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조선 실학의 교육개혁론
1. 실학의 교육개혁론
참고문헌
1. 실학의 교육개혁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음운학, 금석학 등의 영역도 지식인들의 새로운 관심을 끌게 되면서 독자적인 입지를 확보해 갔다.
이러한 실학의 새로운 학문적 관심의 추구와 그 결과는 당대의 사회 지배층으로서의 사대부의 역할과 책임을 재규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점은 특히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논의에 부각되어 있다. 그는 '효제충신'과 '예악형정'을 경학의 '실(實)'과 '용(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경세론적 경학관 위에서 이것이 '사(士)'의 학문의 기본적인 내용임을 강조하면서도, '농·공·상'의 업도 '사'의 학문적 과제에 포괄되어야 하며, 이러한 상태가 바로 '실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사회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로서 '사'에게는 이제 단지 독서인에 머물지 않고 실무인으로서의 자질까지도 기대되고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국 실학의 새로운 학문관이 전통적인 사대부상에 대한 재해석으로까지 연결됨을 의미한다.
실학자들이 제시하는 교육개혁의 구상은 전체적으로 그것은 학제의 위계적 체계화와 보편화, 그리고 이러한 학제에 일관된 취사제도의 개편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일종의 국가교육체제의 수립을 지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혁의 방향은 한편으로는 유학의 교육적 이상에 기초하고 있는 국초 이래의 국가의 교육이념, 교육정책과 동일한 노선 위에 있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으로 개별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유학교육과 유교적 지식의 확산이라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이것을 국가의 교육체계 안으로 포섭하려는 지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제시하는 개혁의 방향과 구체적인 방안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천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사사한다. 하나는 그들의 교육개혁안이 당시의 교육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과 비판적인 문제인식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국초 이래의 교육의 제도적 원리가 기초하고 있는 유학의 경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유학의 교육적 이상을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학자들의 교육개혁론과 그것에 반영된 이념적 지향이 지니는 의의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실학자들의 교육개혁론은 조선후기 관학에 의한 국가교육이 침체되어 가고 이것에 사적인 방식의 교육적 대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일단 적극적으로 인정한 위에서, 이러한 추세를 국가교육체제의 강화라는 이념적 지향 아래 재편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개인과 가문 그리고 사림사회가 주체가 되어 국가교육의 과제가 수행되고 있고, 또한 유교적 교양이 범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당시의 사회적 동향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이러한 현실을 기존의 관학을 재편하는 방식으로 포섭하고자 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다음은 비판적 유학지식인으로서의 실학자들의 교육개혁론과 그것에 함축된 이념적 지향이 이후 교육의 변동 추세에 양면적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것은 개항(1876)을 전후로 한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와 혼미 속에서 새로운 교육을 실험하고 개척하거나 혹은 밖으로부터 수용하는 데에 하나의 중요한 지적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교육의 실제와 원리, 즉 전통교육의 관행이 끈질기게 존속하는 데에도 동일하게 중요한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이 실학자들의 교육개혁론이 그 성격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에 있어서도 복합적이었던 것은 '실학'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유학이라는 당시의 지배적인 사상적 전통과 자장(磁場) 안에서 그 일각을 차지하고 있었고, 또 그 일부분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한국 교육사, 교육과학사 출판사
이러한 실학의 새로운 학문적 관심의 추구와 그 결과는 당대의 사회 지배층으로서의 사대부의 역할과 책임을 재규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점은 특히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논의에 부각되어 있다. 그는 '효제충신'과 '예악형정'을 경학의 '실(實)'과 '용(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경세론적 경학관 위에서 이것이 '사(士)'의 학문의 기본적인 내용임을 강조하면서도, '농·공·상'의 업도 '사'의 학문적 과제에 포괄되어야 하며, 이러한 상태가 바로 '실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사회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로서 '사'에게는 이제 단지 독서인에 머물지 않고 실무인으로서의 자질까지도 기대되고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국 실학의 새로운 학문관이 전통적인 사대부상에 대한 재해석으로까지 연결됨을 의미한다.
실학자들이 제시하는 교육개혁의 구상은 전체적으로 그것은 학제의 위계적 체계화와 보편화, 그리고 이러한 학제에 일관된 취사제도의 개편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일종의 국가교육체제의 수립을 지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혁의 방향은 한편으로는 유학의 교육적 이상에 기초하고 있는 국초 이래의 국가의 교육이념, 교육정책과 동일한 노선 위에 있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으로 개별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유학교육과 유교적 지식의 확산이라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이것을 국가의 교육체계 안으로 포섭하려는 지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제시하는 개혁의 방향과 구체적인 방안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천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사사한다. 하나는 그들의 교육개혁안이 당시의 교육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과 비판적인 문제인식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국초 이래의 교육의 제도적 원리가 기초하고 있는 유학의 경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유학의 교육적 이상을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학자들의 교육개혁론과 그것에 반영된 이념적 지향이 지니는 의의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실학자들의 교육개혁론은 조선후기 관학에 의한 국가교육이 침체되어 가고 이것에 사적인 방식의 교육적 대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일단 적극적으로 인정한 위에서, 이러한 추세를 국가교육체제의 강화라는 이념적 지향 아래 재편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개인과 가문 그리고 사림사회가 주체가 되어 국가교육의 과제가 수행되고 있고, 또한 유교적 교양이 범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당시의 사회적 동향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이러한 현실을 기존의 관학을 재편하는 방식으로 포섭하고자 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다음은 비판적 유학지식인으로서의 실학자들의 교육개혁론과 그것에 함축된 이념적 지향이 이후 교육의 변동 추세에 양면적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것은 개항(1876)을 전후로 한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와 혼미 속에서 새로운 교육을 실험하고 개척하거나 혹은 밖으로부터 수용하는 데에 하나의 중요한 지적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교육의 실제와 원리, 즉 전통교육의 관행이 끈질기게 존속하는 데에도 동일하게 중요한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이 실학자들의 교육개혁론이 그 성격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에 있어서도 복합적이었던 것은 '실학'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유학이라는 당시의 지배적인 사상적 전통과 자장(磁場) 안에서 그 일각을 차지하고 있었고, 또 그 일부분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한국 교육사, 교육과학사 출판사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