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론
1. 성격은 변화될 수 있다
2. 네 가지 형태의 기질
II. 네 가지 기질과 장단점
1. 다혈질.
2. 담즙질
3. 우울질
4. 점액질
5. 네 기질에 대한 정리
III. 기질테스트
1. 성격은 변화될 수 있다
2. 기질 테스트
IV. 결론
1. 약점은 극복되어야 한다.
2.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V. 결론 요약
1. 성격은 변화될 수 있다
2. 네 가지 형태의 기질
II. 네 가지 기질과 장단점
1. 다혈질.
2. 담즙질
3. 우울질
4. 점액질
5. 네 기질에 대한 정리
III. 기질테스트
1. 성격은 변화될 수 있다
2. 기질 테스트
IV. 결론
1. 약점은 극복되어야 한다.
2.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V. 결론 요약
본문내용
의 성경 번역판) 여기에 나오는 목록들을 보라. 앞에서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가지게 된 우리 안의 쓰레기들과 어떻게 다른가? \'증오. 시기. 험담. 야유. 앙심. 비통. 불평. 질투. 후회. 비난/근심. 의심. 우유부단. 움츠림. 소심. 고집. 열등감. 비겁. 주저. 실망. 교만...\'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기질을 갖고 있든 성령이 충만하기만 하며 그의 삶에는 이 아홉 가지의 삶의 특성이 열매로 맺히고 점차 자라가게 되는 것이다.
사랑, 곧 모든 이들(원수까지도)을 향한 사랑이다.
희락, 곧 기쁨(joy),환경을 초월한 변함없는 기쁨이다.
화평(peace),곧 모든 두려움과 근심 대신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평안이다.
오래참음(long suffering:인내), 즉 모든 모욕과 고통과 비난중에서도 묵묵히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자비(gentleness), 곧 부드러운마음에서 나온 사려깊고 예의 바르고 젊잖고 신중하고 이해하려는 자세이다.
양선(goodness), 즉 자신과 소유물에 대해 인색하지 않고 관대한 마음, 이기심 없는 모든 친절과 선한 일이다.
충성(faith) 즉,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의지하는 태도, 신뢰성, 성실한 자세를 말한다.
온유(meekness),악을 악으로 갚지않는,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이다.
절제(self-control), 즉 자신의 기질상의 약점을 자제하는 능력, 자기훈련, 자기조절 능력을 말한다.
성령께선 우리가 그분의 활동을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그분의 존재와 능력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 한 언제나 우리 삶의 한부분 한부분에 개입하실 것이다.
고함을 지르고 꽃병을 집어 던진 다혈질 사람에게 성령께선 즉각적으로 그 분노가 잘못된 죄임을 지적하신다.\"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알겠지? 그 방법은 이 문제의 해결의 좋은 방법일 수 없어! 자 지금 곧 그와의 화해를 시도해라. 전화를 걸어!\" 성령의 사람은 그 말씀에 동의하고 순종하게 된다. 그는 곧 전화기 앞으로 달려간다.
다혈질의 사람으로부터 폭언과 꽃병세례를 받았던 우울질의 사람은 모욕감과 증오감에 시달린다. 두통을 느끼고 이를 갈며 침대에 누워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께선 내버려두실리 없다. \"나는 네가 그 흉칙한 증오심으로 그렇게 몸과 마음에 깊은 고통을 느끼며 있는 것이 싫다. 너의 평안이 내 기쁨이다. 그를 용서해라. 나도 너의 모든 죄들을 용서해 주지 않았니? 자! 일어나거라. 그에게 화해를 청해라. 그가 너의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너에겐 평화가 있게 될게다. 어서 전화를 걸어라.\"--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찌꺼기를 남겨두지 않는다.
자신의 약점으로 인한 실수들을 죄로 여기고 그것을 싫어하므로 그는 신속히 그 실수들을 시인하고 해결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옛날의 그 편협적이고 고집과 독선과 혈기와 자기학대와 근심걱정의 지저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전율할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이상 주인이나 통치자로 모시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고 성령의 지시에 계속 불순종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소멸시켜 버렸다. 그들의 직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근심걱정으로 우울증에 걸린 목사님이나 분노와 혈기로 위궤양을 앓고있는 장로님도 사실은 성령을 무시하고 인정치 않으며 성령의 활동을 훼방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통해선 하나님께 선 기쁨과 영광을 얻으실 수가 없다. \"내가 분명히 말해둔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님에 대한 모독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15:31) 개역성경은 여기의 성령모독을『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그 인격이 변화되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아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 계신 성령의 능력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였으니 그는 분명히 성령을 모독한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가!
V. 결론
물론 우리의 옛 성품과 자아를 상대하여 싸우는 싸움은 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약점을 죄로 여기고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성령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다가도 또 여전히 옛 자리로 되돌아와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는 우리는 실망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포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노리는 점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실망하지 아니하고, 죄를 지었을 때마다 또 죄를 깨달았을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고 그분의 지시에 순종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 결국에 가선 옛 습관이 더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느날 문득 되돌아 보았을때 당신은 과거와는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우울질과 다혈질이 혼합된, 극도의 소심함과 신경질적인 포악함의 사람이었다. 사람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과 이기심, 예민한 성격등으로 인해 언제나 소극적이고 박약한 모습으로 지내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성령께선 너무나 많은 부분들 속에서 기적을 일으키셨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나의 기질상의 약점 때문에 이 공동체 속에서 지체들에게 아픔을 주고 그 때문에 나 스스로 자학에 빠지곤 하는, 여전히 변함없는 우울질과 다혈질의 사람이긴 하지만, 불과 지난 몇 년 전과 비교만 해보아도 나의 기질적 약점들은 많이 깍이고 다듬어진 것을 선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나 자신이 이를 위해 이를 악문 고행과 수양을 쌓았기 때문인가? 기껏 내가 한 것이라곤 주님을 떠나지 않고 그분과의 교제를 중단하지 않은 것밖에 없다.
