경제질서와 그것에 바탕을 둔 정치질서의 수립이었다. 2차 대전 결과, 미국과 패권을 겨룰 세력은 없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미국의 전후구상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전후 큰 장애물 - 소련과 유럽 -을 만났다. 소련의 힘이 미국에게 위협적인 정도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소련의 태도였다. 미국이 소련에게 동유럽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했지만, 그것은 어떤 나라든 그 지역으로의 접근이 보장된 세력권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동유럽을 개방할 뜻이 없어 보였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되기를 희망했던 미국의 전후구상은 수정될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이 미국에게 위협이었다. 유럽의 경제는 구조적 결함과 계속된 혹한과 홍수로 말미암아 위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유럽은 현실적으로 쌍무주의·자급자족적(autarky) 경제 관행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자간 자유무역주의라는 미국적 이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게다가 유럽의 위기는 신생국들의 급진적인 민족주의와 더불어 소련의 세력 확장을 자극할 것으로 보였다.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지 당면한 위협에 대응해야 했다. 미국은 어떤 수단에 의해서든 소련이 세력권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하면서, 독일과 일본을 제어함으로써 소련의 안보 위협을 제거해 주는 일종의 이중 봉쇄정책을 택했는데 이것이 바로 트루먼 독트린의 실질적인 내용이었다. 그리스·터키 위기에서는 그것이 지역적인 정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루먼 독트린을 통해 전세계적인 봉쇄의 길을 열었다. 그것은 외교정책에 있어 이데올로기를 도입하고 국제적인 재정원조를 약속하며 곧 이어 군사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통해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적 관념 하에 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 트루먼 독트린 이후 미국은 자본주의체제 내부에서 미국 헤게모니를 어떻게 추구할지 고민했다. 방어적인 성격의 봉쇄정책의 논리는 곧 대전으로 파괴된 유럽에 마셜 플랜이라 불리는 경제원조를 약속하게 되었는데, 마셜 플랜의 진행과정에서 결국 유럽을 이분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선 유럽을 분단시켜 서유럽 중심의 세력권 경제를 실질적으로 공식화하고 미국의 헤게모니가 작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했다. 먀셜 플랜은 그것을 위해 미국이 마련한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었다. 서부독일의 통화개혁과 그것에 기인한 베를린 봉쇄, 서부독일의 건설은 유럽을 실질적으로 이분화하고 세계를 양극화했다. 또한 베를린 위기 때 강조된 군사적 성격은 평화시에 미국이 지역 집단안정보장을 약속하는 조약기구(NATO)를 성립시킴으로써 미국의 안보가 해외에서의 세력균형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미·소간 혹은 진영간의 이념 대결이 조장·강조되었다.
봉쇄정책을 1945년 이후 핵전쟁을 성공적으로 피했다는 이유로 Cold War가 아닌 Cold Peace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것의 실현과정에서 결국 미국내의 정치과정을 경직화 시켰고, 미국의 달러가 모든 외교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릇된 결과를 낳았다.
봉쇄정책의 실현과정에서 파생된 미국 외교정책의 다음과 같은 특징들은 매우 중요하다.
첫째, 미국 외교정책의 목적이 전통주의자들이 주장한 바와 같은 고상한 이상 추구가 아니라 일관된 자기이익 추구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대외정책 수행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고립주의의 전통에서 파생한 것으로 세계를 실재 그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전후 미국인의 희망과 가치들은 세계의 모든 사람과 공유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파생했다. 셋째는 기강대국의 팽창주의적 외교정책은 다분히 국가안보의 관념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자기 증식에 바탕을 둔 불안해소의 방책이었다. 제2차대전 이후 세계를 동·서로 갈라놓았던 진영대립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사실상 끝났다. 당시, 그 극적인 장면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은 바야흐로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흥분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기대는 단지 그럴듯한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 냉전은 끝났다고들 하는데, 현실은 과거와 거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분명 미·소 대립은 더 이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기 동안 형성된 자본주의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패턴은 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는 듯하다. 비록 이데올로기의 위력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제와 문화,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새로운 문제는 과거의 이데올로기 못지 않게 상당히 위험스런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또다른 요인의 다른 형태를 가지는 냉전이 존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참고 문헌
김정배, 『미국과 냉전의 기원 - 공존과 지배의 전략』 혜안
박무성 미국현대사 F.프라이델 A.브린쿨리
『미국과 냉전의 기원 - 공존과 지배의 전략』 같은 책
『미국현대사』 같은 책
『미국과 냉전의 기원 - 공존과 지배의 전략』 같은 책
김진웅, 「냉전의 역사」, 비봉출판사, 1999
김진웅, 「현대미국외교사」, 아세아문화사, 1987
최영보.이주천외.., 「미국현대외교사」, 비봉출판사, 1998
김정배, 「미국과 냉전의 기원」, 혜안출판사, 2001
유현석, 「국제정세의 이해」, 한울출판사, 2001
이삼성,「미국 외교이념과 베트남 전쟁」, 법문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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