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의 이해] 대구의 옛모습을 찾아서 최종 보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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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리학의 이해] 대구의 옛모습을 찾아서 최종 보고자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출발

2. 경상감영공원

3. 선교사 주택 가는길

4. 선교사 주택

5. 계산성당

6. 제일교회

7. 약령시 전시관

8. 대구부성 영남제일관이 있던 곳으로 가는 길

9. 관덕정 순교 기념관

10. 느낀점

본문내용

제일관이 있던 곳으로 가는 길
약령공원에서 잠시동안의 휴식을 가진 뒤 우리가 향한 곳은 800m의 약령시 도로를 계속 따라 어느 비석이었다. 그 기념비에는 영남제일관이 있었던 자리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곳도 달서문터가 있었다는 비석과 다를 바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좀더 크고 상징적인 건축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옛 영남제일관이 있었던 자리라고는 하지만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하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다음 장소는 진골목이다. 진골목은 대구지방 방언으로 가주 긴 골목을 진골목이라 부른데 유래가 되었다. 나는 처음에 진골목이라 하여서 옛날 땅이 비가 오면 많이 물러져서 진골목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이 경상도 사투리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말에 재미있었다.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중앙대로에는 임금의 행차나 높으신 어른의 행차때엔 길거리에 조아려야 하는 것이 싫어서 진골목을 만들어 상행위를 계속 했다고 한다. 투박하리라고만 생각했던 옛사람들도 그러한 면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진골목을 지나서 나온 곳은 염매시장이었다. 염매시장을 지나 유명한 떡집골목도 직접 보게 되어 감회가 남달랐다. 그리고 지금은 간판만 남은 곡주사 할매집도 지나쳐 왔다. 곡주사할매는 민주화운동시기에 모임의 장소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장소라 한다. 우리일행은 동아쇼핑으로 통하는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 마지막 종착지인 관덕정 순교 기념관으로 향했다. 동아쇼핑 지하 상가는 아직 입주하지 않은 상가들만이 지키고 있었다.
9. 관덕정 순교 기념관
오랫동안 걸어간 끝에 도착한 곳은 관덕정 순교기념관이었다. 이곳은 1815년 을해교년때 붙잡혀 대구감영에 수감 중이던 이들과 1827년 정해교난 때 체포돼 1839년 기해교난 때까지 무기투옥되어 있던 이들이 관덕정에서 참수된바 있다. 우측에 보이는 사진은 사람을 조용하게 죽이기 위하여 목에 밧줄을 감고 줄을 저 돌안에 집어넣어 당겨서 죽였다고 하는 바로 그 돌형구이다. 순교기념관 1층 내부에는 실제 척화비도 살펴볼 수 있었다. 국사책에서만 보던 척화비를 실제로 보게되어 남다른 감흥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천주교를 박해하고 무자비하게 죽였건 것은 우리 역사가 반성해야 할 몫일 것이다. 우리는 밖에 있던 사형집행 도구를 살펴보고 지하로 먼저 향했다. 지하에는 성당과 성인유해실 제1전시실이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간 곳은 지하전시실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톨릭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쓰던 교황좌도 전시되어 있었다. 2층 전시실에는 김대건 안드레아가 직접 그린 대한민국 지도도 있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독도를 지도에서 찾아 봤지만 안타깝게도 표기가 되어있지 않았다. 다른 전시실에는 상당히 오래된 가톨릭 기도서라던지 성서가 전시되어 있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나는 이번 기회로 관덕정 순교기념관에 오게 되어서 참으로 뜻 깊은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가톨릭의 역사와 무심코 지나쳤던 순교자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 그리고 앞으로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개인적으로 중요한 답사였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전시실을 모두 둘러보고 나서 아쉽지만 마지막 장소인 관덕정순교기념관의 옥상 누각에 올라갔다. 옥상누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참으로 시원하면서도 평화로웠다.
내가 생각하는 이번 답사의 의의라고 한다면, 이번 답사를 통해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오늘날의 대구의 모습을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상도의 중심역할을 수행하던 경상감영공원에서부터 대구읍성이 허물어지면서 그의 흔적, 그리고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종교 문화 유산들, 그리고 이번 답사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약령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대구 읍성을 허물면서 성벽이 있던 자리는 대로가 났지만 주요 문이 있던 자리는 비석으로만 그 존재를 어렴풋하게 나마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관풍루도 달성공원으로 옮겨졌으며, 오늘날 옛 대구읍성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문화 대국 중국에 비추어 너무 관리가 소홀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나라는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자원인데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무분별하게 훼손시켜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보호하고 아끼는 마음도 함께 물려줘야 할 것이다.
‘지리학의 이해’ 답사보고서
대구의 옛 모습을 찾아서
경영학부 2001034ㅇㅇㅇ ㅇㅇㅇ

키워드

  • 가격1,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8.09.28
  • 저작시기2006.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8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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