나는 기대한다. 지금까지도 나를 조금씩 변화시켜 오신 주님께서 앞으로도 나의 남은 날 동안 변함없이 나를 지도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다듬어 가실 것을 말이다. 나는 나의 약점들을 매일 점검하고 있다. 그것들은 나의 적이다. 내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들이다. 여러번의 실패와 좌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내가 담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이 적들이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 나는 능히 이 약점들을 물리칠 수 있음을 확신한다. 그것은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담대하라. 승리를 확신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 곧 모든 이들(원수까지도)을 향한 사랑이다.
희락, 곧 기쁨(joy),환경을 초월한 변함없는 기쁨이다.
화평(peace),곧 모든 두려움과 근심 대신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평안이다.
오래참음(long suffering:인내), 즉 모든 모욕과 고통과 비난중에서도 묵묵히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자비(gentleness), 곧 부드러운마음에서 나온 사려깊고 예의 바르고 젊잖고 신중하고 이해하려는 자세이다.
양선(goodness), 즉 자신과 소유물에 대해 인색하지 않고 관대한 마음, 이기심 없는 모든 친절과 선한 일이다.
충성(faith) 즉,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의지하는 태도, 신뢰성, 성실한 자세를 말한다.
온유(meekness),악을 악으로 갚지않는,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이다.
절제(self-control), 즉 자신의 기질상의 약점을 자제하는 능력, 자기훈련, 자기조절 능력을 말한다.
성령께선 우리가 그분의 활동을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그분의 존재와 능력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 한 언제나 우리 삶의 한부분 한부분에 개입하실 것이다.
고함을 지르고 꽃병을 집어 던진 다혈질 사람에게 성령께선 즉각적으로 그 분노가 잘못된 죄임을 지적하신다.\"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알겠지? 그 방법은 이 문제의 해결의 좋은 방법일 수 없어! 자 지금 곧 그와의 화해를 시도해라. 전화를 걸어!\" 성령의 사람은 그 말씀에 동의하고 순종하게 된다. 그는 곧 전화기 앞으로 달려간다.
다혈질의 사람으로부터 폭언과 꽃병세례를 받았던 우울질의 사람은 모욕감과 증오감에 시달린다. 두통을 느끼고 이를 갈며 침대에 누워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께선 내버려두실리 없다. \"나는 네가 그 흉칙한 증오심으로 그렇게 몸과 마음에 깊은 고통을 느끼며 있는 것이 싫다. 너의 평안이 내 기쁨이다. 그를 용서해라. 나도 너의 모든 죄들을 용서해 주지 않았니? 자! 일어나거라. 그에게 화해를 청해라. 그가 너의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너에겐 평화가 있게 될게다. 어서 전화를 걸어라.\"--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찌꺼기를 남겨두지 않는다.
자신의 약점으로 인한 실수들을 죄로 여기고 그것을 싫어하므로 그는 신속히 그 실수들을 시인하고 해결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옛날의 그 편협적이고 고집과 독선과 혈기와 자기학대와 근심걱정의 지저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전율할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이상 주인이나 통치자로 모시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고 성령의 지시에 계속 불순종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소멸시켜 버렸다. 그들의 직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근심걱정으로 우울증에 걸린 목사님이나 분노와 혈기로 위궤양을 앓고있는 장로님도 사실은 성령을 무시하고 인정치 않으며 성령의 활동을 훼방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통해선 하나님께 선 기쁨과 영광을 얻으실 수가 없다. \"내가 분명히 말해둔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님에 대한 모독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15:31) 개역성경은 여기의 성령모독을『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그 인격이 변화되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아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 계신 성령의 능력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였으니 그는 분명히 성령을 모독한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가!
V. 결론
물론 우리의 옛 성품과 자아를 상대하여 싸우는 싸움은 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약점을 죄로 여기고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성령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다가도 또 여전히 옛 자리로 되돌아와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는 우리는 실망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포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노리는 점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실망하지 아니하고, 죄를 지었을 때마다 또 죄를 깨달았을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고 그분의 지시에 순종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 결국에 가선 옛 습관이 더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느날 문득 되돌아 보았을때 당신은 과거와는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우울질과 다혈질이 혼합된, 극도의 소심함과 신경질적인 포악함의 사람이었다. 사람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과 이기심, 예민한 성격등으로 인해 언제나 소극적이고 박약한 모습으로 지내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성령께선 너무나 많은 부분들 속에서 기적을 일으키셨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나의 기질상의 약점 때문에 이 공동체 속에서 지체들에게 아픔을 주고 그 때문에 나 스스로 자학에 빠지곤 하는, 여전히 변함없는 우울질과 다혈질의 사람이긴 하지만, 불과 지난 몇 년 전과 비교만 해보아도 나의 기질적 약점들은 많이 깍이고 다듬어진 것을 선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나 자신이 이를 위해 이를 악문 고행과 수양을 쌓았기 때문인가? 기껏 내가 한 것이라곤 주님을 떠나지 않고 그분과의 교제를 중단하지 않은 것밖에 없다.
나는 기대한다. 지금까지도 나를 조금씩 변화시켜 오신 주님께서 앞으로도 나의 남은 날 동안 변함없이 나를 지도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다듬어 가실 것을 말이다. 나는 나의 약점들을 매일 점검하고 있다. 그것들은 나의 적이다. 내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들이다. 여러번의 실패와 좌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내가 담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이 적들이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 나는 능히 이 약점들을 물리칠 수 있음을 확신한다. 그것은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담대하라. 승리를 확신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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